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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nne Jul 08. 2024

여섯 살의 태권도 인생살이

두 번째 태권도 승급심사

킨디에 입학하고 나서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알아봐 달라고 하더니 한 곳을 1년 가까이 다니다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태권도장을 옮겼다. 옮긴 곳은 할아버지 관장님께서 오랫동안 운영하신 도장인데 아이가 트라이얼을 해보더니 마음에 들어 해서 재미있게 배운 지 5개월 정도 됐다. 킨디 때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워낙 대충대충 하던 도장이다 보니 블루 벨트까지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태극 1장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지금 다니는 도장의 사부님께서 전에 다니던 학원을 물어보시더니 아마 기본은 하나도 안되어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정말이었다.


1호는 1학년이 되고 나서 이 도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마치 태어나서 처음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처럼 기초부터 차근차근 잘 배워가는 중이다. 하얀 벨트를 지나 노란 1번 벨트를 받았다. 이번 승급 심사를 통과한다면 노란 2번 벨트를 받을 예정이다.


첫 승급 심사 때는 이곳에 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았었고, 완전 기본기를 했기 때문에 아이는 긴장감이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심사에 임했었다. 그렇게 노란 1번 벨트를 받고 이제 조금 뭐라도 알고 배우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다되어 가는 시점에 두 번째 승급 심사를 받게 되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장난치느라 바쁜 6살 아이는 대체 어떻게 외울까 싶을 정도로 평소에는 대충대충 연습했다. 조금 더 열심히 해줬으면 하는 우리의 욕심은 부질없었다. 아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래도 재밌어하며 신나게 다니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하고자 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다를 바 없이 대충 잘 넘어가려나 싶었는데 웬걸 최근 들어 아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심사일이 다가오니까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지 어느새 태극 1장의 순서를 다 외웠다. 심지어 어제는 아빠 앞에서 제대로 태극 1장 품새를 펼쳐 보였다. 순간 아이가 너무 잘해서 표정을 보니 사뭇 진지했다. 태권 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아빠 앞에서 정말 잘하고 싶었나 보다. 심사시간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놀다가 엄마가 시키니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두둥! 아이의 심사일이 다가왔다.

아침도 든든히 챙겨 먹고 깨끗이 준비한 도복도 챙겨 입고 온 가족이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1호도 은근슬쩍 긴장이 되었는지 아빠에게 자기가 골드 벨트를 받아오겠다며 씩씩한 걸음으로 태권도장으로 들어섰다.


검은 벨트부터 시작되는 심사는 제일 낮은 벨트에서 고작 한 단계 올라와있는 노란 1번에게는 끝도 없이 길다고 느껴졌을까? 아니면 떨리는 마음에 시간이 마치 게 눈 감추듯 빨리 지나갔을까? 드디어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아이는 심사하시는 사부님 앞에서 정말 멋지게 해내 보였다.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오늘 참석한 친구들에서 거의 최고에 가까운 예의 바른 태도로 심사에 임했다. 지켜보시던 사부님도 품새가 끝나고 나서는 흡족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렇게 품새부터 발차기, 마지막 격파까지 아이는 무사히 승급심사를 마쳤다.

끝나고 난 후의 표정은 이제껏 보았던 표정 중에 가장 밝고 빛났다.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테스트였다는 듯 한껏 자존감이 치솟아 있었다.

결과를 떠나서 나름 열심히 외우고 연습한 보람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에 격파해 낸 강판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지어 보인 우리 아이의 미소는 참으로 멋졌다.

오늘 느꼈던 이 순간은 앞으로 내 아이가 겪어 갈 수많은 테스트 중에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겠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일궈낸 이 귀한 만족감이 잘 새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녀석의 기억 어딘가 깊이 새겨진 이 경험이 다음 스텝을 향한 주춧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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