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자동차 5년 워런티 끝나는 날
5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 차를 품에 안았다. 힘겨웠던 호주 이민살이에서 새 차를 뽑기까지의 과정을 엮어보자면 내 인생도 장편 드라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차의 핸들을 손에 쥐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마치 그동안 힘겨웠던 일들에 살짝 안개가 껴서 조금 덜 힘들었던 기억이라고 생각될 만큼 가슴이 뭉클했다.
그 뭉클했던 마음을 잊지 않고 5년 동안 아끼며 잘 탔다.
오늘은 이제는 새 차가 아닌 나의 애마의 마지막 정기 점검 일이었다. 5년이 지나면 워런티가 끝나서 정기 점검 서비스 비용도 2.5배나 되는 금액을 내야 한다. 그래서 호주에서도 대부분 워런티 기간까지 구입한 회사에서 정기 점검을 하고 그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찾아가는 정비소에 맡기곤 한다.
그동안 고장 나지 않고 잘 달려줘서 고마운 마음에 점검을 하러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무사히 잘 점검받고 오리라 생각했다.
2호를 무사히 등원시키고 정비소에 잘 도착해 차를 서비스 센터에 입고했다. 남편이 브레이크를 세게 밟고 나면 약간 긁히는 듯한 끽끽 소리가 난다며 체크해 달라고 요청했기에 접수 직원에게 잘 설명하고 센터를 나섰다.
일하던 중간에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긁히는 소리가 나는 이유는 타이어가 많이 닳아서라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혹시 타이어를 바꿀 의향이 있는지 물으며 견적을 알려줬다. 타이어 가격은 대략 $4,000불이 안 되는 금액이었고, 휠 얼라인먼트의 가격은 추가로 $90이 든다고 얘기해 줬다. 나는 상태는 알았다고 했고, 타이어는 조만간 교체 예정이니 그냥 두라고 직원에게 전했다.
전화를 받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제 차를 찾으러 와도 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일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서비스 센터에 도착했고, 남편은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먼저 집으로 출발했다. 나는 이제 다 끝났다는 홀가분한 마음과 함께 서비스 센터에서 비용을 결제하고 직원이 차를 가지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금방 온다 던 직원이 10분이 넘도록 차를 몰고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오늘 점검을 무사히 마친 차니까 걱정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싶었다.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저 멀리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 차가 아니라 차를 몰고 오겠다고 대답했던 직원이었다. 그것도 차도 없이 몸만 달랑달랑 걸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표정을 살펴보니 난감해하는 표정이 서려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 시동이 켜지지 않아 배터리를 확인 중이라고. 차 배터리 문제인지, 자동차 키 안에 들어있는 배터리 문제인지 확인하는 중이라고 했다. 자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잠시만 기다려보자고 내게 말했다. 기다리면서 그는 자동차 배터리에 이상이 생기면 이런 일도 더럭 있더라는 얘기를 했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5분 여가 지나고 나니 드디어 정비사가 내 차를 몰고 나타났다.
그의 말은 차량 배터리가 아웃되었다며 당장 갈아야 한다고 했다. 갈지 않으면 잠깐 주차는 괜찮겠지만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시동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이제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이 타고 있었고, 심지어 경고등도 뜬 적이 없는데 왜 이러냐고, 정비하면서 배터리는 확인하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그들은 하이브리드 차는 메인 배터리만 체크하고 차량에 들어가는 작은 배터리는 체크하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했다. 지금 확인해 보니 배터리 컨디션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350 정도만 주면 지금 바로 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나는 차를 운전하고 다니지만 내 차의 내부사정은 잘 모른다. 심지어 매뉴얼조차도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편이 메뉴얼을 탐닉하고 내게 알려주기 때문에 나는 영양가만 그에게 쏙쏙 받아 먹으며 살고 있었다. 이런 나는 그들에게 아주 손쉽게 낚을 수 있는 먹이였고, 하마터면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낚일 뻔했다. 하지만 이미말했듯 내게는 남들은 갖고 있지 않은 ‘나만의 똘똘이 해결사(남편)’가 있었다.
전화로 상황을 전해 들은 남편은 단칼로 내게 ‘노’라고 외치고 차를 몰고 오라고 했다. 배터리 교체가 필요하다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이들이 하는 말 거의 대부분을 못 믿겠으니 자기가 와서 확인해 본다며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와도 된다고 했다.
차를 타려는 내게 직원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지금 차를 몰고 나가서 시동을 끄는 순간 바로 배터리가 방전될 수도 있다는 사실만 꼭 알아두라는 말을 공중으로 휘날리고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과연 내 차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남편의 말을 믿고 곧장 집으로 차를 몰고 왔다. 남편은 내가 내리자마자 뒤 트렁크를 열어(내 차는 차량 배터리가 트렁크 밑에 있단다.) 배터리를 확인했고, 상태가 멀쩡하다는 사실도 내게 알려주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나의 똘똘이 해결사는 내게 와서 기세 등등 하게 말했다.
분명 점프를 했다고 하지 않았냐고. 근데 배터리에 손을 댄 흔적이 전혀 없단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로 지문조차도 묻지 않았다고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정말 엎어지다가 코까지 베일 뻔했던 것이다.
5년의 보증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수리비를 더 청구해 보려는 얄팍한 수단이 우리 남편에게 제대로 딱 걸린 날이다. 사실 나도 남편이 아니었다면 타이어를 당장 오늘 교체하지는 않았겠지만 배터리 건에는 제대로 대롱대롱 낚여서 카드 해결사를 불렀을 것이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참 많지만 눈앞에 놓여있는 이익을 쫓는 사람도 참 많다는 사실. 뭐 딱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왠지 잘 모르는 사람은 더 손해 보며 사는 것 같다는 느낌.
나도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지금 이 상황이 격하게 이해되기도 하는 부분이 있어서 왠지 조금 더 씁쓸한 하루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모르고 코를 베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다짐을 나에게 진하게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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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