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멕시코로 크루즈 여행을 갔었고, 작년에는 알래스카로 크루즈 여행을 갔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크루즈 여행의 관심이 높아지는 거 같기에, 제가 느낀 크루즈 여행의 장단점을 적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장점은 가성비입니다.
크루즈 여행은 흔히 럭셔리 여행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얼마든지 호화롭게 여행할 수도 있습니다만, 의외로 가성비 여행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크루즈 선박에는 아주 호화로운 배도 있지만, 요즘엔 가성비를 내세우는 대중적인 일반 크루즈 선박이 주류입니다. 또 이런 크루즈 배는 규모도 훨씬 크고 최신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초대형 일반 크루즈는 대체로 여행 기간 중 음식과 술이 거의 공짜입니다. (술은 크루즈에 따라 알코올패스를 구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기에 라이브 음악, 마술쇼, 뮤지컬 등등 각종 엔터테인먼트가 죄다 공짜입니다. 이런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되면, '사장님이 미쳤나? 이게 남길 수 있는 장사인가?'라고 느낄 정도로 가격에 비해 서비스가 좋습니다.
물론 방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 나는데, 저희 가족은 5인 가족이라 항상 발코니 방 1개, 인사이드 방 1개를 예약합니다. 발코니 방은 창문이 없는 인사이드보다 보통 두 배 가량 비쌉니다만, 답답하지 않고 탁 트인 바다를 상시 느낄 수 있어서 돈 값은 합니다.
그런데, 초대형 일반 크루즈 배가 가성비가 높은 이유는, 일하는 사람들의 99%가 필리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와 중국 사람들이 없다면 미국 IT 회사가 안 돌아가듯이, 필리핀 사람들이 없다면 크루즈 회사도 존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즉, 일반 호텔보다 저임금 노동자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거기에 세금 등도 피해 가기 쉽고, 또 크루즈 배 안에서 카지노 영업 등도 가능하기에, 가성비 높은 크루즈 여행을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장점은, 인터넷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단점이 아니고 장점이냐고 묻는다면, 요즘 세상에 인터넷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은 진정한 휴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크루즈 배에서도 돈을 내고 인터넷을 할 수는 있지만, 배의 인터넷은 속도가 상당히 느리기에 그리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냥 크루즈 여행 기간에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인터넷 없이 살아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크루즈 여행 중간에 도시에 정박하면, 인터넷이 가능해집니다.)
전 크루즈 여행을 갈 때는, 인터넷이 없는 곳으로 떠나니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주변에 말해 둡니다. 크루즈 여행이야말로 21세기에 인터넷과 단절하고 진정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세 번째 장점이라면, 배로만 갈 수 있는 지역들을 가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알래스카 크루즈의 경우 글레이셔 베이 국립공원을 갈 수 있는데, 이곳은 육로로는 갈 수 없는 국립공원입니다. 따라서, 크루즈 여행이 아니라면 비행기를 몇 번 갈아탄 후에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가기 힘든 곳입니다. 하지만, 크루즈 배로는 아주 편안하게 갔다 올 수 있습니다.
또, 크루즈 회사들이 경치 좋은 무인도 섬을 통째로 사서 자기네 크루즈 배로만 즐기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다른 여행으로는 절대 가 볼 수 없는 경치를 크루즈 여행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크루즈 여행은 단점도 상당히 많습니다. 우선 배가 움직이기에 멀미가 날 수 있습니다.
보통 날씨가 좋을 때는 배가 움직이는 걸 느끼기도 힘듭니다. 다만 날씨가 안 좋으면 아무리 안정성이 좋은 최신 크루즈 배라 해도 흔들리기 마련이고, 그러면 여기저기서 오바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또 극소수이지만, 아주 미세한 배의 움직임에도 멀미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바다 자체에 공포증이 있는 경우도 있기에, 체질상 크루즈 여행을 절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 번째 단점은, 코로나 바이러스 등 전염병에 아주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크루즈 배에는 수 천 명이 좁은 공간에 몰려있다 보니 위생이 엄청 중요합니다. 팬데믹 이전에도 위생을 엄청 강조해 왔지만 코로나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 공포의 사건도 크루즈 배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었습니다.
사실 팬데믹 이후 크루즈 회사들 주식이 가장 많이 폭락했고, 지금도 아직 회복이 안 되었습니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크루즈 배에는 약 60-70% 정도만 승객들이 찬다고 합니다. 이러면 거의 승객 2명 당 직원 1명꼴이 되기에, 크루즈 회사들이 수익을 내기도 힘듭니다.
크루즈의 장점이 가성비를 넘어서는 음식과 서비스인데, 만일 크루즈 회사의 적자가 지속되어서 서비스가 악화된다면, 크루즈 여행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크루즈 승무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크루즈를 타기 위해서는 백신 증명서와 코로나 테스트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지만, 그럼에도 승객 한 명이라도 코로나나 독감에 걸린다면 퍼지는 건 삽시간입니다. 실로 코로나 이후에 영원히 크루즈 여행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은 거 같습니다. 크루즈 여행의 주 대상층이 노인들이라는 점에도 타격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 단점이라면, 크루즈 여행은 찍고 찍고 하는 식의 여행이라,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크루즈로 어디를 다녀왔다고 해도, 유명한 곳이라면 따로 다시 가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외국 크루즈 배의 음식들은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국밥 같은 건 찾기 힘들고 대부분 서양 음식이라, 하루에 한 번은 김치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사실상 견디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 손님들이 많아지면, 크루즈 회사에서 김치나 국밥을 마련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요즘에는 K-food의 인기로 코리안 스타일 양념치킨과 여러 코리안 스타일 음식이 서비스되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다만 외국에서 "코리안 스타일"이란, 겉만 한국 음식처럼 보일뿐 실제 한국 음식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또 호화크루즈가 아닌 이상, 음식도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 크루즈배가 무제한 리조트들보다는 음식이 좋은 편이었고, 특히 술은 훨씬 좋은 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맥주만 하더라도, 카리브해의 무제한 리조트들은 대체로 로컬 맥주만 제공하지만, 크루즈는 웬만한 유명 맥주들은 다 제공합니다. 제가 탄 배에는 맥주바가 있었는데 50종의 다양한 수제 IPA 등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단점이라면, 무제한 술과 음식으로 인해 살이 엄청 찐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크루즈 배에는 엄청 살찐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크루즈 한 번 탈 때마다 3-4 킬로는 찔 각오를 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10번만 타면 뚱땡이가 되는 건 시간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크루즈 배 한 번 타고 나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도 다녀와야 할 정도입니다.
대략 이런 점들이 제가 느낀 크루즈 여행의 장단점인데, 백문이불여일견이니 직접 한 번이라도 타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