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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May 27. 2024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수 있다니

위안이 되는 한마디

나에게 잡초란 어디서도 살아남는 근성이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아빠가 갚지 못해 넘겨받은 빚이 있었고, 내 이름으로 아빠가 만든 핸드폰 요금의 미납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되어야 했으며, 아빠가 언제 어떻게 만든 내 이름의 신용카드 때문에 금융권에서 수시로 체납 경고 우편물과 전화를 받을 때였다.


이 근성이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던 그때 나는 나를 잡초라고 부르며 살아남아야 했다.

누군가의 발길에 보지 못해 짓밟히고, 때로 어떤 의도에 의해 짓이겨도 어떻게 든 살아남을 수 있는 잡초가 되어야 했다. 당시의 내 인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는 이 끈을 어떤 방법을 써서 라도 끊어버리고 싶었다.


부모의 그늘 아래 쉬고 싶다는 바램은 없앤 지 오래였고, 내가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이 진심으로 원망스러웠던 때였다. 이름 석자도 버리고 싶을 만큼 숨도 쉬기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에게는 ‘잡초’라는 단어가 정신줄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인 것처럼 두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김창완 선생님의 책에서 유독 ‘잡초’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잡초에 관한 얘기였는데요.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전국을 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00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종자 은행을 세웠다고 소식을 전하면서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이런 말을 덧붙였더라고요. 그러니 스스로 잡초라 할 일이 아니네요. 용기를 갖자고요. -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는 어디에 있었어도 나 자체였다. 잡초처럼 인생을 힘들게 했던 여러 구덩이에서 끈질기게 기어올라 살아남았던. 매번 살아남아야 하는 엉뚱한 곳에 놓여진 나를 끄집어 내려 기를 쓰고 이겨내야 했던. 스스로를 잡초라 부르며 왜 나는 고귀한 꽃이 되지 못할까 생각했었지만 나 자체로 하나의 단단한 존재였던. 나는 나였다.


어느 순간에도, 어떤 상황에도, 나를 억누르는 이들 속에 움츠리고 있어도, 나는 나였다.

나를 나이게 만드는 그 마음이 나를 살게 했다는 것을 오늘 이 글귀를 읽으며 깨달았다.


담담하게 던지시는 ‘용기를 갖자고요.’이 한마디가 고난했던 나의 지난 시간을 다독여 주는 것 같아 조금 뭉클해지는 밤이다.


#나크작 #앤크작 #작가앤

#김창완 #찌그러져도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에세이

#잡초 #용기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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