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추억에세이 쓰기. #2
“집에 개가 있나요?” 재작년 제주로 발령이 나면서 집을 구해야 했다.
가장 먼저 개가 있냐고 물었다. 제 아무리 좋아 보여도 개가 있으면 들어가질 못하니 어쩔 수 없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천5백만 명 시대에 원시인처럼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에구, 강아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키워보면 아실 거예요.” 난 속으로 대답한다. ‘알지요. 너무 잘 알지요.’ 내 처절한 첫사랑의 상처를 그들이 알 리 없다.
처음 키운 검정 강아지는 이름이 없었거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요즘 말로 시고르 자브종. 시장에 간 엄마가 집을 아주 잘 지킨다는 어떤 아저씨의 말만 듣고 덜컥 사 오셨다.
강아지를 처음 가져본 오빠와 난 너무나 신이 났다. 이불속에 데리고 들어가 셋이 놀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잠든 강아지가 이불에 실례를 해서 신나게 엄마의 지청구를 들었다.
꼭 그럴 때마다 부엌에 따라 들어가 엄마에게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머리에서 ‘깡’ 소리가 나도록 맞아도 짖지 않는 착한 친구. 나중에 알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였다. 집을 아주 잘 지킨다는 아저씨의 말은 절반은 맞았다. 조용히 집 안에만 있다가 다른 집으로 가며 헤어졌다.
외갓집의 누렁이 명구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의 첫 키스 상대다. 마루에 나와 신발을 신으려는데 보이 지를 않았다. 마루를 잡고 밑으로 고개를 떤 순간 어떤 젖은 물체가 돌진해왔다. 명구였다.
예기치 않게 입에 박치기를 당한 나는 잠시 동작을 정지했는데 번들거리던 명구의 검은 코도 잠시 숨을 멈춘 듯했다. 숨 막히는 순간이 이런 것일까. 영화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의 저 유명한 ‘거꾸로 키스’의 원조는 우리들이었다.
검은 강아지도 명구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드디어 첫사랑을 만나게 됐다. 그땐 동네에 사나운 개들이 몇 녀석씩 존재했는데 대개 사람만 보면 짖어대는 목청형, 맘에 안 들면 콱 물어버리는 조폭형으로 나뉘었다.
윗집 할머니네 개는 둘 다 아니었는데 동네 고샅길에 나타나기만 해도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두목형이었다. 잿빛 늘씬한 몸통에 호랑이처럼 깊고 찢어진 눈매는 위엄까지 있었다. 게다가 새끼까지 배자 더 무서워졌다. 어른들은 새끼를 밴 개는 사나워져서 피하라고 하셨다.
드디어 개가 몸을 풀자 윗집 할머니가 한 마리를 우리 집에 선물로 주셨는데 그 아이가 재롱이다.
하안 몸 털에 눈매만 검은 털로 덮인 세련된 바둑이였다. 내 취향에 딱 맞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데려오자마자 틈만 나면 목줄을 끊고 윗집 자기 엄마에게 도망쳤다. 힘이 약한 비닐 끈이었지만 새끼 강아지에겐 만만치 않았는데도 녀석은 잘도 끊어냈다.
윗집으로 통하는 집 뒤꼍의 비탈진 흙길을 용케 올라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재미가 들린 듯했다. 무서운 엄마 개 때문에 함부로 데리러 갈 수도 없어서 윗집 할머니가 데려다주셔야 했다.
학교에 다녀와 보이지 않으면 또 도망간 것이다. 힘도 좋고 동작도 빠른 말썽꾸러기 재롱이. 내 이 놈을.
어느 날 오빠와 나는 마루에 앉아 도망간 재롱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당 저 끝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더니 재롱이가 나타났다. 아 근데 몇 걸음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다리가 아픈가 쳐다보니 배가 불룩했다. 너무 많이 먹어 걷지를 못했다. 기막히고 우스워 깔깔 웃던 우리 앞으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개 두목님, 재롱이 엄마였다. 재롱이는 엄마 앞에서 위세라도 떠는 것인지 앞발을 마루에 척 걸치고 우리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재롱이는 반갑고 엄마 개는 무서웠다. 오빠는 먹던 새우깡을 주고 나는 그런 재롱이를 티 나게 쓰다듬었다.
아각 아각 맛있게 새우깡을 씹어먹는 재롱이와 우리를 한동안 응시하던 두목님. 이내 기수단이 퇴장하듯 돌아서 나갔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고개부터 돌려 천천히 집을 벗어나던 퇴장의 속도다.
그건 개의 속도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우리를 믿는다는 무언의 인사를 보냈다고 믿는다. 재롱이는 그날부터 도망가지 않았다.
재롱이가 없어진 것은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여름방학 외갓집에 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온 내가 재롱이를 찾자 엄마는 집을 나갔다고 했다. 청천벽력이 그런 것일까.
의지할 존재는 신 밖에 없었다. 공책의 겉장 뒷면에 기도시간을 적어놓았다. 정각에 기도를 하면 신이 바빠서 못 들을 것 같아 5시 43분, 7시 51분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정했다. 제발 재롱이를 찾아주세요. 어스름 땅거미가 깔리는 백마강 둑 아래를 며칠이나 훑었을까.
하얀 것만 보이면 달려가 비둘기나 고양이란 걸 확인하곤 눈물을 지었다. 비슷한 것이 있다고 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처절한 부재의 아픔을, 나는 느꼈다.
엄마는 수컷인 재롱이가 자꾸 발정기에 가까운 행동을 하자 오빠와 내게 좋지 않다고 여기고, 동네 아저씨에게 주었다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실직고를 하셨다. 내게 차마 남 줬다고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집을 나갔다고 한 것인데 차라리 사실을 아는 게 나을 뻔했다.
나는 재롱이가 길을 잃고 혼자 울고 있지 않을까,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 그게 제일 슬펐다. 그 후로 나는 개를 기른 적이 없다.
개를 무서워하게 된 시기는 정확지 않다. 생각해보면 혼자 생활을 시작한 대학 때부터 유난히 무서움을 탄 것 같다. 하숙집 계단에 자정만 되면 나타나 혼비백산을 시키던 쥐들, 학교 정문 앞 육교에 출몰하던 족보 없는 바바리맨.
사회 초년병 첫 자취집 현관에는 개 두 마리가 긴 줄에 묶여있었는데 출퇴근마다 오징어를 잘라 마당에 휙 던져놓고 쏜살같이 벗어나야 했다. 과자는 가벼워서 멀리 날아가지 않았고 오징어가 없을 땐 돌을 던지기도 했는데 몇 번 지나니 속지 않았다.
아, 세상의 무서운 것들이여.
언젠가 나만의 재롱이를 다시 키우는 날이 있을까. 유행 지난 이름이라고 싫다 하지 말아라. 적어도 내 첫사랑의 이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