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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May 31. 2023

요리를 지속하는 힘

어제저녁, 자기 직전에 토실토실한 둘째 녀석이

"엄마, 내일 아침에 감자수프 먹고 싶어"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6시쯤 저녁을 먹고

아빠가 와서 무언가 먹으려 할 때면 또 함께 먹고

형아가 학원 갔다 와서 뭔가 챙겨 먹으려고 하면 또 먹는

먹는 것을 사랑하는 친구다.

갑자기 주문한 '감자수프'에 평소 요리도 잘 하지 않는 나는

저녁 늦게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큰 감자 알 하나와 양파 반 개를 꺼내

칼로 깎고 자르고 있다.

아침에 준비하기에 바쁠 것 같아 미리 준비를 해 놓아야 했다.

"OO아, 냉장고에서 버터 좀"

" 이거 타지 않게 계속 저어줘. 엄마 이거 얼른 정리하고 올게"

나의 듬직한 보조 친구는 보조 경력이 짧지 않은 만큼 척척 옆에서 필요한 도움을 준다.

우유를 넣고 끓이기까지만 하고

늦은 시간이라 믹서기는 돌리지 않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믹서에  갈고, 소금, 후추를 넣고 다시 한번 끓이고

바게트 빵을 토스터에 굽기 시작한다.

이제 막 눈뜨고 씻고 나온 둘째에게 

엄마가 한 감자수프 먹어보라며 의기양양 내밀었다.

(이 와중에 첫째는 감자 수프를 싫어한다. 둘 밖에 안되는데 뭐 이리 취향이 다른지)

아침 뉴스를 보며 바게트를 감자 수프에 찍어 먹는 아이가

"우와, 엄마 내가 생각한 맛이야"

"진짜 따뜻하고 맛있어"

라며 극찬을 한다.

요 녀석에게 맛없는 건 없기 때문에 요리 실력 따위는 상관없다.

그럼에도 실룩실룩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도 급히 화장을 마치고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마친 후

내가 한 감자 수프를 한 그릇 떠 식탁에 두었다.

큰 숟가락 가득 떠 입에 넣었다.

'응?'

고개를 갸웃.

'응? 이상하다.'

두세 번 떠먹은 수프는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맹숭맹숭했다. 소금을 덜 넣었나? 물이 많았을까?

근데 왜 저 녀석은 맛있다고 했지?

엄마 거 많으니까 좀 더 먹으라고 권했을 때

내 것도 많다며 사양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우리 둘째의 립 서비스에 나는 또 속은 채

열심히 요리를 할 예정이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칭찬과 격려해 주시면 더 잘해요"

라는 학부모님의 이야기는 비단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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