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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담 Oct 11. 2020

대전 휴먼 라이브러리의 공연화 대표를 만나다 vol.1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9월 말, 우리는 핫한 페미니스트 유튜버를 만났다. 가을의 초입에 만난 그는 멋스러운 정장을 차려입은 채 시종일관 엄청난 입담을 뽐냈다. 화려한 말솜씨로 단숨에 여담 멤버들을 홀려버린 대전 휴먼 라이브러리의 공연화 대표를 만나보자.       




Q. 휴먼 라이브러리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A. 저희 대전 휴먼 라이브러리는 일단 2014년에 생겨서 6년 정도 됐고요. 지금까지 인권과 같은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는, 메이저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여태까지는 채식, 지역, 청소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는데 2018년 후반부터는 여성 인권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그래서 지역에 살고 계신 다양한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휴먼 라이브러리에 대해 더 설명을 해드리자면, 덴마크에서 시작된 사회운동 종류의 하나인데요. 예를 들면 지금 Black lives matter 같은, 그런 운동인거죠. ‘지역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너무 소통이 안 되니까 편견이 계속 커진다.’ 이런 생각이 든, 덴마크 코펜하겐의 어떤 청년들이 한 사람을 모셔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걸 ‘사람 책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라고 규정을 하고, 사람 책을 모셔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쭉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이 운동이 시작됐어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저희처럼 단체로 하는 경우도 있고, 노은구 도서관이나, 서울시립대학교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Q. 휴먼라이브러리에서 활동 중에 대표적인 행사 혹은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A. 작년 1월에 한 번 묵독회라고, 여성주의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쭈뼛쭈뼛 열 분 정도 되시는 여성분들이 오셨었는데, 그땐 다 모르는 사이였죠. 각자 가지고 온 책 읽는 행사였는데, “저는 주변에 페미니스트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요”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왔었어요. 


그리고 7, 8, 9월에 시리즈 강연회 ‘탈출’이라는 걸 했었습니다. 첫 번째는 웹하드 카르텔과 불법촬영, 그리고 두 번째는 탈코르셋, 세 번째는 비혼. 근데 묵독회에 오셨던 분들이 계속해서 오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마지막 강연을 하고, 저녁 먹으러 나갔는데 1월에 오셨던 분 두 분이서 같이 어딜 걸어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 어떻게 두 분이 아시게 됐어요?” 했더니, 저희 행사에 계속 오다가 마주치면서, 나이도 같고, 주변에 페미니스트 친구가 없고, 그래서 친구로 지내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행사가) 진짜 페미니스트 친구를 만나는 장이 된 거죠. 너무 뿌듯해서 뛰어가서 안아드렸어요, 제가. 감사해요! 이러면서. 저는 강연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네트워킹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도 많이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Q. 휴먼라이브러리에서 묵독회도 하고 있고, 페미니즘 도서도 개인적으로 많이 읽으셨을 걸로 예상을 하는데, 페미니즘 도서 딱 하나만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A. 아, 딱 하나? 아, 딱 하나 진짜 어렵다. 딱 두 개 하면 안 됩니까? 네. 딱 두 개 할게요. 국내 하나, 국외 하나. 국내 작으로는 요즘 영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너무나 인기가 많고 천재 석석박사로 알려지신 이민경 작가님의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을 꼭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추천 드리고요. 이민경 작가님이 굉장히 똑똑하시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연구방법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탈코르셋 과정을 겪게 됐는지, 그리고 탈코르셋을 하기 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때 어떤 점이 괴로웠고, 나는 탈코르셋 하면서 어떻게 모습이 많이 바뀌었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굉장히 소상히 적혀 있어요. 그런데 그냥 이야기집으로 끝나지 않고, 또 작가님의 특유의 그 분석력과 디테일함 이런 것들이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 명언이 많고요. 형광펜 치면 책이 노랗게 되는 그런 책이거든요. 그래서 너무 추천을 드립니다. 


이제 국외 서적으로는 제가 최근에 굉장히 빠져있는 책인데, <여자는 인질이다>라는 책입니다. 디 그레이엄 외 두 명이 썼어요. 처음에는 책 제목이 너무 급진적인 것 같고, 나 그렇게 인질로 살지 않았어, 이런 억울한 느낌이 들어서 읽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제가 아는 분이 빌려 주셔가지고 읽게 됐는데, 너무 빠져드는 거예요. 사회과학자들이 읽으면 너무 좋아할, 그런 책이에요. 왜냐하면 사회과학 자체가 뭔가 인증되지 않은 과학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잖아요. 그거 이렇게 말을 끼워 맞추면 이렇고 저렇게 끼워 맞추면 저런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듣죠. 백 퍼센트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하지만 ‘사회과학’에 ‘과학’이 붙는다는 건 어느 정도 반복되는 게 있고, 수치상으로도 나타나는 게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이 그래요. 93년에 나온 책인데 주로 미국에서 나온 80년대에 된 연구들, 여성들에 관한 연구를, 거의 백 가지 정도를 가져와서 계속 논거로 삼으면서 여자들이 어째서 이렇게 생각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400쪽 정도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놀라셨죠? 400쪽. 저도 책을 잘 못 읽어요. 책 읽는 거를 좀 힘들어해요. 집중을 잘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어서 하루에 10분씩이라도 계속해서 읽게 됐어요. 이런 글이 있어요. 어떤 연구에서 통계를 내보니, 여자들이 걸리는 정신질환에는 강박, 불안, 우울감 등이 많은 반면, 남자들이 월등히 많이 걸리는 정신질환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알코올 중독 등이 많았다. 왜 (여성과 남성이 걸리는 질병의) 비율이 비슷하지 않을까? 여자들의 삶과 남자들의 삶이 너무 다른 거예요. 제가 읽었던 신문기사 중에 그런 것도 있었어요. “19퍼센트의 남성은 평생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다.” 너무 충격적이죠? 우리는 일상적으로 겪는 거잖아요. 저처럼 아무리 밝아 보이는 사람도 생리 전 되면 우울하고 밤 되면 약간 쓸쓸하고 그런 걸 다 겪는데, 19퍼센트의 남성들은 그런 걸 겪지 않는다. 우리가 가부장제에 어떤 식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사고과정을 가졌는지. 그리고 왜 어떤 사람은 사실 속으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면서도, 앞에 나가서는 “아, 그거 좋긴 한데,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야.” 라고 얘기하게 됐는지 등. 진짜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할 법한 생각들 모두를 근거를 가져와서 뒷받침해주고 있는 그런 책이어서 너무 재밌고, 또 어떤 사람에게 보여줘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런 책이어서, 저는 그 책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진짜 재밌어요.      


Q. 유튜브 채널 이름이 ‘페미니스트 셜리’잖아요. 셜리라는 이름의 뜻이 뭔가요?

A. 셜리 뜻 많이 물어보시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덜 여성스러운, 그러니까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성’, 그런 의미에서 덜 여성스러운 이름을 지을 걸 싶은데, 하도 사람들이 셜리라고 불러줘서 이제는 입에 착 붙긴 해요. 그 이름으로 지은 이유는 제가 원래 앤이라는 이름을 많이 썼어요. 영어 학원이나 캐나다에 교환학생 갔을 때나. 저한테 <빨간머리 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은 인생 책이었어요. 그래서 쭉 앤이란 이름을 쓰고, 또 하필 교환학생도 캐나다로 가는 바람에 ‘캐나다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빨간머리 앤>이 캐나다 책이니까. 그래서 앤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유튜브를 시작하려고 할 당시가 몇몇 쓰레기 같은 남자들이 페미니스트를 추적하는 그런 시기였어요. 그래서 좀 무서워서 내가 늘 쓰던 앤이라는 그 별명은 못 쓰겠다. 그럼 뭐하지? 라고 생각하다가 앤의 성이 앤 “셜리”예요. 거기서 가져와서 썼습니다. 셜리는 좀 덜 쓰는 이름이고, 제가 쓴 적은 없었던 이름이어서 거기서 가져왔어요. 그리고 앤 셜리가 저랑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MBTI 상으로는 많이 다른데. 어릴 때 앤이 글쓰기를 너무 좋아하고 선생님이 되고, 그리고 공상하는 것도 좋아하고 자연을 보면서... 이런 묘사가 되게 많이 되어있어요, 그 책에 보면. 그래서 저도 책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셜리의 인생 친구가 있잖아요, 다이애나라는. 그걸 보면서 나도 인생에 저렇게 멋진, 하나 밖에 없는 친구를 갖고 싶다. 그런 꿈도 많이 꿨었고. 그래서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라서 “셜리”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Q. 유튜브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제가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페미니즘 활동가로 살고 있진 않았어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그때 좀 업무량이 적어서 “내가 페미니즘에 관해서 사람들한테 널리 전파를 하고 싶은데 요즘 사람들은 뭘 좋아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전 유튜브를 많이 보지 않아요. 근데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를 워낙 많이 본다고 하니까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도 대세에 따라서 유튜브를 만들어봐야겠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얼굴이 나오지 않는 콘텐츠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쉬운 주제로.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나 “노브라 하면 왜 안 되나요?”, “지하철에서 화장하면 성매매 여성인가요?” 이런 주제에 대한 영상을 찍었어요. 그렇게 시작을 했고, 하다보니까 점점 관종끼가 나오면서, 뭐 이제 됐다 얼굴 드러내보자. 어차피 활동가로 살게 된 거. 이렇게 생각하면서 얼굴 나오는 영상도 찍고, 이름도 알리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유튜브를 보면 다양한 콘텐츠들이 올라와 있잖아요. 그 중에서도 “전 여성 저녁먹이기 프로젝트 영상”이 많더라고요. 이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고, 또 어떤 마음으로 계속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처음에 제가 그걸 시작한 게 올해 2월인데요. 올해 2월에 제가 백수였어요. 회사를 작년 12월에 관두고 백수로 지내다보니까 밥을 너무 안 챙겨먹는 거예요. 밤낮도 바뀌고.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야 되는데, 아침에 자요. 그러다보니까 하루 두 끼, 세 끼... 두 끼는 고사하고 진짜 한 끼를 먹거나 먹어도 진짜 부실하게 먹거나 이런 날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일주일에 하루라도 유튜브를 틀어놓고 밥을 먹는다면 제대로 챙겨먹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거니까 계속 간장계란밥만 해먹을 수는 없잖아요. 뭔가 꺼내놓고 먹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했는데, 그거를 하면서 든 생각이 ‘아,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도 왠지 이럴 거 같다.’ 심지어 몸에 대한 탈코르셋을 못하신 분들이라든지 탈코르셋에 대해서 생각도 못한 분들도 정말 다이어트에 대해서 너무 신경 많이 쓰시고, 저녁을 조금 먹어야 된다 이런 얘기가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저녁을 분명히 나뿐만이 아니라 한녀들이 많이 안 챙겨먹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 같이 잘 챙겨먹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하게 됐고, 실제로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 구독자 “얄리”님들께서 제 방송을 보고 목요일만 되면 입맛이 싹 돈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정말 목요일마다 안 챙겨먹다가 저녁을 챙겨먹게 됐다, 혹은 제가 먹는 도중에 ‘저 오늘 너무 기운이 없어서 안 먹으려고 했는데 셜리 님 먹는 거 보고 지금 치킨 시켰어요.’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도 계셔가지고 어느 정도 제가 생각한 의도와 부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유튜브 촬영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영상을 꼽자면?

A. 촬영하면서 재밌었던 거는, 구독자분들도 제일 좋아하시는 영상이긴 한데, 거제도 디폴트립 영상이 좋았어요. 왜냐면 그때 촬영해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니까 세 명이서 같이 여행을 갔는데 한 친구가 저를 찍어줬어요. 근데 그 친구가 카메라를 잘 써서 제가 잘 나오고, 뒷모습이랑 걷는 모습이나 움직이는 것들이 나오니까 촬영할 때도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 영상에 서한나 편집장이 나오거든요. 구독자 얄리님들이 둘이서 노는 케미가 좋다고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영상입니다.      


Q. 올리신 영상 중에 휘파람 부는 영상을 봤어요.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Girls on top을 불어주실 수 있으신지.

A. (웃음) 와, 이거 진짜 별거 아니었는데 어디 갈 때마다 시키네? 혹시 피리 없나요? 아, 요걸로 해볼까요?      

(음료에 꽂힌 빨대를 피리 삼아 휘파람으로 “Girls on top”을 불기 시작)  

이제 앞으로 어딜 가도 이걸 시키겠네. 큰일 났다. (웃음)      

[여담(조파람) : 저희가 사실 휘파람을 되게 잘 부신다고 해서 저희끼리도 따라서 불어봤거든요. 그래서 셜리님이랑 약간 배틀해볼까 생각하고 원래는 제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같이 불어볼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잘하셔가지고 기가 죽었어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여담의 세 번째 인터뷰. 

다음 편은 더욱 유쾌해져서 돌아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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