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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무원 일기(공무도하가 1.-방황 그리고 합격-)

by 하니오웰


나는 경직성 뇌성마비(3급 지체장애인)로 군대 면제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를 뒤에서 3등으로 졸업한 공과 장애 덕에 어느 곳에도 취업을 할 수 없었고, 엄마의 잔소리 회피용으로 2000년 부터 '공무원 공부'를 한다며 깔짝거렸다.


관성대로 주지육림에 빠져 있던 내가 한심했던 엄마는 2002년 5월 은평구 갈현동 집에서 나를 쫓아 내었고 매 달 들어오는 뽀찌 덕에 나는 노량진 고시원으로 무리 없이 향할 수 있었다.

우연히 남부행정고시학원의 김일균 세법 교수의 무료 강의를 듣게 되었고 술 마시고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적도 있다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반해 그 길로 단 하나의 연관성도 없던 세무직 공부를 시작했다.


마침 공무원 공부를 해보겠다던 과 동기와 함께 고시원 2인 1실 큰 방을 잡았다. 여자 친구가 있던 친구의 여자 친구의 방문이 있던 날은 방문을 열고 나가 PC방으로 직행해 인생을 비탄하며 깊은 담배를 빨았다.

바야흐로 때는 월드컵의 해.

대차게 놀았고 대차게 불합격 횟수를 늘려갔다.

그 해 서울시 시험 때는 전날 세종대 앞 포장마차에서의 세종대 친구와의 과음에 따른 급똥이 와서 영어 문제를 찍다가 포기 각서를 쓰고 중도 이탈하여 다시 그 친구를 불러 같은 포장마차에서 기념주를 마시며 송혜교가 나온 영화예술학과와 무용학과의 이쁜 애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는 대학시절 학사경고를 3번 연속 먹은 유명한 꼴통이었다.

공부는 더 잘 했는데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금이 싼 학교를 선택한 친구들이 많았다. 인생과 감정을 제대로 응시하여 응어리를 풀어내는데 서툰 시절이었고, 흥분하기 위해 꼭 제정신이 아닐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 턱이 없는 우리들은 매일 술의 힘을 빌려 가족사를 비탄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짝사랑에 아쉬워하며 무아에 깃들었다.


2003년. 수자원 공사 계약직 시험을 보러 갔을 때 마지막 면접관이 의아해 하며

"그 학교 졸업하고 정직원으로 일하는 후배들 투성이인데 많이 방황 했나봐요? 다닐 수 있겠어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헛스윙은 요란했고 배트는 부러졌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8할은 모멸감이었다.

철의 여인 엄마에게 2003년 9월. 진심 담긴 석고대죄 끝에 갈현동 집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Turn on!

엄마의 온갖 잔소리와 절규에도 꿈쩍 않고 책상에만 앉으면 베베 꼬던 나는 복귀 이후 은평구립도서관으로 매일 엄마와 등정했다.

경사가 심한 도서관 오르막길이었다. 절뚝거리며 매일 엄마와 구내식당에 등장하는 나는 명물이었다. 식당 아줌마는 항상 밥과 반찬을 더 챙겨주었고 그것이 정체 모를 측은지심을 담은 연민임을 알면서도 식탐을 채워 나갔다.

오기와 독기로 공부했고 내 인생에서 가장 간절하게 '삶을 단순화'시키고 집중했던 시절이었다.


결과는 국가직, 지방직 동시 합격.

9급 공무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는 눈물을 보이셨다.

밥벌이를 못 하고 평생 저등 룸펜, 밥버러지 신세일 것을 예상하셨었기 때문이다.


나는 2004년 9월에 용인시청 수지출장소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집이 서울 은평구 갈현동이었는데 수지까지 지하철과 버스로 두 번을 갈아타가며 2시간 넘게 걸려 출근했다.

패배주의와 무기력증, 이유 없는 증오심에 휩싸인 20대를 관통하던 내가 그 용인으로의 긴 출근 길을 고단해 하지 않고 괜시리 어깨를 세우고 뻣뻣하게 다녔던 앳된 모습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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