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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업번역가 May 25. 2021

일본어가 영어보다 어렵다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

나의 전공은 일본어. 대학교 4년 동안 일본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하필 일본 역사에 빠져서 교환학생으로 유학 중일 때는 역사 연구회도 들어가고 뭐 그랬다. 그런데 거기서 정작 발표한 건 한국사였음. 삼국시대 우리나라가 일본에 어떤 우수한 문물을 전파해줬는지를 지금부터 발표해보겠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심 샘솟는 타입. 두유노미나리? 두유노윤여정?


신기하게도 일본에 살다 오니 그동안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 정갈하고, 사람들 친절하고, 조용하고 - 전부 비슷한 단점으로 느껴지게 됐다. - 왜 '엽서'를 아직도 보내야 하며, 왜 가방 안이 안 보이게 타월은 덮어야 하는지 - 이래저래 일본이 지겨워진 지금 나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바닥이다. 그래도 대지진이 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 아는 사람 너무 많아.


일본어 번역 시장은 일한/한일 모두 엄청나게 치열하다고 들었기에 함부로 도전도 못 해봤는데, 일본어 가지고도 업체에 한번씩 재수 없는 오두방정을 떨어놔서인지 가끔 중역의 형태로 일본어 번역을 받게 될 때가 있다. 일이 들어오면 기분이 둘로 나뉜다. 


1. 아, 꿀

2. 아, 진짜 부담


아무래도 더 익숙한 언어니까, 내게 있어 일본어 번역은 영어보다는 쉽다. 진짜 이상한 유행어가 나오지 않는 이상 영어처럼 혹시 잘못 해석했나 싶어서 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고, 대본 없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는 점에서 마음의 안정도 느낀다. 앗, 그럼 영어는 못 알아듣는다는 소리? 그것에 대해서는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언젠가 들려드리겠습니다.


거기다가 주로 받은 작품이 만화 원작이어서 그런지 대사들도 평이해서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가끔 일본 감성의, 한국 유교걸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수위를 넘는 대사가 툭툭 튀어나올 때만 빼면 뭐. 일본 순정만화는 15세인데도 거침없는 표현이 나올 때가 있다. 그리고 그걸 화면으로 고대로 옮긴다. 에구머니, 망측시러워라. 보통 돌려 돌려 표현하는데 '거유'라는 단어가 나왔을 땐 좀 고민했다. 거유가 한국에서도 통하는 말인지 궁금해서... 일단 내 주위는 아무도 그런 말 안 쓴다. 다들 일 년에 거유라는 단어 몇 번이나 쓰세요? 나는 0번. 이 글에 벌써 세 번 정도 썼으니 앞으로 3년 동안은 안 쓰고 싶다.


아무튼 이렇다 보니 쉽기는 쉬운데, 한편으로는 세상에 일본어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조금만 의역해도 오역으로 낙인찍힐 것 같아 부담스럽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번역-의역-오역이라는 미묘한 선을 지키는 게 번역가의 일이긴 하지만, 한 줄 번역하고 절 하고 목탁 두드리고 번역가의 마음가짐 되새기고 다시 한 줄 번역하면서 1,500줄을 번역하는 게 아니잖아? 일단은 번역하고 예고편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쫄려서 제발 아무도 번역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기만 바랄 뿐.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마이너한 작품만 번역한 건지, 지금까지는 번역에 대해 말하는 사람 없이 잘 지나갔다.


재미있게도 이런 고충은 언어별, 장르별로 있는 것 같다. 특히 팬이 많은 시리즈나 문화적 배경이 진하게 녹아있는 작품은 번역가를 더욱 부담스럽게 만든다. <기생충>은 현지화에 맞춘 적절한 번역으로 칭찬받았지만, 외국 콘텐츠에 익숙한 한국 시청자들을 위한 번역을 할 땐 현지화해야 하는 단어나 맥락의 기준을 상당히 촘촘하게 잡아야 한다. 옥스퍼드를 서울대로 바꿔봐. 이제 그럼 우리가 옥스퍼드도 모를 거 같냐! 이러는 거지. 자막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의 시청자는 최대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반대로 자막에 익숙한 한국 시청자들은 너무 현지화되지 않은 외국 콘텐츠 그대로의 느낌을 선호해서 그런 걸까.


결국 번역가의 작품이란 대중에게 평가받는 것이기에, 점점 똑똑해지고 아는 게 많은 요즘 대중 앞에서는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알수록 이 부담은 더 커진다. 나도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 잘 알지 않을까? 내 번역이 관객들에게 만족스럽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다 때려치우고 관객1로 돌아가고 싶기는 하지만 아직은 나를 다독이며 꾸역꾸역 번역을 하고 있다.


이런 부담이 자칫 오만해질 수 있는 번역가의 실수를 잡아주는 거겠지.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때야말로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는 운전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면허 따고 이제 운전 좀 하네? 싶으면 지하 주차장에서 기둥에 옆구리를 거하게 긁어 문짝이 찌그러지는 거지. 이건 실화다. 찌그러진 차를 고치러 갔는데 부품이 없어 고치기도 힘들고 같은 모델 중 폐차하는 차가 있으면 거기서 문짝 떼어와야 한단다. 떼어와 달라고 했더니 지금 있는 차는 흰색뿐이란다. 내 차는 검은색이라서 거절했지만, 흰색 문짝으로 달았으면 다른 의미로 도로에서 아무도 안 건드리는 차가 되었을 거란 아쉬움은 남는다. 아, 흰색 문짝으로 달 걸. 아, 달마시안 같았을 텐데. 아, 진짜 매드맥스 같았을 텐데. 앞에 겸사겸사 톰 하디도 매달고.


아무튼, 옆구리 찌그러지고 싶지 않으면 나의 성장 목표는 앞으로 더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정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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