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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아빠의 일기 63.(나의 삼각형과의 서쳔행)

by 하니오웰
오무
언제 잘 꺼임?

서천 여헹을 가기로 한 날인데 마늘이 근무를 마치고 간다고 하여 나도 금요일마다의 재활 치료 후 출근을 택했다.

슬라임 카페를 가기로 했는데 출근으로 선회한 나 때문에 하니는 뿔이 났다.

나는 납세자가 쏘아 올린 취득세 '시가인정액' 경정청구 건 때문에 사무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양반은 월요일부터 매일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전화를 해댔고 나는 태도가 얄미워 처리를 늦추고 있었지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째 전화로만 소리 지르던 김포 사는 청구인이 한 시 이후에 갑작스레 나를 찾아왔다.

키는 180cm가 훌쩍 넘고 얼굴은 구마적처럼 생긴데다 신고 당시에도 한 잔 걸치고 와서 쩌렁쩌렁 사자후를 뿜어대 사람들을 벌렁거리게 했던 위인이었다.

쫄아든 마음을 다잡고 민원대에 앉았다.

며칠 전화로 대차게 맞붙었던 사이라 연장전을 생각하며 담담히 다시 내용을 되집어 설명해 줬다.


"저 일이 있어 1시 반에는 조퇴해야 합니다"

일부러 한 시간을 당겨 이빨을 털어 두었다.

상소리를 들을 차례라 생각했는데.


"주무관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취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가 막힌 반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주말 내내 답변서를 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던 나는 희열감에 크게 뒤뚱거리며 취하서를 가져다 주었고 빠른 종결이 이루어졌다.

기쁜 마음에 지방세 문의할 일이 있으면 전화 하라며 연락처도 건네 주었다.

경정 청구 취하는 몇십 분의 일의 확률이다.


서대문도서관에서 엄마를 싣고 집에 가서 딸래미를 태우고 여의도 마누라 사무실로 향했다.

하니는 앞자리를 원했지만 엄마의 무한 'Back to the past' 여행 넋두리들을 내가 듣는게 제일 낫다는 판단에 엄니를 앞에 앉혔다.

마늘도 태우고 출발.

이렇게 '나의 삼각형' 완전체와의 여행은 5년여 만이라 참 벅찼다.

엄마는 다리가 안 좋아지신데다 당신이 가시면 너희들이 불편하다며 계속 강하게 동행을 거부해 오셨었다. 이번에도 나의 간곡함이 깊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닌 완전 새로운 얘기를 꺼내 주신다.

엄마가 예전 신문사 다닐 때 본인을 따라 다니던 키는 작지만 지적으로 섹시했던(나중에 편집국장까지 되었다는) 남자 이야기.

그 남자를 뚫고 들이댄 투박했지만 말빨과 기세가 출중했던 아빠 얘기를 해주셨고 덕분에 금방 도착했다.


서울시 서천 연수원 306호.

체크인만을 마치고 허기 때문에 바로 나왔다.

연수원을 벗어나면 바로 칠흙이었다. 5분쯤 달리니 '월하성 회 해물찜'이 나왔고 우리는 조개찜과 해물칼국수, 청하 한 병을 시켰다.


엄마는 처음에는 찜이 싫다며 심드렁 하시더니 동죽에 청하 한 잔을 걸치시곤 1973년 '태안고등학교'에서 10개월 간 영어 선생님을 했던 얘기. 7살 많은 노총각 화학 선생님이 자기 어머니한테 인사 드리러 가자고 했던 얘기들을 해주셨다. 뚱뚱해서 거절했다고 하니 엄마도 기호는 있었나 보다.

조용한 문학 소녀였다던 엄마의 행실을 심각히 하나하나 반추해 볼 필요가 좀 있겠다.


이렇게 조개찜을 먹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좋아하셨다.

밀가루 귀신 딸래미는 칼국수를 2인분이나 흡입했다.

저녁은 엄마가 사줬다.

애매한 교묘함으로 휴게소에서 옆자리 엄마 사진을 형한테 보냈었고. 바로 입금된 10만원까지 합치면 아직까지 개흑자이다.

연수원으로 돌아와 노래방을 예약 하려 했으나 오늘 예약이 다 찼다 하여 깊은 아쉬움을 안고 방으로 향했다.

나 빼고 요 세 꼭지점들은 모두 다 노래방을 참 좋아한다.


'이영지의 레인보우' 막방 날이었다.

YB밴드도 좋았는데 백예린의 보이스는 나를 극락으로 보내줬다.

이후 이영지의 무대였고 이영지를 위해 나영석pd가 13년 만에 kbs에 등장 했다.

영지는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더시즌즈'를 시작부터 딸이랑 다 봤는데 이영지가 발군이었다.

게스트를 편하게 해주는 능력과, 따뜻한 관찰에서 나오는 적재적소의 멘트, 관객들을 위해 어떠한 게스트가 나오더라도 반 걸음의 후진도 없이 자신을 던져 멋진 콜라보를 완성 해주는 통 큰 성실한 헌신성까지 감동의 5개월이었다.

하니는 유희열보다 낫다며 극찬했다.

마늘과 나는 다음 '박보검'에 실망이 매우 큰 상태인데 하니는 기다려 보자고 한다.


항상 12시 넘어야 주무신다던 엄니는 10시부터 코를 고셨고 딸래미는 할미의 기침 소리에 이불 하나를 더 포개어 줬다.

침대방 엄마랑 자겠다며 들어갔던 딸이 마루에서 엄니의 코 고는 소리에 뒤척이던 내 옆으로 와서 계속 재잘거리다가 새벽 2시에야 잠이 들었다.

나도 그 때 잠이 들었다가 새벽 4시 반에 일어난 엄니 덕에 딱 2시간 반을 잤다.


귀경 운전은 11시간 잔 마늘에게 맡겨야겠다.

6시간 밖에 못 잔 딸은 지 엄마랑 사우나에 갔고 엄니는 지금도 바쁘게 입을 풀고 계신다.


나는 삼각형이 참 좋다.

부디 오랫동안 그 합이 180도가 맞는지 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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