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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백설기 Jan 06. 2023

눈길

나를 살리는 추억에세이 쓰기. #4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연휴에 제주는 고립됐다. 폭설에 공항은 마비됐고 육지와의 통행은 완전히 차단됐다.


배로도 갈 수 없었다. 얼어 죽을 눈은 언제까지 내리는 것인가. 혼자 이브를  보내며 나는 눈을 원망했다.      


방 안에 덩그러니 누워 눈 오던 날들을 떠올리다 나는 다시 가슴이 뜨거워졌다. 눈만 생각하면 항상 그렇다.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초등학교 5학년 겨울이었다.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난 나보다 약하고 어린 존재에 무지했다. 10년 넘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나는 일곱 살 3월말에 학교에 입학했다. 9월생이어서 만으로 5년 6개월에 학교에 간 셈인데 일단 너무 느렸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엄마가 정성스레 싸준 도시락을 열심히 먹고 운동장에 나가려고 신발을 집는 순간 5교시 수업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에 밖에서 놀다가 수업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어찌나 빠른지 금세 사라지고 나만 혼자 남아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분명히 끝나자마자 집에 오고 있는데 가방놓고 나와 놀고 있는 반 친구를 보기도 했다.       


친구들과 다툼이 나도 먼저 사과하는 쪽은 항상 나였다. 미안하다고 쪽지를 써서 책상 속에 넣어두곤 했는데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사과를 하는 내가 나보기에도 한심한 적이 많았다.     


무르고 약한 내 모습은 집에서 더 학습되고 상승했는데 감기에 걸려 열이 날 때가 그런 때다.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고 이마를 만지며 ‘아이고, 어떡하나’ 했는데 그때마다 한 살씩은 어려졌다.


아빠는 ‘전설의고향’을 볼 때면 나를 이불로 돌돌 말아 무릎 위에 앉혀놓고 “아고, 귀신이다. 귀신이다” 소리를 질렀는데 그 고소한 공포는 어려야만 누릴 수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날에도 나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소뿔도 녹아서 꼬부라진다는 삼복더위에 동생이 태어날 조짐이 보이자 아빠는 외할머니를 도와 방 안에 출산 준비를 하랴, 산파 할머니를 모셔오랴 바빴다. 그때는 가정출산이 흔했고 아기아빠는 산파를 도와 많은 역할을 했다.      


내 관심은 사거리 양품점 유리상자에서 본 푸른색 꽈배기 머리띠에 가있었다. 그 날 아침에도  아빠에게 머리띠를 사달라고 졸랐다. “오늘 사야 하는데. 누가 사가면 어떡해.” 막상 동생이 태어난다고 하니 아빠에게 더는 조를 수가 없었다.      


어둠이 내리고 집안은 조용해졌다. 안방에선 산파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과연 동생이 태어나긴 하는 것인가.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빠였다.  

   

“이게 맞으냐?”      


아빠의 손엔 머리띠가 들려있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박힌 듯 청초한 꽈배기 머리띠. 아빠는 머리띠를 건네주고 싱긋 웃으며 다시 사라졌다. 머리띠를 만져보다 까무룩 잠이 들어 그대로 아침이 되었다.   

  

유난히 밝은 햇살이 집안을 감싸고 있었다. 아침 더위도 잠시 물러가 마루와 안방에는 소슬하게 바람까지 불었다. 안방으로 건너간 오빠와 내 눈 앞에는 작은 생명체가 누워있었다. “이쁘지?” 누워있는 엄마가 말했다.      


오빠와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얼굴은 빨갛고 머리엔 잔 핏줄이 선연한 아기님, 아기분? 생명인 채 사람인, 사람인 채 생명인 어떤 존재. 눈이 마주치자 난 엉성한 첫 인사를 건넸다. “어어. 안녕?”     


아들이 분명하다고 장담한 아빠의 믿음만큼이나 아들 같은 딸이었다. 삼칠일이 지나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 한 번씩 쳐다보며 하는 말씀은 늠름하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마루에 나와 첫 사진을 찍던 날은 제법 어른스럽게 카메라를 응시해 우리를 웃겨주었다.      


이미 6학년 여름방학에 접어든 나는 아기의 탄생이 신비로우면서도 생경했다. 집에 하얀 기저귀가 걸리고 엄마는 아기를 어르고 젖을 물리고 밥을 하느라 녹초가 됐다. 내겐 수업이 끝나면 일찍 집에 돌아와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갑자기 바뀐 일상이 낯설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첫 공휴일인 광복절에는 친척집에 놀러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아빠에게  경을 쳤다. 바쁜 엄마를 도와주지 않고 말도 없이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잘 가지 않는 친척집에서 밤까지 노닥거리다 온 내가 나 자신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내 최초의 반항으로 기록해도 좋을 만큼.   

 

언니수업은 결코 쉽지 않았고 동생은 아직 내게 ‘아기’로 존재했다. 그날 그 일이 없었다면 계속 그랬을까.    

  

어느새 가을 운동회가 다가오고 총연습을 하는 소운동회 날이 되었다. 그걸 운동회로 착각하고 구경 오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운동장 갓길에 쪼그려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고 심심했다. 앉은걸음으로 기어 나와 건너편에 앉은 친구에게 말을 거는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선생님 오신다.”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 틈새로 잽싸게 앞으로 뛰어가는 순간 딱딱한 것이 눈썹을 가로질러 박혔다. 잠시 후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왼쪽 얼굴이 빠르게 젖어왔다. 배구코트 심판이 올라가는 발판에 눈썹을 정통으로 찧은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지방으로 일을 간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달려왔다. 옆집에 아기를 맡기고 황급히 달려온 엄마는 낮이나 밤이나 똑같이 입는 남색 치마 차림이었다. 나보다 더 떠는 엄마를 보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전혀 울지 않은 채 상처를 꿰매고 집에 돌아왔다. 열다섯 바늘이었다.       


엄마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자 마루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걱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의젓하고 늠름하게 나를 기다린 아기가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아기가 엄마를 찾지도 않고 세상에 이렇게 순할 수 있느냐고 입을 모았다.      


아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마치 고생 많았다는 표정으로 순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아기는 그렇게 나의 동생이 되었다.    

  

어느새 11월 6일, 동생의 백일이 다가왔다. 어차피 백일잔치는 형편상 힘든 일이었다. 조용한 백일이 지나가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평범하게 저녁을 먹었다. 밤이 되자 엄마는 함께 어딘가에 가자며 길을 나섰다. 머리엔 불린 쌀 한 말을 이고, 등엔 동생을 업은 엄마를 따라 시장에 있는 방앗간을 향해 가는 그 길.    

 

일찍 문을 닫은 초겨울 시장터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놀란 것이 있다면 천지를 덮은 새하얀 눈이었다. 포대기에 업힌 동생은 엄마의 겨울 오버를 뒤집어쓰고 쌔근쌔근 잠을 잤다. 나는 동생이 깨지 않을까 손으로 포대기를 누르며 걸었다. 손이 시렸다.      


엄마가 디딘 발자국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며 세상에 엄마와 나, 동생 셋만 존재하는 착각이 들었다. 엄마가 늦은 밤에 방앗간을 찾은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다. 막내의 백일을 그냥 넘길 수가 없어 낮 내내 망설이다 아끼던 쌀을 불렸으리라.      


뽀오얀 눈길을 걸어 아늑히 불을 밝힌 방앗간에 다다르자 엄마와 내 머리에선 김이 났다. 동생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쌀가루를 빻는 컨베이어벨트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깬 동생은 나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솥에 물을 끓여 동글동글 경단을 만들었다. 액운을 물리친다는 빨간 수수팥떡은 우리를 사랑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맛있게 먹어주었다.      


동생은 무럭무럭 자라며 갈수록 튼실해져 보행기에서 빼내려면 두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밑에서 잡으면 오빠가 위에서 동생을 빼냈다. 오빠와 내가 깔깔거리며 웃으면 동생도 간지럽고 멋쩍은지 함께 웃었다.

     

그날 밤의 눈길은 해마다 몇 번씩 나에게 소환되곤 했다. 포대기를 눌러가며 손을 호호 불고 걷던 나는 마침내 나보다 어리고 작은 존재를 받아들였으리라. 그리고 세상에는 순백의 눈길처럼 존재 자체로 역할을 다한 완벽히 무해한 어떤 존재가 있으며, 그 이름이 동생이라는 것도 알았으리라.     

     

사람은 순간을 통해 성장한다. 고립된 지난해 크리스마스, 11월 초의 눈 천지가 불현 듯 믿기지 않아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간 나는 작게 나동그라졌다. 관측 사상 첫 눈이 가장 빨리 내린 날은 10월23일이며, 그 해가 동생이 태어나던 1981년임을 알았을 때 한 살은 더 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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