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큰 아이가 생겼을 때, 나 또한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참 새롭고 신비했다.
대학원 논문학기 중이었는데 입덧이 심해서 2월 봄방학에 다른 학교 선생님 면담 가서 몇 번 토하고 들어가
면담을 진행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입덧 때문에 아침 출근 지하철에서 몇 번 내렸다 타고 저녁에는 화장실 옆에 쭈그리고 잠들기도 했다.
물론 꽤 오래된 기억이지만 힘들었다. 그렇게 힘겹게 쓴 논문을 마치고 8개월의 임산부가 되어 졸업을 했다.
의도치 않게 논문 태교를 한 셈이다.
출산 예정일을 며칠 앞둔 10월의 어느 날 친정과 시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만삭이 되어 오늘 나오나 내일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인데 나올 것 같은 아이가 자꾸 안 나온다.
아빠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일도 도와보고 공원을 종일 걸어보기도 하는데 아이가 아직 나올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배가 너무 아파 스스로 병원에 찾아갔다가 이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 안 나온다는 절망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아파야 하는 것인가.
밤새 잠을 못 자게 7분 간격의 고통이 찾아와 눈 뜨자마자 엄마 아빠와 함께 다시 병원에 가서야 입원할 수 있었다. 너무 아파서 아침도 안 먹고 바로 병원에 왔다. 그 전날부터 밤새 아팠으니 곧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침 입원했는데도 정말 오래도록 진통을 했다.
밤 10시가 넘어셔야 아이가 나왔으니, 그동안 너무 지쳐있었다.
나의 입원 소식을 듣고 오신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오후 내내, 저녁 내내 기다리셨다.
엄마는 내 옆에 앉아 내 손을 꼭 쥐고 진통할 때마다 더 힘들어하셔서 이러다 엄마가 병나겠다 싶은 하루였다.
그렇게 내 몸이 정말 부서지는구나 싶은 하루가 다 가고 10시 넘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서울에서 내려오고 있던 남편이 도착하기 전에 아이가 먼저 나왔다.
탯줄도 내가 잘랐다. 의사 선생님이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릴 거냐고 묻길래
난 당장 죽겠는데 그게 무슨 필요냐며 내가 쓱싹쓱싹 잘랐다.
그리고 정말 지쳐서 쓰러졌는데 시아버지가 오셔서 아이를 안더니 첫마디
'네가 15대 종손이다'
나는 그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내내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엄마와는 다른 멘트에 처음으로 내가 그 날의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된 느낌이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다. 아버님이 나에게도 수고했다고 이야기하시고 다 하셨는데도
아이를 향해 짓는 미소와 기쁨이 그 당시 나에게는 아주 생소했다.
'15대 종손?' 그래, 내가 14대 종부였지. 알고 결혼했는데 사실 나는 그게 뭔지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