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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Aug 20. 2022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요 며칠 마음이 계속 찜찜했다.


밥을 하느라 힘들어서 그런가, 하고 여사로 넘겼는데... 어제는 기어이 마음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 눈치를 실실 봤고, 나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이 자꾸 처지는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한 번씩 마음이 뚝 떨어질 때가 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이 괜스레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갖다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을 묻곤 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심리학과 상담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많이 극복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감정이 돌연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 그러니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반드시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 이 사소한 세 가지를 이해하고 적용하려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제도 그랬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기도를 하다 문득 깨달았다.

밥하기 힘들어서는 내세운 이유였고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걸.



나도 나름대로 이번 방학 때 계획이 있었다.


책도 몇 권 읽고, 작년에 사놓고 아직 끝까지 다 보지 못한 프랑스어 회화 책도 한 권 끝내고, 글도 좀 쓰고 싶었다. 거기다 운동도 좀 해야지 생각했었다.


사실상 학기 중에는 일 하랴, 애들 키우랴, 공부 따라가랴,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았기에 늘 방학만 고대하며 꾸역꾸역 미뤄두었던 나의 버킷리스트들이었다.


그러나 막상 방학을 하고 보니 겨우 며칠뿐. 내가 세운 계획을 다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이만큼이라고 잡았던 목표는 매일 줄어갔고 그마저도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을 지나오면서 어느새 내 마음에 조금씩 좌절감이 싹트고 있었다. 어제 감정이 뚝 떨어진 것도 결국은 그 이유였던 것이다.





그랬다.

그것을 했더라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을 테고, 어쩌면 무언가 성장과 성숙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리고 해결해야 했던 많은 일들을 잘 해결했고, 잘 쉬기도 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눈에 그래프로 펼쳐놓을 만큼의 어떤 성취는 없었지만, 그러나 이 시간을 통해서도 나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문제는 내 욕심이었다.


과도한 목표, 이것 이것 이것을 다 해야지만 충분하다고 믿었던 마음. 혹은 이 정도를 누려야 보람찬 방학을 보낸 거라고 스스로 여겼던 마음.


그 마음은 시작부터 내 속에서 나를 채근했고, 그리고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할 상황이 되자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행복은 더 많이 갖거나, 더 많이 해내는 것보다는 무엇을 얼마나 더 잘 비워내는 가에 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돈이 혹은 물질이 어느 정도 있어야 행복하다고 여기는 순간, 그것을 갖게 될 때까지 도무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처럼, 내가 이만큼을 해 내야지만 행복하다고 여기는 순간, 내 마음속에는 그것에 도달할 때까지 도무지 행복을 누릴 여유가 없다.


순간마다 분과 초를 쪼개어 더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싱그러운 여름 바람도,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도 느낄 수가 없을 만큼 마음이 둔해지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 자신을 사랑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물론 열심히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 권을 마치지 못해도 한 페이지라도 해 나가고 있다는 그 사실에 만족할 수 있다면... 이도 저도 못했지만 아이들과 실컷 웃었다는 사실로 충분하다 여길 수 있다면...


그렇게 작은 발걸음 하나로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면, 순간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대단한 것을 이루지는 못할지언정, 매 순간을 나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는 있을 터였다. 




그러다 문득 로랜스 형제가 생각났다.

수도원에서 주방 일를 하며 살아갔던 그의 노년에 그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함을 누렸고, 그것이 주는 기쁨으로 말미암아 주방일의 고됨도 잊었다 한다.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충만한 기쁨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단절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완전하고 가성비가 좋은 기쁨은 이것이 아닐까.


무엇을 가져서도 아니고, 무엇을 누려서도 아니고, 무엇을 해내서도 아니고, 다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비웠다 여겼건만 어느새 마음에 또 뿌리내린 인간적인 욕심들을 털어버리고 그 자리에 늘 변함없고 영구한 기쁨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된 행복이 아닐까...


소유와 성취가 아닌 진정한 나로,

다만 존재하는 나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영원하고도 완전한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로랜스는 그의 나이 오십 무렵이 되었을 때 파리에 있는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주방일을 맡게 되었으나, 처음 4년 동안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으로 되돌아가서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삶의 초점을 두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이 그의 삶에서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때부터 그는 일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였다.

가장 천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임무도 새로운 의미를 지나게 되었다.

그가 의식적으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고자 결심했을 때, 그의 삶이 바뀌었다.

 - <하나님의 임재 연습>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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