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Jun 19. 2021

내 마음이 아직도 슬픈 까닭일 것이다

나는 꽤나 문학소녀였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독서의 취미는 고등학교 때 시와 문학을 만나게 되면서 대학시절 활짝 꽃을 피웠고, 그 시절을 풍미했던 작가들, 예컨대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식으로 이어지는 작가들의 꽤 많은 소설들은 내 손을 스쳐갔다. 시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나에겐 좋은 글귀를 필사하는 습관이 있었다. 작은 수첩은 각종 글귀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그러다 눈물마저 떨구게 만드는 시를 만나면 나는 그 시를 읊조리고 읊조리다 결국 기어이 외워 버리곤 했다.



나는 문학 속에 담긴

그네들의 애잔한 삶의 이야기가 좋았다.



이미 어릴 때부터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 속에 깃들어 있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슬픔의 흔적들을 알아버려서였을까?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아름답고도 슬픈 인생이,

나에게만 특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들려주며

그네들의 아름답고도 애잔한 삶을 훔쳐볼 수 있게 하는 글들이 좋았다.


결국은 나도,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작은 위로라도 움켜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문학 속으로 파고들던 나는 박완서 작가님을 만나고서는 오랫동안, 그 작가님 곁에 머물렀다.


삶을 담담하게, 그러나 진솔하게 풀어가는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읽다 보니, 어느새 그분의 작품들을 거의 다 읽게 되었고,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그분이 쓴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특별히 ´그 많던'시리즈는 결국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었던 가슴속 깊은 응어리진 삶의 비밀을 담담히 고백하는 책이라는 것을.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불시에 찾아온 전쟁은 그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분은 평생 가슴에 멍처럼 안고 있었던 눈물과 아픔과 수치를 평생에 걸쳐 그렇게 하나씩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났을 뿐임에도  많은 고통의 시간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던  시대 사람들의 삶이, 이의 삶이었고, 삶이  사람들의 삶의 일부를 드러내는 작은 지표가 되었다.

 

나는 그 책이 이상하게도 애잔했다.



그러나 후에 작가님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애잔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 가장 반듯하고 똑똑하고 멋졌던 오빠가 전쟁 앞에서 무너져 내리던 그 모습이, 북한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육군도 아니었던, 사실은 그 어디에 속하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처참하게 비참하게 죽어가던 오빠의 초라한 모습이 너무나 아프고 부끄러웠다는 그 고백이. 그래서 오빠를 미화해 보기도 하고, 오빠를 지워보기도 하고, 그렇게 오빠의 죽음을 이해해보려고 수십 년 쓰고 또 쓰다 보니, 진실 그 어드매에서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초라한 죽음을 그려낼 수 있었다는 그 작가님의 고백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엄마를 잃고, 아빠를 잃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10년도 훌쩍 넘었다.



이만하면 이제 괜찮다, 하고 말하고 싶다.

그런 시절이 찾아오길 늘 손꼽아 기다렸고, 작은 티끌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의 청명함이 이를 데 없이 높을 날이 있을 거라고 나는 늘 기대했다.


물론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을 볼 때면 미소가 나오고,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꽃 앞에 멈춰 한참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감사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작은 호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신기할 정도로 글을 쓸 때면 가슴 깊은 곳에 멍울져 있던, 십 년도 더 지난 그날들에 대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글에 담기고 만다. 해결된 줄 알았던 그 시간들은 그저 무뎌진 채 내 마음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었다는 걸 글을 써 내려가면서 깨닫는다.



"나는 내 글이 너무 슬퍼서 마음에 들지 않아."



어느 아침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세상 따뜻한 글을 쓰고 싶은데, 자꾸만 글에 눈물이 담긴다.



가장 존경하는 작가이신 권정생 선생님은 우리네 인생이 슬픈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냐고 하셨다지만... 떫은 나물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는데... 이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아름다운 '강아지똥'이라는 글이 나왔듯이, 나도 이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더 따스한 무언가를 써내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쓰고 들여다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글이 슬픈 까닭은, 그때를 돌이켜 보는 내 마음이 아직도 슬픈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던 말은 그만 거둬들여야겠다.



거두어 내고, 또 거두어 내도 맺히는

눈물의 한 자락을 닦고 또 닦다 보면,


그리고 그때의 그 시절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은 본능을 거스르며 


나 자신에게 더 진실해질 수 있다면,


반드시 나도 숨겨두었던 내 깊은 진실 어딘가에 도달하리라고 믿는다.



눈물 한 자락 바르고, 슬픔 한 자락 더해서, 그것이 누군가의 생을 위로할 만한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길.



박완서 선생님의 그 진실한 고백 앞에 한참을 머물렀던 것처럼, 이제는 나만의 진실한 고백을 찾아가야겠다. 포기하지 않고 쓰고 또 쓰다 보면 눈물이 날 만큼 슬픈 글들을 통해 비워내고 덜어낸 만큼 나는 더 자라 갈 것이다.


지난한 그 과정을 나는 포기하지 않을 테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어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