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던가? 꽤 용기가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나는 어디 가서 (용기 있게)“사장님 많이 주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고 먹고 싶은 것이라도 많이 받고 싶다는 마음을 목구멍 아래로 꾹꾹 눌렀던 것 같다. 그 한마디를 왜 못했을까 생각해 보니 첫 번째 이유는 사장님에게 많이 주세요라고 말하면 줄 수도 없고 안 줄수도 없는 사장님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거절했을 때의 그 민망함은 온전히 내 몫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정량이 있어서 안 돼요’라고 듣는 순간 쥐구멍을 찾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하는 일 중에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라고 한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장님이 안된다는 확률도 고작 4%이며 용기 있게 건넨 말 한마디로 나는 맛있는 것을 조금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사실 사장님에게 많이 달라고 하는 것은 미안한 것이 아니다. 사장님 입장에서 고맙기도 한 일이다.(사장이 되어보니 그렇다) 우리 음식이 얼마나 맛있게 보였으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용기 내서 많이 달라고 했을까 그 마음을 생각해 보면 더 많이 안 줄 이유도 없다. 조금 손해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사실 손해가 아니다. 젤라토를 더 많이 주면 손님입장에서 기분도 좋고 많은 양을 더 오래 먹으니 홍보효과가 발생한다. 기분 좋게 많은 양의 젤라또를 들고 다니면서 우리 젤라또를 다른 사람들에게 홍보해 주는 것이다.
가끔은 정량이 맞는데도 너무 적다는 손님도 있다. 그럴 때는 기분 좋게 한번 더 떠드리면 된다. 얼마나 더 드시고 싶었으면 정량인데도 조그맣게 보인 것일까? 장사하면서 손해 보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그런 손님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손님은 조금 후에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온다. 많아 보이면 많아서 좋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손님, 적어 보이면 적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손님, 맛있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손님에게 그들의 용기는 마땅히 손뼉 쳐줄 일이다.
나는 어떤 손님이었나
맛있어도 맛없어도 양이 생각보다 적어도 많아도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이 가게를 평가하고 올지 안 올지 결정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용기를 내보려 한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면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맛있어 보이고 많이 먹고 싶은 음식은 한 번쯤은 많이 달라고 용기 있게 말해 보려고 한다. 내가 겪어보니 많이 달라는 손님은 참 귀엽다. 그래서 진짜 많이 주고 싶다. 그래서 진짜 많이 드린다. 많이 먹고 싶다면 용기 있게 많이 주세요라고 도전해 보자.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도전해서 나 같은 사장을 만나면 진짜 많이 줄 테니까.
말하지않아도 알아요.
사실 많이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젤라또를 담다 보면 듬뿍 드리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특히 귀여운 손님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더더욱.
그 귀여움을 떠올리면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귀여운 어린아이가 떠오르겠지만 반전으로젤라또를 주문하는 손님들은 남녀노소 전부 귀엽다. 나이에 반비례할수록 반전 귀여움 수치가 올라간다. 예를 들면 전혀 젤라토를 드시지 않게 생긴? 나이가 많은 무뚝뚝한 남성분일수록 더 귀여워서 듬뿍 올려드린다.(젤라또 가게를 운영하면서 내 좁은 편견이 깨지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많다.)
‘어라? 아저씨 한 분이 젤라또를 드시러 오셨네? 너무 귀엽잖아?’
‘어? 이번엔 중년 아저씨 무리들이다. 맛보기는 서비습니다.’
‘얼레 할아버지 혼자 오셨네? 손녀의 마음으로 듬뿍 드려야지.’
‘어머 할머니 두 분이 오셨네? 잘해드려야지.’
‘군인 아저씨 세 분이 오셨네, (사실 군인 아저씨가 아니다 군인 청년들이다) 고생하니 서비스 팍팍 드려야지.’
‘어머 귀여운 아이들 손님이잖아, 그럼 원하는 맛으로 많이 줘야지.’
‘어머 엄마들 손님이잖아. 동질감이 느껴지네. 좀 더 드려야지.’
‘아 사랑스러운 커플 손님들 사이좋게 나눠드시라고 맛보기 올려드리자.’
‘결정장애가 있는 분은 맛도 보여드리고 선택한 맛에 다른 맛을 더 올려드리자.’
‘엄마랑 아들이네~ 승현이 생각난다. 대리만족으로 넉넉하게 드려야지.’
‘엄마랑 딸이네~ 데이트하는데 기분 좋으시라고 듬뿍 드려야지.’
‘아빠랑 아들이네~ 아버님 고생하시네~ 당떨어 질 땐 초코지. 초코맛 좀 올려드려 볼까?’
‘아빠랑 딸이네~ 자상한 아버지에게 서비스를 좀 올려드려 볼까?’
'아이고 우리 단골손님들!!! 오늘은 어떤 서비스를 드릴까나~'(단골손님들이 가장 귀엽다)
'인스타보고 온 손님들은 감사인사로 마카롱 서비스입니다.'
젤라토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유형은 가지각색이다. 매일 다른 손님들이 다른 맛의 젤라또를 찾는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귀엽다는 것이다. 그들 중 생각나는 젤라또 가게 귀여운 손님 베스트 5명을 뽑아보았다. 귀여움의 순위는 정할 수 없다. 모두 공동 1등이다.
1. 무뚝뚝하지만 젤라또에 진심인 손님
멋있는 수염을 기르고 있는 굉장히 무뚝뚝함이 흘러내리고 말투에서 시니컬한 기운이 뿜어 나오는 한 남성분이 콘으로 두 가지 맛을 주문했다. 먼저 컵으로 주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버림으로써 귀여움 수치가 올라갔다. 그리고 주문한 두 가지 맛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초코와 딸기 맛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초코는 어른이, 어린이에게 인기 있는 맛이다. 여기서 귀여운 포인트는 두 가지 맛 콘을 들고 옆 테이블에 자리 잡고 진지하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휴대폰 렌즈까지 갈아 낀 채 젤라토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각도를 찾으며 진지하게 사진을 찍고 그제야 젤라또를 먹는 모습을 보니 눈을 뗄 수 없었다. 귀여움 수치 최강. 달려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젤라또 사장은 내향적인 인간이다.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사진 찍힐 젤라또를 위해서 비주얼에 신경 써야겠다.
2. 내향인 손님, 외향인 손님
젤라또 쇼케이스 앞에서 구경만 하는 손님들이 꽤 있다. 구경만 해도 좋으니 가까이 와서 봐도 된다. (새로운 손님과 인사를 건네고 맛을 설명해 주는 일도 재밌으니 부담 없이 가까이 와주십시오.) 대부분의 손님은 미안해서인지 나처럼 내향인이라서인지 몰래 보고 몰래 사라진다. 반면 외향인 손님들은 맛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메뉴판을 정독하시고 인사까지 친절하게 하고 간다. 팝업 매장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이들 손님은 아이스크림 모형을 꽤 좋아한다. 먹어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3. 약속을 지키는 손님
쇼핑몰 특성상 젤라또를 들고 다니면 가게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손님들은 밥을 먹고 구경한 다음 “아래 내려갔다가 올게요~”라고 말한다. 진짜 다시 온다. 약속을 지키는 손님들 너무 감사하고 귀엽다.
4. 센스 넘치는 손님
많이 달라는 말을 돌려서 센스 있게 말하는 손님들이 있다. “저는 많이 줘도 남기지 않아요.”, “아이스크림은 질보다 양이죠?”, “우리는 한 컵 시켜서 막 갈라먹지 않아요. 젤라또는 1인 1컵이죠.”, “와 예쁜 언니가 진짜 많이 주신다. 와~와~” 젤라토를 담기도 전에 손님의 그런 리액션은 젤라또크를 꽉꽉 눌러서 탑을 쌓게 만든다. 그런 센스 있는 멘트들은 정말 배우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센스 있는 손님들은 특히 더 많이 드린다.
5. 배려 깊은 손님
선택장애가 있는 손님은 배려도 넘친다. 쇼케이스에서 한 걸음 물러서 젤라또를 구경하는 손님이다. 한 걸음 물러선 이유는 젤라또를 고르는데 다른 손님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위함일 것이다. 그 마음이 정말 귀엽고 따뜻하다. “가까이 오셔서 고르셔도 돼요.”라고 말하니 “괜찮아요. 제가 좀 오래 걸려요.” 오히려 미안하다는 손님이다. 주문을 하고서 세 번을 바꾸는 손님도 있다. “딸기 주세요. 아 아니 그냥 초콜릿이요. 진짜 죄송해요. 그냥 딸기그릭요거트로 주세요.” 선택장애가 있는 손님들을 백번이해한다. 그 이유는 나도 선택장에 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