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업번역가 Apr 13. 2022

부업의 꽃말은 희망

회사에서 눈물이 차오를 땐 고개를 들어 부업을 바라보는 번역가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다.


변명해보자면, 내 잘못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 질책한 사람의 잘못이 쌓이고 쌓인 게 내가 업무를 처리하던 시점에 터졌을 뿐이었다. 그것을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모두의 앞에서 질책을 당하니 황당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계급장 떼고 그냥 한 판 붙자고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곧 퇴근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서로의 말꼬리를 잡으며 괜히 일을 키울 생각을 하니 피곤했다. 억울함을 주장하며 자꾸 욕설을 쓰는 손가락을 달래 적당히 좋은 말을 버무리고는 서둘러 발송 버튼을 눌러 창을 빠져나왔다. 피곤이 몰려왔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동기들과 치맥을 하며 상대방 욕을 마구 해댔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기억이 희미한, 코로나 이전의 일이다. 막차를 놓치지 않게 집으로 와 겨우 씻고 더부룩한 기분으로 잠들고는, 다음날 일어나 식탁에 앉아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다시 한번 한탄을 풀어놓고는 했다. 사실 이 방법은 꽤 도움이 된다. 당장 기분 나쁜 감정을 잊을 수는 없지만, 속에 쌓인 응어리를 털어놓기에는 좋다. 문제는 점점 살이 찌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안 좋아지면서 입사 전에 저혈압이었던 사람이 고지혈증 판정을 받게 된다는 거지만.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어느 과거의 날. 그때는 또 다른 사건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날 보고 동기가 맥주나 하러 가자고 권했다. 하지만 그날은 갈 수가 없었다. 당장 주말 전까지 납품해야 하는 번역 건이 있었다. 몇 번의 권유를 물리치고 그냥 집으로 갔다. 지하철 안에서는 꽤 우울했고, 샤워를 하면서도 한숨을 계속 쉬었다. 그렇게 책상 앞에 앉아 한 줄 한 줄 번역을 해나가는데, 처음에는 집중이 안 될 정도로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회사일이 점차 아득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목표한 번역량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땐 꽤나 산뜻했다.




에이지 오브 부업. 부업의 시대다. 인형 눈알 붙이기나 봉투 접기를 떠올리게 했던 이 단어는 이제 ‘긱 워크’라는 멋진 이름으로 바뀌어 직장인을 유혹하고 있다. 번역 업계에도 부업을 목표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예전에는 어떻게 경력을 쌓아 이력서를 작성하면 좋을지, 번역가로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요즘은 얼마를 벌 수 있냐는 질문이 더 많다.


부업을 시작할 땐 목표를 잘 세워야 한다. 돈이 목적이라면 돈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부업이 있다. 어떤 부업은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어떤 부업은 - 예를 들면 영상 번역은 초기 투자금이 있고 투자금 회수까지 긴 시간을 들여야 하기도 한다. 오로지 돈이 목적이라면 영상 번역을 선뜻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부업의 가장 큰 기쁨은 플랜 B를 마련해준다는 데 있다. 회사가 싫어도, 욱하는 마음으로 때려치우고 싶어도, ‘나가서 뭐 하지’부터 시작해 ‘다시 입사해서 적응하느니 여기가 낫지’로 끝나는 고민을 한 차례 하다 보면 살짝 마음이 처진다. 번역을 한 후부터는 '나가서 뭐 하지'의 고민이 삭제되면서 오히려 회사의 잔물결 같은 스트레스를 넘길 수 있게 됐다. 집에 돌아오면 번역가가 되어야 하니 회사일을 머릿속에 앉혀두고 곱씹는 일도 줄었다. 정말로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바빠지니 정신에는 여유가 찾아왔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한 편씩 쌓아간 번역 작품이 어느새 250여 편이 넘었다. 전업 번역가들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숫자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 언제든지 번역의 길로 방향을 틀어도 될 만큼의 숫자이기도 하다. 1년은 52주다. 5년은 260주다. 250편 번역이라는 건 단순하게 평균을 내보면 5년 간, 매주 한 작품을 번역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 편씩 납품하던 사이에 나도 모르게 본업 외에도 꽤나 굵직한 부업 경력이 생긴 거다.


내가 아는 어떤 번역가는 번역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직장인에게 늘 같은 말을 한다. ‘여러분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절대로 그만두지 마세요’. 번역으로는 변변한 돈을 벌지 못하는데, 냅다 직장을 그만두었다가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을 많이 봐서 그렇다고 한다. - 물론 이 말은 새겨들어야 한다. 영상 번역가로 데뷔하고 첫 달은, 내가 회사에서 받았던 월급에서 십만 단위를 뺀 모든 숫자를 삭제한 금액을 받는다고 생각해라. - 하지만 나는 부업 번역가로 살면서 이 길이 매력적인 다른 이유를 찾아냈다. 회사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 그리고 어느 한쪽의 미래에 조급해하거나 불안해지지 않는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서 직업이라는 것의 의미를 확장하고, 더 풍부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의 앞에서 공개 저격을 당하는 경험은 아주 불쾌했지만, 나는 이 사건을 나의 (정신) 승리로 끝맺기로 했다. 내게는 부업이 있으니까, 퇴근 후까지 너를 신경 쓸 시간은 없네요. 부업 번역가는 이렇게 매일의 우여곡절을 자그마한 (정신) 승리로 넘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저는 그런 말 안 쓰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