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담당선생님의 말씀은
"아무래도 나이가 있기 때문에 난자가 정자를 만나 수정이 되고, 배아가 되어 커나가는 과정에서 힘이 약할 수가 있습니다. 연령대로 보았을 때 우리 센터에서의 성공률은 10% 정도로 생각됩니다. 물론 고려해야 할 요소 중에 나이가 전부는 아니지만 세 번째 시술을 권해드리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한 번 상의해보시고 알려주시겠어요?" 였다.
10%의 확률을 보고 또 한 번 시도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또 안되면 언제까지 다시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과정에서 몇 년 전에 난자냉동을 해놓은 것이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왠지 조금 더 젊었을 때 냉동한 난자니까 더 잘 클 수 있는 힘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이 시험관시술을 잘한다는 것은 기사 등을 통해 많이 접해왔었다. 사실 독일에 살기 때문에 독일에서 해보자하고 생각했던 것이고 한국에 다녀오는 비용 등을 생각했을 때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독일에서 두 번의 시술을 했던 것이다.
'그래, 한국에서 한 번 해보자! 더 나이들기 전에 시도해보자!'
그리고 이 계획에 대해 남편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우선 독일에서 하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정기적으로 하고 있던 일이 있었는데 말씀을 잘 드리고 필요한 수순을 밟아 나갔다. 그리고 주로 하고 있던 일중에 일부는 다행히 한국에 가서도 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맞았던 1차와 2차 백신 이후 14일이 지나고 나서 영사관에 격리면제신청을 할 수 있어서 그 당시 2주간이었던 자가격리에 대해 면제를 받고 입국하여 바로 활동할 수 있었다. 물론 가기 전 PCR검사, 도착해서 바로 또 검사, 일주일지나고 또 검사를 해서 계속 음성이어야 자가격리면제가 유지되는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자가격리를 하는 것과 비교해서 많은 자유가 있었다. 물론 2주간은 더 조심하고 신경을 많이 쓰긴 했지만.
사실 2차 시험관시술이 임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 결과를 받은 날 남편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확인해보자는 말이 나와서 백신접종 가능일정을 검색해보니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가능했다. 그렇게 1차 백신을 맞고 시간이 지나 2차도 잘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험관시술 중에는 담당의사선생님이 권하지 않아서 백신접종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렇게해서 백신을 2차까지 맞게 되었다.
나는 계속 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독일에서의 시험관 시술 2차를 경험하고 나서는 결과가 좋지 못하여 자신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기대감이 들고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얘기긴 하지만 그동안 먹고 싶을 때마다 적어놓은 한국음식 목록을 보면서 가기 전부터 설레임이 들었다. 오랫만에 만날 가족과 친구들도 얼른 보고 싶었다.
매거진 '한국에서의 시험관 시술이야기'에서 다음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