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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May 03. 2021

한국어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책이  권도 없었고, 내게 익숙한 매체는 꺼질  모르던 텔레비전이었다. 초등학생 , 처음 선물 받은  한권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이었다.  속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책을 읽다 보면 이전에는  번도 생각해  적이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있었고, 그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교육도 그랬다. 본디  목적이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면서  전과는 다른  사람이 탄생해 간다. 나는  여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도 나에게는 같은 방향성을 가진 선택이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낼 때마다, 그 책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되길 원했다. 아이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사건이 되길 원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점점 커져 갔던 바람은 내가 조금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조금 더 자라나서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낯선 프랑스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말과 글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너무나 편하게 풀어내고 누리던 내가, 말도 글도 제약으로 가득한 외국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나를 찾아오는 것은 불편한 감정들 뿐이다.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은 잠시뿐, 날마다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기나긴 과정이라는 것을. 무수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모든 책이 내 마음속에 있지 않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그랬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그렇게 스르르르 빠져나가고 사라지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무수히 잃어버리면서도 들었고, 보았고, 생각했고, 느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들 속에서 남겨진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내 속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무엇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은 참으로 흥미롭고 즐거운 여정이었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 그리고 가르친다는  역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일과 같다. 오늘 들은 무수히 많은 단어가, 배운 문법과 다양한 표현들이 하룻밤 사이에  빠져나가는  같다. 붓고 나면 스며들 틈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물처럼.


그러나  속에서 콩나물은 자란다. 아주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내가 바라봐야할 것은 쏟아져 내리는 물이 아니라, 내가 부어주는  물을 기꺼이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있는 콩나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별히 언어교사는 그렇게 믿어주며  들려주고,  기다려주며, 학습자가 지쳐하는  순간에도  여정의 끝에 우리가 반드시 자라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며, 그렇게  걸음  걸음을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과정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엄마에게서 말을 배우듯, 단단한 우정과 신뢰가 함께할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한국어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다.  사람의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없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쌓여진 시간 뒤로  사람과의 우정이 뿌리 내린다. 살아가며   마주칠  있을지도   없는  사람과 내가 서로에게  권의 책이 되고,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던 나라들이 나에게 의미 있는 나라가 되어 간다.   가본 적도 없는 곳이 옆동네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친구가 살고 있는 나라... 갑자기 넓디넓은 세계가  속에 들어와 활짝 펼쳐지는 것만 같다. 그렇게 세계는  속에 들어와 아름다운 하나의 정원을 이뤄가고 있다.



산, 강, 그리고 도시만을 생각한다면 세상은 공허한 곳이지만,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지구는 사람이 사는 정원이 될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내가 만나는 모든 친구들이, 이 만남으로 인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따스하게 느낄 수 있기를, 언어에 대한 지식을 넘어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선물 할 수 있기를 하고 바라본다. 그 마음으로 학생들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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