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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불꽃 Aug 22. 2020

도대체 병명이 뭐야?

#2. 공황장애를 알기까지

  큰 아이가 퇴근한 내게 싱글벙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엄마 눈감아 보세요"라고 하더니 깜짝 선물을 전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진행 한 효행 글쓰기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며 상장을 내보이는 것이다.
참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다.


"다른 친구들은 아빠, 엄마 이야기만 썼는데 저는 할머니 이야기도 써서

교장선생님이 살펴보시고 주신 거래요"


큰 아이의 말을 듣고 계시던  할머니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우리 할머니는 가끔 아파서 병원에 가신다. 우리를 위해 고생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나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상장을 받은 것도 대견하지만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해 여름, 아이들 방학 기간 내 친정엄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병원 진료며 응급실이며 할머니 손 꼭 잡고 따라다닌 큰 아이였기에 그런 딸아이가 이제는 제법 할머니 건강을 챙길 만큼 컸다는 것이 참 고맙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는 어느새 엄마의 키를 따라잡을 만큼 훌쩍 자라 5학년 언니가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 걱정에 울면서 할머니를 따라나서던 우리 집 꼬맹이는 이제 어엿한 1학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10년을 떨어져 살다 엄마가 오신 뒤로 함께 살림하려니 이것저것 부쩍 잔소리가 늘었다. 용돈을 넉넉히 드리지 못해 현금이 부족할 때는 종종 카드로 생활비를 쓰시도록 했다.

막내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어느 날 병원에 다녀오신 엄마가 퇴근한 나를 불러 앉히며 잠시 뜸을 들이신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서 신경과에 갔는데 신경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래. 그래서 갔더니 나 같은 할머니들이 대기실에 참 많기도 하더라. 다 손자 손녀 봐주는 할머니들 이래. 우울증도 오고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서 왔다고 하던데...  오늘 이걸 해 보라고 주더라 " 라며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미신다.


MMPI 검사다.
MMPI는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로 정신병리를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신의학과 임상 장면에서 주로 활용하는 자기 보고형 검사이다.


오 마이 갓!! 분명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내가 다루었던 검사지인데...
이게 왜 엄마손에...?

찰나, 내 머릿속은 무엇하나 또렷하지 않은 채 거미줄이 되어 얽히고설켜 있었다. 엄마손에  들려있는 검사지를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종이가 엄마손에 들려 있을 때까지 도대체 난 뭘 한 거지?'

'그냥 육아를 도와주는 할머니들이 잠시 잠깐 겪는 스트레스일 뿐이라고, 제발 누가 말 좀 해줘'

'이건 너무나 형식적인 한낱 종이 한 장에 불과할 뿐이라고!'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채신 걸까,

아니면 오후 내내 내가 퇴근해 오기만을 기다리며 올 것이 왔음을 우리에게 선전포고라도 할 작정이셨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 닥칠 병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간의 삶을 한탄하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 몰고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뭔데, 왜 이리 담담하신 거지...

 
"혹시라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엄마 얘기 들어봐. 오늘 병원에 갔는데 신경정신과 선생님이 나보고 뭐하냐 그래서 손녀들 셋 봐준다고 하니까 집이 있냐, 남편이 있냐, 용돈은 어떻게 받냐 이런 걸 묻더라.
괜히 내 딸 흠잡는것 같아서 의사 선생님 말 끝에, 우리 딸 저한테 잘해요~라고 말했는데 용돈은 어떻게 주냐고 또 묻는 거야.

카드도 주고 현금도 주고 한다니까 카드를 주는게 잘못된 거라고 하네.
엄마가 지금 타지에 와서 친구도 없고, 남편도 없고 가진 게 없는데 용돈도 카드로 받으니까 너무 불안한 마음이 크대. 아무래도 카드 하나 쓰면 딸한테 어디서 얼마 썼는지 다 문자가 갈테니까그럼 나도 뭐 하나 살 때마다 눈치 보게 되고 그게 다 스트레스가 된대."


".........................."


'이런 등신, 멍청이, 바보 머저리... 이렇게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던 때가 또 있었을까,

세상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고 다니더니 여태 뭘 한 거지?

엄마랑 알콩달콩 그렇게 손녀들 재롱 보며 재미나게 살게 해 드린다더니 네가 원한 게 이거였어?

엄마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안 보였니?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싶었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셋째 아이의 양육에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아빠 없이 오빠와 단둘이 강원도 본가에서 지내셨기에 그래도 잔소리는 좀 하지만 좀 더 세심하게 엄마 마음 살피는 딸이랑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맛있는 음식도 해 먹고, 같이 쇼핑도 하면서 그렇게 알콩달콩 친구처럼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그럼 더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욕심이었고 이기심이었고 착각이었다.
그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철저히 나 혼자만의 계획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한참을 울고 났는데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지, 온전히 내게로 향했던 화살은 신랑에게 지독한 원망이 되어 향하고 있었다.

좀 더 우리 생활이 여유로웠다면,

왜 가까이 계신 어머니는 안 봐주시고?

장모님한테 좀 더 신경 좀 써 드리지....

이미 암흑이 되어 버린 내 마음은 불만과 비난, 핀잔, 원망으로 가득 차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었다.

신랑에게 향한 마음은 끝없는 미로 속 어둠을 달렸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신경정신과 내원은 우리 가족의 적신호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은 혹여 모를 뇌 병명이나, 심장병 등 각종 순환계 질환을 의심하며 검사에 검사를 더했고,

호흡이 어려워 택시를 타고 가던 외래진료는, 사지의 마비와 숨이 멎는 고통으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수상한 보자기

그 해 겨울, 공기 좋은 강원도 집에 가서 좀 쉬다 오면 좋겠다며 엄마가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셨다.


쉬는 날 모셔다 드리겠다던 나의 만류에도 아침 버스는 괜찮다며 일찌감치 집을 나선 엄마가 홀로 버스에 오르셨다. 엄마는 원체 빠른 성격이신 데다 결정하신 건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 해야만 직성이 풀리시기에 걱정은 되었지만 엄마의 컨디션을 믿어 보기로 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1시간 반쯤 지났을까, 수화기 너머로 "엄마 죽을 것 같아" 라며 엄마의 위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은 인천 집이요. 엄마는 횡성까지 가셨던 지라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가 계신 곳으로 구급차를 불러드리고 황급히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 안에서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난 엄마가 비닐봉지로 응급처치를 하다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급하게 기사님께 119를 불러 달라, 내려달라 요청하셨고, 기사님은 국도의 어느 처소에 엄마를 내려 주셨단다. 도로변에 하차한 엄마가 내가 부른 구급차를 타고 횡성 병원으로 이동했고 이내 오빠와 우리 부부가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낯선 그 곳에서 온 힘을 다해 정신줄을 붙잡고 사경을 헤매며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출발할 때와 달리 찢어진 엄마의 짐가방이 웬 보자기에  싸여 있다.

찢어진 짐 가방을 가지고 어느 도로변에 서 있는 엄마를 보고 지나가는 차에서 어떤 여자가 던져 줬단다. 후에 엄마 말씀이 헝클어진 머리로 찢어진 짐 보따리를 가지고 한적한 길바닥에 있으니, 딱 집 나온 정신 나간 여자처럼 보였으리라, 불쌍해서 차에 있는 보자기를 던져주고 갔을 것이란다.

세상에....

사실이든 아니든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도려내어 울고 또 울었다.


그 후로 엄마는 그나마 시야가 트여 덜 답답한 새벽 첫차 앞자리 3번 좌석을 이용하시다가, 한번 더 고속버스에서 호흡곤란으로 중간에 하차하여 응급실로 실려 가신 뒤 장거리 이동이 아예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 해 우리는 가까운 대학 병원으로, 서울로, 동네 종합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또 다른 병명을 의심하며 수차례 진료와 검사를 받았고,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다니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뇌혈관이 일부 좁아져 있는 혈관질환과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퇴근길 엄마의 전화를 받고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링거를 꽂고 진통제를 맞고 있는 엄마와 그 옆 침대에 세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 간호사 핸드폰을 보며 응급실에 있던 그 모습을.... 그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까, 주저앉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참 많이 애썼던 기억이 난다.


호흡곤란이 일어날 때마다 엄마는 비닐봉지로 온 힘을 다해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공기 좋은 강원도 본가에 가셔서 지내시면 낫지 않을까 싶어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어느새 엄마는 이곳 병원에 스스로를 의지하고 계셨다. 대학병원과 거리가 있는 본가가 더 불안하신 것이다.

엄마의 마음이 까맣게 물들고 있었다.

그래,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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