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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리아 Jun 30. 2022

5화 모두 담을 수 없어

그래도 담을 수 없어

6월 언젠가 딸아이와 집 앞 산책을 하는데 은행나무가 예쁜 잎을 뽐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벤치에 앉아 그림도구를 꺼내서 그리기 시작했다. 조그만 드로잉북 한 페이지에 담기지 않아서 길게 그려보건만 옆 가지는 모두 담을 수가 없다.


은행나무가 참 크기도 크다. 잎을 하나하나 그리다 보니 같아 보이는데 같은 모양의 잎은 하나도 없다. 연두도, 초록도 그 색이 모두 다르다.

아직은 연한 잎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장맛비를 맞고 뜨거운 햇살을 듬뿍 받고 나면 저 연두와 초록은 또 다른 색으로 변하겠지?

물드는 예쁜 잎을 물감으로 모두 담아낼 수는 없겠지?


그래서 내 눈에, 머리에, 마음에 꾹~저장해 두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그림을 보면서 그때의 마음을 되새겨 보곤 한다.


종이에는 모두 담을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음에는 그 흔적이 남는다.


은행나무를 그리면서 언젠가 큰 아이가 공원에서 놀다가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엄마, 나는 나무야."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때, "큰 그늘을 만들 수 있는 넓은 나무가 되렴."이라고 했는데, 그때 마음처럼 우리 아이들이 마음에 세상을 담을 수 있도록 키우고 있나? 아니면 세상의 틀에 아이들을 담고 있나 생각해 보니 피식 웃음만 나온다.


내 작은 세계에 아이를 담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꾸 미안해진다.

그런데 어쩌나. 미안한 마음도 잠시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또 고민하고 마는 현실 엄마인 것을....


다만 현실에 담기지 않고 이상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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