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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귀선 Jan 02. 2023

하부장이 무너졌다.

비움의 방법은 ‘기부’


친정엄마가 드디어 그릇을 비웠습니다.

여러 이유들로 비우기 어려웠던 그릇들을 드디어 비웠습니다.

‘그냥 아까워서’

‘비싼 그릇이라서‘

‘새것이라서’

‘추억이 깃든 그릇이라서’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하부장에 쌓아 둔 그릇들이었지요.

그릇이 얼마나 많았는지 오랜만에 열어 본 하부장은 거의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비움의 제1법칙은 모든 물건을 모조리 꺼내는 것.

하부장 안의 그릇들을 모조리 꺼냈습니다. 주방 바닥이 발 디딜틈도 없이 그릇들로 꽉 찼지요. 몇십 년 동안 모은 그릇들이 한눈에 다 보였습니다. 그릇들의 상태가 너무 좋아서 버리기엔 아까웠습니다. 고민한 끝에 그릇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화를 해서 어떤 그릇들이 기부가능한지 물어보고 하나하나 깨지지 않도록 포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너무 오래된 그릇이나 두꺼운 도자기 그릇은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능한 물품들을 꼭 전화로 알아보고 보내야 합니다.) 박스로 6개나 나왔습니다. 만약 그릇을 버려야 했다면 쉽게 비우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엄마도 버리는 것보다 기부를 한다는 말에 비우는 결심이 한 결 쉽다고 하셨습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접시도 선물 받고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찻잔도 새 주인에게 간다는 생각에 아까운 생각 없이 포장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안 쓰는 그릇을 누군가 잘 써주면 고마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쓰지 않는 컵과 텀블러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정리는 정리를 부릅니다. 하부장을 정리하니 상부장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미루고 미뤘던 안 쓰던 그릇을 비우니 도미노처럼  정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안 쓰는 반찬통과 언젠가 쓸 것 같아서 모아 둔 유리병들을 모두 비웠습니다. 주방 한 켠의 하부장 그릇 비움으로 시작해서 상부장의 컵과 텀블러, 그동안 모아둔 유리병들, 서랍 속 오래된 반찬통과 주방 용품을 비웠습니다. 정말 많이도 비웠지요. 언젠가라는 말을 좋아하는 엄마가 변했습니다. 언젠가라는 말은 주방을 어지럽히는 큰 적입니다. 엄마는 속이 시원하다고 하셨고 이제 필요한 그릇만이 남아있는 주방을 보고 더 이상 그릇을 사지 않고 있는 그릇들을 잘 써야겠다고 하셨습니다.(원래 그릇 사는 것에 취미는 없지만)


비움과 정리는 소비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필요 없는 물건들과 함께 살아갈 때는 모릅니다. 우리가 진정 그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비로소 정리를 시작할 때 그 물건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물건이며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을 안고 살고 있었는지를 느끼면 더 이상 소비가 필요 없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무너지기 직전의 하부장은 다행히 그릇을 다 빼고 나서야 무너졌습니다. 아래위로 꽉 차 있던 그릇들이 서로 지탱하고 버텼던 것입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아까운 그릇들이 빛도 못 보고 와장창 깨졌을 것입니다. 원래 2층으로 빽빽하게 그릇들로 채워졌던 하부장은 무너진 2층을 빼고 1층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충분했습니다. 아니 여유롭다는 표현이 맞겠어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게 가득 찬 서랍과 상부장도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빈 공간은 새로운 무엇을 다시 채울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빛이 납니다. 청소도 한결 쉬워져 청소가 재미있어집니다. 물건을 비우고 그 공간을 청소하던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사니까 너무 좋네”


비움을 결코 쉬운 게 아닙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어야 시도할 수 있지요. 내 소유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그리고 아깝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비울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지요. 동시에 앞으로 좀 더 소비에 신중해져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물건을 소유할 때의 기쁨은 잠시뿐이고 익숙해지면 다른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쌓여가고 소비는 늘며 우리 마음은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정리를 시작해 보세요. 소비의 기쁨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마음도 평안해질 것입니다.    

정리를 무작정 비우고 버린다고 생각하면 어렵습니다.(이 물건에 쓴 돈이 얼만데…) 기부는 물건을 조금 더 쉽게 비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쓰이지 않는 물건은 가치가 불분명해지지만 필요한 이에게는 선물과도 같지요. 비우기 어려운 물건이 있다면 버린다고 생각하지 말로 나보다 더 필요한 이가 잘 사용해준다고 생각하면 복잡한 마음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물건은 잘 써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공간에 필요 없는 물건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주방 서랍을 둘러봅니디ㅣ. 1년 동안 잘 사용한 물건도 있지만 반면 사용하지 않고 자리만 지켰던 물건도 있을 거에요. 내 마음을 복잡하게 하고 주방서랍을 어지럽히는 물건들을 정리해볼까요.

무려6박스가 꽉찼다.


무너질뻔한 하부장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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