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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현 Aug 09. 2023

Z세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묻다. [셋]

디자이너가 되다.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월세방 하나를 구하고, "나"에 대해서 골똘히 고민했다.

 "나라는 사람은 음악에 심취해 있으며 여행을 많이 다니고, 다른 나라의 문화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 언젠간 꼭 살아보고 싶어 해 왔다. 여행을 많이 다니려면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가 필요하다. 그 둘을 충족하려면 프리랜서 활동이 가능한 능력이 필요하고, 영미권 혹은 유럽권에서도 취업이 가능한 직종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정말 답이 없었다. 취업에 대한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고 스물일곱이 되니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가 정말 무서웠다. 현실의 벽을 그때 깨달았다. 뭐라도 하겠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 준비도 안된 나는 내가 세운 기준을 만족하는 직군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어? 이거나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해도 유튜브 편집자라도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강남의 유명 학원에 등록해 무작정 1년 과정을 시작했다.


 평생 그림 한 번 그려본 적 없는, 이른바 졸라맨도 못 그리는 내가 무슨 깡으로 그림을 그려서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어 보겠다 한 건지. 꽤 비싼 수강료를 내면서 그래도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해봐야지,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마인드로 그냥 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내가 하고자 하면 해내왔으니까. 고교 시절 미약하나마 공부에서의 성취, 전역 이후 아주 미미한 성취에서 나온 하찮은 자신감으로 시작한 내 디자이너 준비 생활은 처참했다. 남들이 3시간이면 할 것을 나는 9시간, 10시간을 앉아있어도 비슷하게도 따라 할 수 없었고,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니 질문할 수도 없었다. 매 일, 매 주마다의 컨펌은 나에게 엄청난 압박감이었고, 나 스스로 정말 떳떳하게 열심히 했지만 남은 것이 없으니,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열심히 안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나름 내가 하고자 하면 해내고 인정받던 나에게 그것만큼 힘든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일 년을 했다. 하니까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뭔가 하기는 했다. 몇 개의 영상 포트폴리오. 정말 뛸 듯이 기쁘고 뿌듯하더라. 조악하고, 변변치 못해도 무언가 했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변변치 못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이력서를 돌렸다. 몇 군데 연락 오는 회사들이 있었고,  일 년이 넘는 백수 생활과 처음 해보는 취업이라는 기쁨에 첫 면접 본 곳에서 구직 일주일 만에 일을 시작했다. 디자이너 한 명이 프로젝트 진행, 미팅, 일정 관리 모두 하는 시스템이라 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조건과 관계없이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출근했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내가 생각했던 그 시스템의 장점들은 아주 영세한 중소기업의 단점으로 특징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주먹구구 식의 일처리, 경력직의 부재와 말도 안 되는 임금계약과 휴무체계로 인해 며칠 되지 않은 회사생활에 설렘과 열정보다는 불만이 쌓여갔다. 하지만 그중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한건 냉방 시스템의 부재나 열악한 임금 계약이 아닌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컴퓨터 장비 상황이었다. 첫 출근부터 프로젝트를 맡으며 일을 진행하는데 심각할 정도의 장비 상황은 수많은 건의에도 개선되지 않았고, 왜 이곳에 모든 직원이 일 년이 채 안된 디자이너들만 모여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가온 현실 앞에서 상황 탓만 할 수 없었고, 개인 컴퓨터로 집에서 작업을 병행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는 와중 나름 규모나 시스템이 꽤 갖춰진 다른 회사로 운이 좋게 면접이 잡혀 한 달여 만에 이직하게 되었다.


 새로 간 회사는 강남의 스튜디오 밀집지역에 위치하여 5층 짜리 신축 사옥을 갖고 있었고, 넓은 공간과 깔끔한 인테리어, 좋은 장비, 많은 팀들이 있는 회사 다운 회사였다. 처음 만져보는 매킨토시와 회사 나름의 시스템, 이끌어 줄 수 있는 팀장님과 사수들. 정말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출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제부터는 내 능력이 문제였다. 이제 디자인이라 해봤자 1년 남짓한 나의 밑천은 단 며칠도 안되어서 드러났고, 나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정말 작은 업무였음에도 심각할 정도로 처리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겠거니로 바라봐주던 회사도, 나의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며 채용 여부를 고려하는 듯하였다. 세 달 안에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손은 나를 더욱 어버버 하게 만들었고, 일 외적으로도 주눅 들게 되었다. 머릿속에는 '내가 뭐 한다고 처음 하는 디자인을 하겠다고 했을까, 잘리면 디자인 안 하고 그냥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맴돌며 나를 점점 끌어내렸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잘릴 땐 잘리더라도, 실력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팀원들이 퇴근해도 혼자 남아 9시, 10시까지 사무실에 있으면서 공부하고, 작업했다. 능력적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그냥 했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성실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적어도 일은 못해도 꼴 보기 싫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에겐 지옥이었던 수습기간을 마쳤고, 몇 차례 내부 회의와 면담 끝에 와일드카드(?)로 최종 채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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