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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Feb 08. 2021

나는 차라리 시간을 낭비하기로 했다

열심히 살기 위해 우리가 놓치는 중요한 것들

나는 타고나길 기질이 하루를 잘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하루의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체크해 가며, 하나씩 하나씩 탁탁 처리해 낼 때의 그 쾌감이란. 그런 날은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부듯함이 가슴 가득 차 올랐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세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이면 허무감이 몰려왔다. 열심히 살지 못했다는, 잘 해내지 못했다는 불편한 감정들이 나를 옥죄곤 했다. 그런 날이면 씁쓸함을 이불 삼아 자리에 누우며, 다짐했다. 내일은 오늘 못 산 것까지 더 달려야겠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내가 계획한 일의 반도 못하는 날의 태반이었다. 아니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없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내 머릿속의 가득 찬 계획을 매일 내려놓는 일이었다. 저만큼 달려가 있는 내 욕망을 누르고, 저만큼 달려가고 싶은 내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나에겐 각고의 노력이었다. 계획을 성취하고, 일을 해내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그걸 원동력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삶의 이유를 전혀 다른 것에서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그래서 매일 달려가고 싶은 욕구와 그러나 머물러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저만치 달아나 있는 욕심과 기다려줘야만 하는 인내 사이에서 매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좀 자라고 내 품에서 조금 떨어져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하자 다시 내 시간들이 생겨났다.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을 하기도 하고, 한국어 강사로 일을 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다시 내 삶을 주도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다이어리를 준비하고 날마다 계획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묵상을 하고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 뒤 그것을 체크해 나갈 때의 그 쾌감이란!! 내 속에서는 다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잘 해나가고 있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잘함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중에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홀로 있던 집에, 나만의 공간이고, 나의 작업장이며, 나의 사무실이던 집에 남편이 들어오더니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수시로 집에 머물기 시작했다. 나의 계획은 또다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는 책을 읽으려 했는데 잠시 쉬는 시간이라며 남편이 다가와 넌지시 말을 건다. 시간이 후루룩 지나가 버린다. 이 시간에는 이 일을 처리하려 했는데, 학교에 안 간 딸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엄마... 심심해....'라는 말이 딸은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서라운드로 들려온다. 나는 또 내 일을 뒤로 미루고 남편과 딸과 마주 앉는다. 


코로나 때문에 내 시간이라고 확보되었던 시간들이 내가 돌봐야 할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자꾸만 낭비되고 흩어지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되찾았다 여겼던 내 시간들은 또 어딘가로 사라져 갔다. 오늘 이루려 했던 당찬 계획들은 다 수포로 돌아가고, 씁쓸함이 내 속에 들어차는 밤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무수히 많은 이유들을 대겠지만, 그 이유들 사이를 항해하며 들어가고 또 들어가다 보면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럼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라고 다시 질문을 한다. 또 많은 것들을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사람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열심히 살아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은 행복을 위한 것이고, 이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들이 내게 다가와 눈을 맞추고 함께 하자 하는 이 순간들은 결코 낭비된 시간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순간들이 정말 본질의 시간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본질의 시간을 아끼고 본질의 시간을 쪼개어 비본질의 시간을 위해 살기를 원했다. 비본질의 목표를 달성하기 원했다. 내가 그렇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난 시간을 그저 그렇게 달려왔다. 더 쪼개고, 더 아껴서 어딘가에 도달할 그날을 향해.



서은국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같은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내 시간과 내 공간에 남편이, 아이들이 불쑥 노크하며 들어올 때, 그때마다 생각해야겠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 일에 몰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차라리 시간을 좀 낭비하며 살아야겠다고. 이 일 보다 더 중요한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에게 더 집중하겠노라고.



아무리 춥고, 아무리 해가 짧고, 아무리 긴 겨울이 찾아와도, 가족끼리 모여 앉아 휘게의 시간을 즐기며 함께 그 시간을 이겨나가는 핀란드 사람들처럼.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도, 그 일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옆에 앉은 동료와 커피 한 잔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프랑스 사람들처럼.



너무 성실하고 싶은 그러나 정작 어디를 향하는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내 욕망을 조용히 내려놓고,  차라리 조금 낭비하며 더 많이 함께하고 더 많이 웃고 더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본질의 삶을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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