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응회구
제주도가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자연유산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지역이 유산에 해당하는지 어떤 가치를 인정받았는지는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제주도는 2007년 7월 2일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명칭으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유산에 해당하는 지역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벵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성산일출봉 응회구' 총 3개 지역이다. 거문오름이 만들어낸 용암 동굴 중에는 만장굴만 일반에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동굴들은 학술적 이유로 개방되어 있지 않다. 이들 자연유산의 총 면적은 1만8,846ha로 섬 전체 면적의 약 10%를 차지한다.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을 선정하는 여러 기준 중 7, 8번에 해당하는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7번은 특별한 자연미와 심미적 중요성을 지닌 빼어난 자연 현상이나 지역이고 8번은 생명체의 기록, 지형발달과 관련하여 진행 중인 중요한 지질학적 과정, 또는 중요한 지형학적, 지문학적 특징을 비롯해 지구사의 주요 단계를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사례이다. 이 두 개의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에 제주도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제주도의 상징이자 세계자연유산 지역 가운데 하나인 한라산은 해발고도 1,950m에 달하는 남한 최고봉인 산이다.(한라산의 높이에 관해서는 최근 조사를 통해 이보다 조금 못 미친다는 보고들도 있다) 핵심 지역인 한라산 천연보호구역(동서 약 14.4km, 남북 약 9,8km, 해발고도 800~1,300m 이상)과 완충 지역인 주변부로 나뉘며 총면적은 16,440ha이다. 핵심지역은 9,093ha, 완충 지역은 7,347ha이다.
한라산은 순상화상 형태로 정상부에 백록담 분화구와 영실기암, 약 40여개의 오름 등 다양한 화산지형을 갖고 있다. 백록담은 화구의 서쪽 절반은 조면암, 동쪽은 현무암이 형성된 독특한 분화구이다. 조면암질 용암돔이 형성된 이후에 현무암질 용암이 분출해 분화구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라산의 식생 또한 특별하다. 국내 서식하는 4,000여 종의 식물 가운데 절반 가량이 한라산에서 보인다. 특히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이 구상나무이다. 구상나무는 러시아 극동 해안에서 한반도 고산을 따라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도 자라고 있지만 한라산처럼 넓은 숲을 형성하고 있는 곳은 전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라산 해발 1,500m에서 1,600m 구간은 면적의 40%가 구상나무 숲인 까닭에 세계 최대 규모의 구상나무림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구상나무는 한국이 원산지인 특산종으로 전세계에 알려져 있다.
구상나무를 처음 발견한 건 제주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의 포리 신부였다고 한다. 1907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발견한 포리 신부는 이를 분비나무로 생각하고 표본을 미국 식물학자인 윌슨에게 보냈다. 윌슨은 표본을 관찰한 결과 분비나무와는 다른 종이라고 판단해 1917년에 직접 한라산을 다녀간 후 당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품종으로 학계에 보고하게 된다. 이로써 한국이 원산지인 구상나무의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셈이다. 학명은 Abies Koreana E.H Wilson. 당당하게 koreana라는 지명이 붙어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당시엔 생물 주권에 관한 개념이 없던 터라(일제 강점기 시절이기도 하지만) 구상나무를 반출해간 미국이 여러 품종으로 개량해 전 세계에 널리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바로 한라산의 구상나무를 개량한 것이며 특히 유럽에서 인기가 좋다. 현재 개량된 구상나무의 기준 표준과 특허권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의 자원이지만 정작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은 미국인 셈이다.
구상나무 외에도 한라산 정상 부근에는 돌매화나무, 눈향나무, 시로미, 들쭉나무, 구름송이풀, 구름떡쑥, 한라솜다리 등이 자라고 있다. 이들 고산식물은 빙하기에 동북아시아에서 유입된 것들로 빙하기 말기에 기온이 상승하면서 기온이 낮은 곳을 찾아 이동하면서 결과적으로 한라산 정상 일대에 고립된 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제주도에는 용암 동굴이 150개 이상 분포한다고 알려져 있다. 용암동굴은 주로 파호이호이 용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물처럼 점성이 낮은 특성으로 멀리까지 흘러가 만장굴과 같은 긴 동굴을 형성하기도 했다. 용암동굴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용암이 지표를 빠르게 흘러가면서 공기와 접촉되는 겉쪽은 쉽게 굳어버리는 반면 안쪽은 용암이 계속 통과해가며 빈 공간으로 남게 되는데 이러한 지형이 용암동굴의 초석이 된다.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하는 동굴은 거문오름에서 수 차례에 걸쳐 분출한 용암이 경사면을 따라 북쪽과 북동쪽 해안가까지 약 14km를 흘러가면서 만든 것들로 특히 해안가 지역과 인접한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용암동굴이면서 석회동굴의 특징이 함께 나타나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보통 석회 동굴은 석회암 지대에서 만들어지는데 이처럼 화산 지대에서 두 개 동굴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런 용암동굴의 모태가 되는 거문오름은 해발 438m(비고 129m), 면적 0.7km2인 분석구이다. 지하의 마그마가 지표를 뚫고 올라올 때 용암과 화산쇄설물(스코리아, 화산탄 등), 가스 등을 방출하게 되는데 특히 화산쇄설물이 화구를 중심으로 쌓여 원뿔 같은 산세를 이룬 것을 분석구라고 한다. 대부분 오름들이 이런 분석구에 해당한다.
거문오름이 만든 여러 동굴들 중 가장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곳이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다. 전세계에서 제주도에만 있는 특별한 지형으로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데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만장굴을 만들어낸 용암이 바닷가 쪽으로 흘러가다 끊겨진 용암동굴의 일부로 독특하게도 석회동굴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 해안가와 가깝다 보니 동굴 위쪽에 해안가에서 날아든 모래가 쌓인 사구가 형성되었고, 모래에 섞인 조개 등 해양생물의 석회질 성분이 빗물을 타고 동굴 내부로 흘러들어가 종유석과 석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용암동굴에서는 볼 수 없는 지형인데다 아름답기까지 세계적으로도 높은 보존 가치를 지닌다. 아쉽게도 이 두 동굴은 일반에 개방되어 있지 않다.
-벵뒤굴
총길이 약 4.5km(비자림에서 평대초등학교까지 거리)이며 동굴 천정이 얇아 함몰된 지점이 23곳에 달한다. 이중 18개 지점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지만 일반인 접근은 금지되어 있다. 벵뒤굴은 가지굴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미로형 동굴로 용암석주와 용암교, 용암주석, 낙반 같은 구조가 잘 남아 있다. 사람이 거주한 흔적 뿐 아니라 탄피와 유리병, 철제 도구 같은 유물이 수집되었다.
-만장굴
총길이 약 7.4km이르는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의 동굴이다. 주 통로는 폭이 18m, 높이 23m에 달할 정도로 웅장한 분위기를 풍긴다. 내부 형태와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굴 중간에 천장이 함몰되어 3개의 입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일반인 출입은 제2 입구에 해당하며 전체 길이 중 1km만 탐방이 가능하다. 다양한 용암동굴생성물들 중 특히 개방 구간 끝에 있는 약 7.6m 높이의 용암석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장굴과 관련해 김녕초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탐험대를 만들어 최초로 탐사에 나섰던 일화가 유명하다.
-김녕굴
총길이 705m로 동굴이 구불구불해 김녕사굴 또는 사굴로로 불려왔다. 1962년에 만장굴과 더불어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동굴 내부는 일부분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서련판관의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용천동굴
2005년 전신주 공사 도중에 땅이 푹 꺼지면서 우연히 발견된 곳이다. 총길이 3.4km에 동굴 끝에 길이 800m 이상인 호수가 형성되어 있다. 호수 안에는 눈이 퇴화된 물고기가 발견되어 놀라움을 준 바 있다. 동굴 안에 토기편과 동물 뼈, 목탄, 철기, 돌탑 등 8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견되어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당처물동굴
당처물동굴도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곳으로 1994년 인근 주민이 밭농사를 위해 터고르기를 하던 중에 나타났다. 총길이 290m이 동굴 안에는 수많은 탄산염 종유석과 석순, 동굴 진주 등이 자라고 있어 학술적 가치를 지닌 세계적인 동굴로 평가된다. 동굴을 가득 메운 다양한 동굴 생성물들이 화려한 면모를 자랑한다.
성산일출봉 응회구
성산일출봉은 해발 179m(비고 174m), 면적 045km2 가량인 응회구 오름이다. 응회구란 지하수나 얕은 해저, 호수 부근에서 발생된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지형을 가리킨다. 높은 열의 마그마가 물과 만나 급속히 가열되면서 수증기가 폭발해 형성된 산체이다. 이런 화산을 수성화산이라 부르며 산체 모양에 따라 응회환과 응회구 두 종류도 나뉜다. 성산일출봉처럼 산체가 높고 경사가 급하며 화구가 작은 것은 응회구라 부른다.
성산일출봉은 해안 절벽이 침식되면서 응회구의 내부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전세계 응회구의 지표가 될 정도로 지질학적인 측면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섬 내의 많은 화산체들 중에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여 약 5,000년 전에 화산 활동이 일어나며 생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