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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거짓말 뒤에 숨은 주동자는?

바로 나. 미안하다 픽션이었다.

by YJ Anne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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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고 벌써 5주가 흘렀다. 2월 말부터 아이의 학교 가방에는 숙제 노트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과 학교를 오가며 여행을 한다. 분명 숙제가 많지는 않은데 왜 우리 아이는 세월아 네월아 끝내지 못하는지 미스테리가 풀리지 않고 내 혈압만 오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2주에 한 번 제출해야 하는 숙제는 9개의 미션이 있다.

이번 주에는 요러한 미션들이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Math, wellbeing, family, addition, creative, drama, physical, technology 그리고 literacy.


예를 들자면 drama의 숙제는 이렇다.

Act out a scene from your favourite book and describe what happens.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한 장면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연기하며 설명하는 것이다.


미션 박스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분명 아이의 숙제인데 내 머릿속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마치 숙제가 내 것인 것 마냥. 학교 다닐 때나 이런 열성으로 해보지 같은 오지랖 열정이다. 내게 샘솟는 이런 열정은 가끔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 너무 과해 1호가 눈살을 찌푸린다.


어떨 때는 나에게 콕 찝어서 이렇게 얘기한다.

“엄마 선생님이 꼭 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아무래도 선생님은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도 하고, 바쁜 부모가 꼭 도와줘야 하는 미션이 있어서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셨을까?

그런데 꼰대 나이가 되어버린 엄마의 마음은 이렇다.

‘뭐? 숙제를 다 안 해간다고? 다 해오라고 내주는 게 숙제니까 꼭 다 해야 하는 거 아냐?’


아이가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하려는데 아이는 도무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선생님이 된 다는데 왜 엄마가 안된다 하는지 도통 모르겠단다. 끝끝내 drama는 하지 않았다. 1호는 이것 만은 하고 싶지 않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휴~ 그래. 그럼 마지막 남은 ‘family는 해보자’를 나지막이 외쳤다.

Family 미션은 이랬다.

"Ask a family member about their favourite childhood memory and write about it."


말을 참 조리 있게 잘하는 수다쟁이 남편은 꼭 이럴 때 입을 쭈뼛거린다.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며 잘 모르겠는 데를 연발했다.


모든 숙제를 내가 도맡아 케어하기엔 뭔가 힘이 들고 재미도 없다. 나뿐만이 아니고 아이도 마찬가지다. 이때는 아빠라는 감칠맛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하는 남편에게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약간의 조미료를 쳐줬다.


뭔가 기억해 봐요. 오빠가 레고 좋아하니까 레고를 선물 받은 기억은 어떨까요? 처음 레고를 선물 받은 날이 언제예요? 생일? 크리스마스? 어떤 레고 장난감이었어요?


온갖 질문을 퍼부은 끝에 남편이 레고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고, 나는 아이가 간단하게 적을 수 있도록(아직 2학년이라 글을 조리 있게 적는 노력을 힘들어한다.) 쉽고 간단하게 요약했다. 요약 과정에서 복잡한 것은 모두 진실이 아닌 것으로 포장해 버렸다.


이제 미션은 남편에게 달려 있었다. 나는 아빠와 샤워하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1호를 남편과 함께 샤워실로 보냈다. 샤워하는 물소리 속에 다정히 떠드는 부자의 목소리가 데굴데굴 굴렀다.  시간이 좀 지나고 개운하게 씻고 나오는 1호에게 물어보니 숙제 이야기는 안 했단다. 아뿔싸 남편은 아이만 씻긴 것이 아니고 숙제를 도와줘야 한다는 자신의 미션도 개운하게 씻어버렸다.

오!! 신이시여. 나에게 인내심을 허락하소서.


쿠오~ 내 속에서 마치 남편이 만들었던 성 안에 있는 드래곤마냥 불꽃이 타올랐지만 숙제는 해야 했다. 오지랖으로 다 짜놓은 아이디어를 그냥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별것 아닌 거라도 나는 아이에게 재미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 컸다.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 디데이가 바로 내일이었다. 나는 숙제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아이와 남편을 식탁에 앉히고 계획스런 수다의 문을 열었다.


다행히 남편은 나와 연습을 해서 그런지 우리가 짜놓은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자기가 1호 나이 때쯤, 그러니까 8살쯤 생일 때 처음으로 레고를 선물 받았는데 그건 성을 만드는 레고였다. 드래곤도 한 마리 있었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레고 선물이 감격에 겨운 아빠는 피스를 다 외울 정도로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똑같은 피스를 가지고 자기가 상상했던 로봇을 만들어냈다. 이 기억은 아빠가 손에 꼽을 수 있는 행복한 어린 시절 기억 중에 하나였다.


여기서의 진실은 레고에 대한 기억 하나다. 

나이와 생일은 아이가 쉽게 적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엄마의 작전이었다.

아니, 이거 뭐 애들 숙제가 부모 숙제 되는 거 아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안에는 작은 배려가 숨어있다.


첫 번째는 부모님에게 물어보세요가 아닌 가족 멤버에게 물어보세요다. 우리는 참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이루며 살고 있다. 어떤 구성 멤버든 숙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참 좋다.


두 번째는 숙제가 아이에게만 속해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미션을 준다. 가사를 돕는다거나, 누군가의 추억을 소환하게 만든다거나,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이 아이가 숙제를 홀로 끙끙대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것 같아 좋다. 더불어 조금 더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9개의 미션들은 아이가 2주 동안 해결하고 제출해야 한다. 미션뿐만 아니라 매주 읽어야 하는 책과 파닉스 문제들이 주어지지만 아이가 절대 버거워할 만한 양이 아니다. 누가 보면 호주는 아이들이 정말 학교에 놀러 다니나? 생각할 만하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눈에도 이 정도면 그냥 먹고 노는 건데? 하는 생각이 춤을 추니 말이다.


한데 나는 이 또한 참 좋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재미지게 온몸을 쓰면서 최선을 다해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온갖 영상 매체와 동반하는 인생이기에 이점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뭐 어떤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저 우리 1호가 해주었으면 하는 나의 소박한 바램을 얘기하자면.

‘얼마 있지도 않은 이 숙제들. 엄마 아빠의 잔소리 없이 좀 해주면 안되겠뉘??’

제 숙제가 아닌데 부러 끄집어낸 오지랖으로 신경 쓰고 있는 엄마의 바램이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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