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좋아한다.
삼일 뒤면 승진자 발표일이다.
방금 다면 평가를 끝냈다.
이번에는 승진 인원이 많아 선물값이 꽤 나가겠다.
보은은 희미해지고, 보답만 선명해지는 세상.
두 손의 진심과 두 눈의 온기만으로는, 길들여진 마음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할 것이다.
선물을 준다는 것.
그 대상이 누구이든지 '기대와 보답'의 성격이 있고, '실망과 서운함'을 예방하는 방편이 된다.
'고마움과 그리움'에 벅차, 혹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열망'으로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상대의 기호와 취향을 헤아리기 위해 들이는 그 숱한 마음을 생각하면, 선물은 숭고의 결을 지닌다.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은 상대를 더 깊이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 모든 과정이, 기꺼운 룰렛이다.
선물을 받는다는 것.
그 누가 주는 선물이든, 기분이 좋아진다.
선물을 받고서 '정말 기분 더럽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호의의 호위를 감당할 자격이 없다.
선물을 받게 되면, 선물을 준 사람과 그 너머의 마음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선물은 서로의 각도를 바꾼다.
너와 나의 마음의 합이 180도를 이루어야 한다면, 마지막 각의 안분율을 조정하는 데 선물만큼 확실한 장치는 드물다.
한창 선물을 쏟아내던 시절엔, 내 생일이 되면 선물함을 열어보고 '어? 이 사람은?'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선물할 때의 마음이나 정성을 돌아보는 대신, '선물의 회신 여부'를 따져보는 본말전도를 일삼았다.
선물을 주고 나면 아무래도 기다리게 된다.
그 응답이 선물이든, 어떤 행동의 변화든, 우리는 '작위와 부작위'의 기척을 헤아리게 된다.
그래서 선물은 종국엔 서로를 비참하게, 초라하게, 그리고 공허하게 만들기 일쑤다.
사람들은 선물을 건네고 나면 마음이 투명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상대가 내 마음량 이상으로 만족했으리라 속단하면 오산이다.
시기, 방법, 과정, 종류, 태도 - 모두가 변수가 된다.
무엇보다 선물을 준 '상대'가 누구냐가 결정적인 메가 변수가 된다.
선물은 잘 줘야 한다. 매혹적인 수단인 만큼, 자칫하면 관계를 오히려 어지럽히는 돌이킬 수 없는 '계륵'이 되기 십상이다.
중요한 건 진정성과 애틋함, 상대를 아끼는 마음인데, 그것이 형체가 되어 계량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비교의 비극'이 시작된다.
선물이 주는 몇 가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역기능들 탓에 나는 이 '선물 경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마움이 일렁이거나, 보답의 마음이 스치면 나는 다시 선물 거리를 살핀다.
계산은 짧고, 빠를수록 좋다.
토큰 하나 아끼려다, 제 다리 못 추스른다.
선물은, 헤픈 좋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