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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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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Feb 28. 2022

이상은 보살 육아, 현실은 광년이 육아

잠들지 못하는 아이, 재우고 싶은 엄마.

https://brunch.co.kr/@jazzpia2/70



그윽한 조명을 켜고 침대에 눕는다. 아이와 도란도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는다. 수면 음악을 틀고 이내 잠든 아들을 보며 흐뭇해진다. 아들 이마에 사랑 가득 뽀뽀를 해주고, 낮에 화냈던 일도 조용히 사과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짧지만 보석 같은 나만의 시간을 즐겨본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꿈꾸는 베드타임이다. 언젠가는 그리 될 테니 계속 갈망해 볼 테다.


이전 글에서 처럼 아들 분리 불안증도 있고, 너무 사랑하고, 애지중지 하며 키우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끔씩 내 안의 하이드가 고개를 쳐들고 본색을 드러낼 때는 나도 내가 당황스럽다.




얼른 혼자가 되고 싶은 밤.


하루 종일 아이와 둘이 실랑이를 하며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 잠자리 독서시간만을 기다린다. 쳐다만 봐도 좋은 건 맞는데 자야 할 땐 좀 자줘야 나도 숨을 쉴 거 아니겠나.


밤 9시. 책을 한 권, 두권... 다섯 권이 넘어가도 아이가 자지 않으면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조바심이 난다. 밤 열 두시가 다 되도록 아이는 버둥거리며 잠을 자지 않는다. 이유를 알면서도 짜증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루 종일 감정을 조절하며 아이에게 미소만 날리던 나를 한방에 무너뜨리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목구멍이 따끔따끔 해 지기 시작한다. 숨죽였던 편도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미간에 잡힌 주름이 잔뜩 성을 낸 채, "너는 나를 왜 이리도 힘들게 하냐"라고 "제발 좀 자라"고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내가 한 말인지 귀신이 한 말인지도 모를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붓는다.


 그분이 오신 거다.


내가 아니었다고 믿고 싶은 거센 폭풍이 지나 간 후, 서운해서 등을 돌리고 울다 잠이 든 아들을 보며 심장이 ‘쿵’ 하고 지구 핵까지 내려앉는다. 가출했던 정신줄이 돌아오면 못난 자격지심이 고개를 스멀스멀 쳐든다. 단순한 육아 스트레스일 뿐이라고, 엄마도 사람인데 이 정도 화는 낼 수 있다고 위로해 보지만,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홉 살이 된 나의 아들은 ADHD가 있고, 교감신경의 조절이 안 되는 탓인지 밤에 잠드는 일이 매우 힘들다. 졸려서 눈을 비비면서도 잠들면 큰일 날 것처럼 계속 잠을 쫓느라 몸을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평상시 낮에 산만하게 움직이는 것도 상당히 벅찬데, 밤에 잠자리에 들어 침대에서 몸부림치는 아이를 재우는 일은 내 육아 과업 중 가장 어려운 일이다.


신생아 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잠이 없어서 '이것도 날 닮았네' 했었다. 그냥 좀 예민한 아이인가 보다 했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잠들어도 금방 깼다. 남들 다하는 수면교육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6개월 무렵부터는 눈에 잠이 가득하면서도 뭐에 홀린듯 베실베실 웃으며 계속 기어 다니거나 침대를 잡고 일어서서 휘청거리며 잠을 쫓았다. 잠투정이 참으로 요상시럽다고만 생각했다.


서너 살 무렵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낮잠을 자는 시간, 우리 아이만 잠들지 못하고 혼자 놀았다고 한다. 그렇게 낮잠을 안 자고도 밤에 일찍 잠들지 못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새벽부터 일을 시작한 나는 10시가 넘으면 피곤해지고 11시가 넘으면 책을 읽어주다 얼굴에 책을 떨어뜨리며 졸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아이는 한권만 더 한권만 더... 이런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짜증도 안 내고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누워서 잠 들때까지 놀아줬다.



베드타임 전쟁이 시작된건 7살 후반부터이다. 엄마 휴식도 휴식이지만, 학교에 가려면 아침 일찍 기상을 해야하니 일찍 잠자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늦게 자더라도 일찍 일어나기 시작하면 패턴이 고쳐질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도 자는 시간은 늘 자정 가까이고, 잠들기 전까지 꼭 내가 옆에 있어줘야 한다. 나는 피곤과 짜증에 쩔어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자는것도 아닌 상태에서 2시간 이상 마음 다스리기를 하며 오만가지 감정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지금은 이러한 아이의 상황을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밤이 되면 지치고 힘들고 그래서 울고 싶은 건 사실이다.


나도 "보살 육아"라는 걸 해보고 싶지만, 밤 열두 시가 넘으면 그냥 이성을 잃고 "광년이 육아"가 시작된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잠잘 기색 전혀 없이 흥이 올라있는 아들에게 나는 또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냈다.


 "제발 그만 하고 잠 좀 자자고~~~~~!!!"

 


"......"


째깍째깍


"............"


째깍째깍


"크렁크렁 크~~~~ "



휴~~ 드디어 자는구나.







아들이 잠든 후,

등을 돌리고 웅크린 채 잠든 아들을 보며 흘리기도 민망한 눈물이 줄줄 쏟아져 내린다.


휴~~ 이 상황은 늘 반복되는 데자뷔 같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이쁜 말과 행동으로 지구 역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인 척하다가. "주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옵소서" 기도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소싯적 날리던 육두문자 편도선 너머로 집어삼키고, 지킬 앤 하이드가 왔다 갔다 멘붕~ 그러다가 잠든 아들 머리카락부터 발가락까지 하나하나 매만지며 미안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럽고, 무슨 코미디 육아 사이코드라마인가? 육아는 절대 우아할 수 없음을 뼛속 깊이 새기며 딸랑구 가진 엄마들이 격하게 부러운 밤이다.  2017년 12월 26일 늦은 밤.

(이 때는 ADHD인 줄 모르고 아들이라 에너지가 뻗쳐 잠을 안 자는 줄로만 알았다)


아이 네 살 때 쓴 일기이다. 아이가 9살이 된 지금도 난 같은 상황이구나. 언젠가는 이 데자뷔도 끝이 오겠지.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다.

브런치고 뭣이고 속상해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힌다.


화내지를 말던가,

후회하지를 말던가.


오늘도 셀프 회초리 쎄리 맞고 후회하며,

오지 않을 잠을 청해 본다.

언제쯤 이 외로운 싸움이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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