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
나는 다섯 살에 부모와 헤어졌다. 보통은 다섯 살 때의 기억이 있을 법도 한데 나에게는 전혀 기억이 없다. 왜 그럴까. 헤어짐의 상처가 너무 커서인가? 아니면 보육원 생활이 너무나 즐거워서, 재밌었기에 모두 다 잊은 건가. 혹은 어차피 부모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지워진 것일까.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 다행인지, 혹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더 생각이 난다면 아마도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을 것이다.
부모가 보고 싶기는 하지만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지금 내가 부모를 찾는다면, 부모는 일흔이 넘은 노인일 것이고, 지금의 내 나이 보다 훨씬 어렸을 때 나를 버린 샘이 되는 것이다. 내 부모가 나를 버렸을 때의 나이보다, 지금의 나는 더 나이 먹고, 성장해 있다. 나는 이제 부모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클수록 마음 속 원망은 더욱 쌓여만 갈 것이다. 나는 나답게, 내 인생은 주도적으로 살자. 내가 가진 나름의 인생철학이다.
어느 방송사 인터뷰에서 ‘부모를 용서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나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어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보육원에서 성장할 때 명절이 되면 함께 사는 친구들이 친가족의 집에 가거나 친지들이 보육원에 방문하는 것을 보았다. 선물을 받기도 하고 용돈을 챙기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도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 부터는 썩 부럽지는 않았다. 가끔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 당연한 듯 헤어짐을 겪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프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버린 부모의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뉴스에서 연일 변두리 어느 한적한 곳 화장실에 신생아를 유기한 사건을 들을 보면 무척이나 힘들어진다. 왜 그리 그런 참혹한 사건이 눈에 밝히는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드라마를 보면 출생의 비밀이 흥미의 소재로 다뤄진다. 대부분은 이상한 결말이다. 서로 형제였느니 말도 안 되는 출신배경을 연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차라니 내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것이 천만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제 살아생전에 부모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 그분들이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장담하지 않는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그저 생부모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정말 잘 살았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나처럼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을 돕고 더 이상 보호아동들이 발생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보호아동을 더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이력이 나에게는 큰 자산이기에 나는 이 길이 사명이라고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생부모가 나를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보고 싶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교도소에 들어가 나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아닐지, 약물중독자로 인해 만나기를 꺼려하거나. 아니면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 둘 다 사망하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상상을 좋아하기에 이런 생각을 하면 재미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나를 버린 것을 확실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생부모가 부디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나 역시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혹자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나의 생부모가 새로운 인생을 잘 살고 있길 바란다. 혈연중심 사회에서 가문이 없다는 것이 때로는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나는 내 가문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이 매우 뿌듯하고 위대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낳아준 부모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