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일본 공항에 내려선 순간부터 여기,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아니,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를까 봐 애꿎은 주먹만 하얘지도록 움켜쥐고 버텼다. 제일 교포인 엄마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맛을 떠올리고 싶다고 하시던 이 선술집의 돈지루. 엄마가 어릴 적 살았던 시모키타자와 역에서 나와 바로 코너를 돌면 찾을 수 있다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노란색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선술집, 바로 여기다.
엄마의 몸속에 자리 잡은 암을 발견하고 의사는 엄마의 남은 수명을 6개월에서 길면 일 년이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길면 1년이라는 세월을 두 번이나 더 보내시고 요양병원으로 본인이 들어가셨다.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엄마와 마주 앉아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산책을 하며 보냈다. 그렇게 일 년 즈음 지났을까? 엄마는 산책 중에 가끔 멍하니 하늘을 잠자코 바라보시곤 했는데 그날따라 유독 하늘은 엄마의 눈길을 오랫동안 잡아두었다. 나도 한참을 말없이 엄마의 손을 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늘 바라보고 있던 호수에서 헤엄치고 있는 백조들이 일으키는 물결이 사그라져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매끈한 유리가 되는 시간만큼 내 마음도 잠잠해졌던 그때 엄마는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때 내 나이가 여섯인가 일곱인가, 그즈음이었어. 일본인이었던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한테는 할아버지일 텐데… 아마 이런 얘기는 한 번도 너에게 해준 적이 없었을 거야.”
사실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는 많이 했었는데, 엄마가 왜 할아버지 얘기를 해주지 않는지 사실 나도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날 엄마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의 할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어. 조선족이었던 할머니를 한때는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시절도 있었겠지만 그 사람과 함께한 엄마의 인생 대부분이 지옥이었어. 얼핏 듣기로는 조선족이었던 계모에게서 많이 맞으며 자랐다고 했던 것 같아. 그래서였을까?
그 사람은 자기가 사랑해서 결혼했다던 우리 엄마를 어찌나 두들겨 팼던지… 날이면 날마다 늘어가는 멍 때문에 어느 날엔가 엄마의 피부색이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던… 그런 날들이 이어졌었어. 빨리 꿈에서 깨버리고 싶던 악몽 같은 날들이었거든? 하루는 엄마의 신음소리가 귀 옆에서 계속 이어지는데, 눈을 뜨고 싶지가 않은 거야. 그래서 애써 두 눈에 힘을 주어 찡그리며 다시 잠을 청했어.
양을 아무리 세어도 다시 잠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 그때는 내가 셀 수 있는 숫자가 백밖에 안되어서 그 백을 몇십 번이고 다시 세고, 또 세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어. 기억을 더듬어 봤더니 언제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나더라고. 엄마는 그때도 내 옆에 등을 맞대고 누워서 끙끙 앓는 숨을 뱉고 있었어. 내 뱃속에 울리는 허기의 비명보다 엄마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고 할까? 이렇게 계속 누워있다간 아빠라는 인간이 와서 엄마를 또 때리기 전에 우리가 죽겠다 싶었던 것 같아.
그때 바닥을 박차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고, 힘없이 터벅터벅 걷다가 늘 지나치기만 했던 가게의 입간판에 턱, 하고 내 상처투성이 맨발이 부딪쳤어. 발톱이 부러져 피가 났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우리 엄마는 늘 나보다 더 아팠으니까.
그런데 그때 주인아주머니와 눈이 딱! 마주친 거야. 꼬질꼬질한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으로 굳어있고, 발가락에선 피가 줄줄 흐르는 여섯 살 아이의 눈과 마주친 거지. 아빠라는 사람도 매일 외면하는 이 아이의 눈을 생판 모르는 남인 그 아주머니는 뿌리치지 못했어. 눈이 동그랗게 놀라시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로 나를 향해 옅게 미소 지으며 따뜻해 보이는 가게 안으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셨지.
눈물이 왈칵 밀려와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어. 내가 길바닥에 딱 붙어버린 듯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있자, 아주머니는 온기 가득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살며시 잡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지. 제일 안쪽, 사람들의 시선과 가장 멀어 누구의 눈길도 제대로 미치지 않을 것만 같은 작은 테이블에 나를 앉히시고는 따뜻한 국물을 한 그릇 내어주셨어.
구수하고 콤콤한 냄새에 내 위장은 뱃가죽을 두들겨대며 난리였는데, 그때 집에서 앓고 있는 엄마의 신음소리가 내 귀에 울리는 거야. 그래서 대뜸 그릇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집으로 도망치려고 벌떡 일어났는데…
괜찮다고… 어서 먹으라고… 집에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 가져다 줄 한 그릇 더 싸줄 테니 한 수저라도 먹고 가라고… 연신 들라는 손짓을 하시며 나에게 말씀하셨어.
그분의 다정함에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잠시 맑게 개었던 것 같아. 정말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먹어치운 그 꼬마 아이는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봉지에 담겨있는 돈지루 한 꾸러미를 들고 아주머니를 바라봤어. 그리고는 속에서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고마운 마음을 꺼내어 배시시 웃어 보였어.
배고프면 언제든지 또 오라고 연신 말씀하시곤 내가 돌아가는 길 내내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지켜보셨던 것 같아. 뱃속이 따뜻한 만큼 등 언저리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있었거든.
불행 중 다행으로 인생에 늘 나쁜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신이 나에게 보여주셨던 걸까? 아주머니를 만났던 날, 우리 엄마는 내가 가져간 그 돈지루 한 그릇을 먹고 조금씩 기운이 나시는 듯했어.
그리고 그날은 내 인생에서 또 다른 방법으로 가장 잊지 못할 날이 되었는데… 아빠로부터 엄마와 내가 해방된 날이었어. 술주정뱅이 그 인간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술꾼들과 싸움이 붙었고, 그날 오후 엄마를 때렸던 것보다 더 많이 을씬 두들겨 맞았다고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버려진 탓에 추운 겨울밤이 다 지나가도록 아무도 그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거지. 그렇게 우리는 그 인간과 함께한 겨울밤을 벗어나 드디어 숨을 쉴 수 있었어.
정신을 차린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동네를 떠나버렸고, 그 이후로는 한동안 그 아주머니를 찾으러 갈 수가 없었어.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모시고 가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더라고. 네 아빠를 만나 결혼을 앞두었던 스물아홉의 어느 날, 돌아가신 엄마 가 너무 보고 싶던 그날, 불현듯 늘 마음 한자리에 머물고 있던 고마운 그분이 떠올랐어.
그래서 무작정 찾아 나섰지. 내가 기억하는 건 시모키타자와 역 근처라는 것 밖에 몰랐으니, 역 주변 거의 모든 가게를 돌아다녔던 것 같아. 그런데 신기하지? 등잔 밑이 정말 어둡더라고. 역 모퉁이를 돌면 바로 있었던 그곳이 날이 저물도록 보이지 않았었는데, 딱 포기하려고 역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어디선가 귀에 익은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놀란 마음으로 재빨리 고개를 두리번거렸어. 그러다 연세 있으신 한 할머니가 그때 그 입간판을 내놓으시며 도와주겠다고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꼬맹이 손주를 안아주시는 모습이 보였어.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으셨구나 싶더라고. 가게 안으로 자연스레 이끌리듯 들어갔는데 그곳은 그냥 식당도 아닌 선술집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어.
아담한 테이블에 앉아 가게 안을 둘러보았지. 코끝에 뭉근히 맺히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니 왠지 꼬질꼬질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았어. 나이 드셨지만 인자한 미소는 그때와 똑같은 아주머니가 내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오셨어. 그때 난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선뜻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맥주 한 병을 주문했어.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혹시 돈지루가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어. 순간 그분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단골손님들만 부러 찾으신다고 처음 보는 손님이 어찌 아셨냐고, 곧 맛있게 한 그릇 가져다주겠다 얘기하시곤 주방으로 들어가셨지.
아주머니의 친절함으로 배를 채운 그날 이후로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음식이었는데… 왠지 목에 눈물이 꽉 끼인 것 같아 한 수저도 먹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어. 그래서 나는 주문한 메뉴와 여섯 살 어린아이가 드리고 싶었던 그날의 식사값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는 뛰쳐나왔어. 그 후 너도 알다시피 네 아빠와 나는 한국에 와서 살게 됐고, 가깝지만 먼 나라인 일본에 자주 갈 수가 없었지.
아… 그때 한 수저라도 맛보고 올 껄 그랬나 봐. 몸도 아프고 갈 수 없다고 하늘을 막아놓으니 더 후회가 되는 것 같아. 코로나 때문에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봤는데… 아마 내 남은 시간 안에 그 따뜻한 국물 한수저… 힘들겠지?
혹시 네가 기회가 되면 한 번 방문해주련? 그 아주머니는 안 계시겠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가 여전히 가게를 지켜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드네…”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된 후 세 달이 지나고 엄마는 그리운 아빠 곁으로 가셨다. 그리고도 한동안 비행기는 뜨지 못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막혀있던 하늘길이 열려 모두들 허락된 환경 내에서 해외로 다시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슬프게도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까지 우리는 갇혀있었다.
제대로 식사를 하실 수 있을 때 꼭 드시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제 내일이면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일 년… 나는 엄마를 추억하는 차림상 위에 이 돈지루를 선물해드리려 이 가게를 찾았다. 다행히도 엄마의 바램대로 손자분이 운영하고 계셨다. 이야기를 모두 들으신 그분은 눈물을 글썽이며 할머니의 돈지루 레시피를 꼼꼼히 적어주셨다. 자기가 영어를 잘 못해서 일본어로 적어서 미안하다며 연신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꼭 그때의 아주머니랑 닮은 듯해서 목이 메었다.
감사하다고… 엄마에게 더 없는 선물을 또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린다고…
차오르는 눈물을 누르지도, 닦아 내지도 못하고 인사를 거듭하며 가게를 나섰다. 내 두 손엔 손자분의 정성스러운 레시피와 할머니의 맛 그대로를 유지하려 애쓴 소중한 미소된장이 담긴 자그마한 단지가 들려있었다.
내일은… 우리 엄마… 행복하겠다.
‘미안해, 엄마. 너무 늦었지? 그래도 다행히 엄마의 바램대로 손자분이 잘 운영하고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내가 가서 엄마의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 그분께 레시피도 받고, 설명도 잘 들었으니까 맛있게 끓여줄게. 꼭 먹으러 와야 해. 사랑해… 보고 싶은 엄마 나의 엄마가 돼줘서 정말 고마워.’
사진출처 : 만개의 레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