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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귀선 Jan 09. 2024

고민이 있습니다.

진심을 담은 소통의 기쁨

소중한 고객님들 감사합니다.

젤라또 사장의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건 바로 손님들과의 소통에 대한  문제다. 그 이유는 손님들이 주문을 할 때 유형이 참 다양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바로 ‘사투리 유형’이다. 쇼케이스 안에 젤라또들의 맛을 고를 때 “이 짝에 있는 것 아니 아니 저~짝에 있는 것으로 함 줘봐요.”라고 주문을 하고 “근데 저쪽 가상에 있는 건 무슨 맛이에요?라고 물어본다. 그때 나는 손님과 최대한 동질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쌓기 위해 “이 짝이요? 저 짝이요? 아~가상에 있는 맛은 망고예요.”라고 이야기하는데 입에 잘 붙지 않아도 따라서 말한다. 그 찰나의 시간에 나는 표준어로 대답해야 하는가 손님을 따라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매번 고민이다.

“이쪽이요? 저쪽이요? 맨 끝에 있는 맛은 망고맛입니다 손님~”

이렇게 말하면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 그리고 유대감이 깨질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는 고민이지만 입은 이 짝, 저 짝, 잘도 따라 한다.

(이짝,저짝:이쪽 저쪽/가상에 있는:맨 끝에 있는)


두 번째 유형은 ‘수수께끼 유형’이다. “이쪽에서 세 번째 거랑 두 번째 칸에 맨 아래 거 주세요.”

우선 나는 손님과 마주 보는 관계다. 오른쪽 왼쪽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계산이 필요하다 손님의 손가락과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떤 맛을 중얼거리는지 입술을 집중력 있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번 더 물어야 한다. “손님~ 오른쪽 세 번째 쿠키 맛 맞으신가요?”, “혹시 두 번째 칸 맨 아래는 바닐라빈 맞으신가요?”

 확인을 하지 않으면 소통에서 문제가 생긴다. 젤라또를 다시 담아야 하고 얼른 젤라또를 먹고싶었던 손님의 얼굴도 굳어지기 시작한다. 똑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젤라또를 담으면 안 된다. “아니 그거 말고요! 그 아래요!” 종종 목소리가 커지는 손님이 있는데 그때부터는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최대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손님이 또 수수께끼를 내는구나 생각하며 한 번 더 여쭌다. 이렇게 가끔 손님과의 수수께끼는 스쿱을 잡은 손에 긴장감을 준다.    


세 번째 유형은 ‘창조적 유형’이다. 젤라또 쇼케이스 앞에는 최대한 먹음직스러운 젤라또를 가리지 않도록 맨 아래쪽에는 젤라또 이름표가 붙어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사이즈로 순서대로 붙어있다. (음, 다시 보고 오니 조금 작은 글씨 같기도 하다.) 손님과 나 사이에는 쇼케이스라는 벽이 있다. 주문을 받을 때 목소리가 큰 손님이 주문하는 메뉴는 알아듣기에 편하고 반응하기에도 좋다. 그런데 가끔 피스타치오 맛을 “저기요, 파스타치오 하나요.”, “어? 파스타치오다!”, “우리 파스타치오 먹을까?”라고 주문하는 손님들이 있다. 사실 우리 젤라또 매장에는 파스타치오 맛 젤라또가 없다. 피스타치오가 있을 뿐… 처음에는 “손님 피스타치오 맛으로 드릴까요?”라고 정중히 주문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이 피스타치오를 파스타치오라고부르신다면 그 젤라또는 파스타치오 맛이다.

“손님 파스타치오 드릴게요~”

파스타치온지 피스타치온지가 뭐가 중요한가. 손님이 젤라또를 주문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네 번째 유형은 ‘권위자 유형’이다. 이 유형은 두 분 이상의 손님이 오면 나타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맛까지 정해준다.

“넌 바닐라 먹어, 아니야. 딸기는 먹지 마~난 초콜릿 먹을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식간에 한 사람이 세 사람 맛을 정했다. 이미 상의하고 오신 분도 계시지만 십중팔구 의견 불일치로 쇼케이스 건너편에서 작은 말다툼이 벌어지는 상황도 있다.

“내 맛을 왜 네가 정해~난 다른 거 먹을 거야! 너는 너 알아서 먹어. 난 내가 알아서 먹을 거야”부터 시작해서

“왜 그래, 정말 애가 알아서 고르게 좀 놔둬!”,

“방금 밥 먹고 또 쌀맛을 먹는다고? 넌 탄수화물 중독이야. 그만 좀 먹어라.”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며 걱정하는 상황도 펼쳐진다. 그럼 나는 컵이나 콘을 손에 쥐고 미소를 머금은 채 가만히 기다린다. 쇼케이스가 가끔 진짜 벽이었으면 하는 상상도 펼쳐본다. 마음속은 참 난감하다. 작은 토의를 하시는 손님들 앞에서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고 잠깐 사라졌다 나타나고 싶기도 하다. 게다가 한분이 내 의견을 묻는 순간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인가’ 나느 누구 쪽에서 동조를 해야 하는지 그냥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처음에는 마냥 기다리기도 하고 한쪽 편에 서서 동조해본 적도 있지만 이제는 최대한 손님들의 작은 토의들을 들리지 않은 척한다. 그리고 천천히 고르세요라는 말과 함께 옆에 있는 콘을 괜히 한번 정리하거나 젤라또 스쿱들을 닦으며 피해준다. 토의가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여러가지 맛을 전부 보여드리기도 한다. 이렇게 맛 권위자 형이 있다면 콘과 컵을 골라주는 콘 컵 권위자 형도 있다. 특히 부모님이 아이에게 젤라또를 사줄 때 콘보다 컵에 먹으라고 협박과 설득을 한다.

 “콘을 다 흘러 녹으니 컵으로 먹어~ 컵으로 안 먹으면 안 사줄 거야~”

그럴 때는 대부분 컵으로 합의가 끝난다. 이때 조금 금이 가서 안 파는 콘들이 있다면 아이의 젤라또 컵에 살포시 꽂아준다. 아이도 웃고 엄마도 만족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흐뭇해지는 나까지 모두 윈윈이다.


다섯 번째 유형은 ‘사랑싸움형’이다. 싸우다가도 젤라또를 드시러 오는 분들이 있다. 두 분 다 표정이 매우 좋지 않다. 쇼케이스 앞에서 좌불안석으로 주문을 기다린다. 다행히도 주문할 때의 목소리는 감사하게도 평화롭다. 이때는 침묵이 답이다. 괜히 손님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말을 걸면 민망해질 수도 있다. 그저 맛있는 젤라또를 먹으며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꾹꾹 눌러 담아드리면 된다.


여섯 번째 결정장애 유형’이다. 이 유형의 손님들을 보고 있으면 꼭 거울을 보는 것만 같고 영혼의 단짝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거 먹을까, 저거 먹을까, 뭐가 맛있어요? 뭐가 제일 잘 나가요? 아 뭐 먹지?”

쇼케이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손님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맛보기는 필수다.

 “고민되시면 맛 한번 보여드릴까요? 제가 맛 보여드린 거 꼭 안 고르셔도 돼요. 많이 맛보시고 고르셔도 돼요.”(단 평일 만이다. 주말엔 맛보기 할 틈이 없이 바쁘다.)

“바닐라 주세요, 아니 아니 죄송한테 그냥 초콜릿으로 주세요. 아니 바닐라 할까” 그럴 때는 다른 손님들 모르게 서비스로 반반을 섞어서 드릴 때도 있다. 언젠가 결정장애가 있는 나에게도 그런 사장님이 한 번쯤은 나타나겠지 하는 믿음으로.


일곱 번째 유형은 ‘네가 사 유형’이다. 이 유형은 특히 가족 간, 친구 간에 나타난다. 이때 갑작스럽게 서로 ‘네가 사는 거 아니었어?’라는 이야기에 우리 셋은(아무도 카드를 주지 않을 경우) 조금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침착하게 사는 분에게는 서비스 맛보기를 올려주거나 양을 조금 더 듬뿍 드린다. 서비스를 받지 않은 사람도 젤라또를 얻어먹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고 사준 사람은 서비스를 받아 기분이 좋아진다. 젤라또를 먹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나의 작은 마음이다.


여덟 번째 ‘내 카드로 유형’이다. ‘네가 사 유형’과는 반대로 서로 카드를 동시에 내민다. 이때야말로 정말 난감하다. 나는 어떤 카드로 결제해야 하는가. 이미 젤라또를 담은 상태라 카드주인에게 서비스를 주는 기회도 끝나버린 상태다. 그리고 누구한테 미안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결제한 카드 주인? 카드를 내밀었는데 안 받은 사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감사하는 수밖에.


아홉 번째 ‘외국인 손님 유형’이다. 쇼핑몰이라 그런지 외국인 손님이 종종 온다. 이때  외국인 분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면 고민이 없다. 그런데 초큼 하는 경우 혹은 아예 못하는 경우 혼란이 온다. 내 짧은 영어 실력과 바디랭귀지를 동원해서 의사소통을 시작한다. 사실 컵 or콘? 젤라또 초이스가 전부일 뿐이지만 이때 알고 있는 영어단어를 사용할 것인지 꿋꿋하게 한국말을 할 것인지 매번 고민이다. 소심한 성격의 승리로 요즘은 꿋꿋하게 한국말로 하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 놀러 왔으니 젤라또가게에서의 상황을 한국말을 배워도 좋을 것 같아서라는 깊은 생각으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컵으로 드릴까요? 콘으로 드릴까요? 맛 골라주세요. 영수증 드릴까요?”

 바디랭귀지와 함께라면 전세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다. 때론 한국사람보다 더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해 주신다. 그렇다면 나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마지막 땡큐는 꼭 영어로 하고 있다.

Thank you~bye~


마지막 '단골손님 유형'은 따로 이야기해보겠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감정이 예민한 전형적인 내향인으로서 손님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참 고민이 많았다. 처음엔 아마 삐그덕대는 이상한 젤라또 사장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내가봐도 그랬으니까. 긴장속에서 손님을 마주하고 주문을 받으면 젤라또를 담기 시작한다. 젤라또 한컵을 담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적막한 침묵이 부담스럽다.

 그 침묵이 싫어서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했다.

도미빵을 구울때도 마찬가지다. 반죽을 올리는 시간 30초, 빵이 구워지는 시간 3분 30초. 약 4분동안 손님과 나사이에 거리는 바로 코앞이다. 처음엔 어쩔 줄 몰라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그리고 앉아 계시라고 얘기한다음 다 구워지면 직접 도미빵을 들고 손님을 찾아다녔다. 그 앞에 서서계신 것보다 그게 훨씬 편했으니까. 손님과 둘이 있을 때면 어떤 말을 꺼내야할 지 몰랐다.

(지금은 그 3분30초가 너무 짧다. 좋아하는 손님이 오면 이미 구워놓은 도미빵이 있어도 다시 구워드린다. 안부를 묻고 대화하기에 3분 30초가 3초처럼 짧다. 가끔은 도미빵이 다 구워졌다는 알림노래가 야속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오늘 처음 만났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젤라또.(그리고 도미빵) 처음엔 젤라또 취향을 물으며 시작했다. 젤라또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내 취향도 슬며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안부를 묻고 칭찬도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손님들의 장점도 유심히 살펴본다. 진심을 담은 칭찬은 무뚝뚝한 손님도 웃게만든다. 그렇게 조금씩 스킬을 익히다보니(?) 생각보다 손님들과의 이야기는 즐거웠다. 침묵속에서 젤라또를 담는 것보다 훨씬 더.

 이렇게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지면 우리는 금새 친해지기도 한다. 그냥 매장 앞을 지나가는 손님에게도 인사할만큼 여유도 생겼다.

한 번 본 손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두 번 본 손님은 단골이고 세 번 본 손님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를 만난듯이 대한다.

(그리고 진짜 친구가 되기도한다. 소중한)


약 3달동안 쇼핑몰 푸드 코트 한 쪽 길목에 서서 팝업 매장을 운영하며 느낀 것은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그 진심은 항상 통했다.

많이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통한다.



크리스마스 날 행복하세요.
인증샷 찍어주는 유쾌한 선생님들
알아서 줄 서주시는 고객님들 감사합니다.


잊지못할 팝업 매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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