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Jan 19. 2021

그 작은 손길이 나를 살렸다

고통받는 아이들이 건짐 받는 사회를 꿈꾸며...


나는 출산예정일을 딱 맞추고도 하루를 넘겨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겨우 2.3킬로의 작디작은 아이로 태어났다. 그것도 황달이 몹시 심한 상태로.


아이는 태어난 직후에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큐베이터에 넣을까를 심각하게 논의했다고 하니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본인의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어린 아기의 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산소호흡기며 이것저것 병원의 물건들이 달리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것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픈 것이었으리라.


병원에선 나의 상태에 대해 아주 고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단 지켜보자는 게 병원의 입장이었고, 그렇게 얼마간 지켜본 뒤에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김천에 있던 집으로 퇴원시켰다.






내 생일은 7월 19일이다.

뜨겁고도 뜨거운 여름이 한창인 때, 그 무더위 속에서도 산모는 몸을 따뜻한 방에서 풀어야 한다는 고지식함이 남아 있는 시골 문화 탓에, 엄마는 연탄불을 피운 방 안에서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숨 가쁘게 아빠를 불렀다. 내 몸이 불덩이였던 것이다.


가뜩이나 작게 태어났고, 가뜩이나 병원에서도 불안 불안하다 말하는 아이의 몸이 뜨겁다는 건, 결코 좋은 신호일 수가 없었다. 나를 낳느라 몸이, 나를 계속 지켜보느라 마음이 다 녹아진 엄마를 남겨두고, 나를 안고서 젖병에 보리차를 조금 담아가지고  아빠는 택시를 탔다.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 주이소. 아기가 많이 아픕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기는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아빠는 서툰 솜씨로 나를 안고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며 조금만 참으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타일렀을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일면식 상관도 없는 그 택시 운전수는 그 모든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고는 달릴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훌쩍 넘어 달리고 있었다.



김천에서 대구까지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반 정도 왔을 무렵, 자지러지게 울던 내가 울음을 그치고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고 아빠는 말했다.

아빠는 식은 땀이 흘렀다. 아기의 코에 손을 대 보는데 숨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심장도 멈춘 것 같아 보였다.


아빠는 마지막 퇴원 날, 자신 없어 보이던 의사의 표정이 떠올랐고, 지켜봐야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여기까지인가 보다...

체념이 아빠의 마음에 잦아들었다.



"기사님...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어렵지 싶습니다... 그만 김천으로 돌아가입시다."

"그래도 이까지 왔는데... 병원까지 한 번 가 보시지요? 혹시 모른다 아입니까... "

"........."


아빠가 잠시 갈등하는 사이, 택시 기사님은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속도는 더 빨라졌고, 그렇게 삼십 분은 족히 가야 할 거리를 이십 분만에 도착했다고 한다.




택시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기사님은

"여기서 기다릴테니 얼른 들어가 보이소. 혹시 진료 어렵다 하면 제가 다른 병원 태워다 드릴게예."


아빠는 고맙다고 하고선 황급히 응급실로 뛰어갔다.

다행히도 그 병원에는 나를 위한 자리가 남아있었고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한 마디를 덧붙였다고 한다.


"휴우...

조금만 늦었으면 아기 멀리 보내실 뻔 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수속을 밟고 나서야, 아빠는 기사님이 거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났다고 했다.

택시비도 안 드리곤 병원으로 쫓아오고선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셔도 된다고 말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게 너무 죄송해서 내린 장소를 향해 땀이 나도록 뛰어갔다고.


그러나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택시기사님은 아마도 아기가 병원에 잘 입원했다는 걸 확인하고는 조용히 돌아가신 것 같다고.

아빠는 그 후 좁은 김천 시내를 여러 번 수소문했다고 했다. 건너 집에 건너 집이 다 친인척이고, 이웃사촌이고 그런 손바닥만 한 도시 김천에서 신기하게도 그 택시기사님은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빠는 그렇게도 말했다.


그분이야 말로 네 인생의 첫 은인이라고. 너를 살려주신 분이라고... 그 기사님이 아니었다면 너를 그렇게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찾아내서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백 번 천 번이라도 인사를 하고 싶다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그 기사님이 어쩌면 너를 살리려고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고...


아빠는 가끔 약주를 하신 밤이면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하시며 그 은인을,  어쩌면 그 천사를 추억하고 추억하셨다. 그러다간 푹 쓰러져 잠이 드시곤 했다.








일면식도 없는 그분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그 이후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아갈 그분의 한 마디가 그분의 따스한 호의와 인간애가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는 나를 살려 놓았다.


그걸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어쩌면 하늘이 너를 살리려 보낸 천사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아빠의 고백은 더욱이나 나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만들고 했다.


천사처럼 나타나 중요한 순간에 나를 살리고 사라져 간 그분은 어떤 분이셨을까?

어벤저스에 나올 법한 그런 영웅이었을까? 아니면 어느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 같은 분이셨을까? 그것도 아니면 언제고 택시를 타면 볼 수 있는 우리 아빠 같은, 혹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흔하고도 흔한 평범한 가장이셨을까....


어쨌든 그분은 중요한 순간,

내 생명이 생사의 기로에 섰던 그 순간,

그러나 더는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것 같은 체념이 아빠의 마음을 무너뜨리려던 순간 우리에게 굳이 개입했고, 나를 살리는 은인이 되고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라지셨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을 뿐.

그 이후에도 내 인생에는 무수히 많은 은인이 있었을 것이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리고 나는 그렇게 숨겨진 많은 사랑의 손길들 덕분에 여기까지 자라왔고, 살아왔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곤 한다. 그리곤 그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이라고 홀로 읇조리게 된다.








어느 밤이었다.

입양된 한 아이가 학대로 죽어갔다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살던 동네는 프랑스로 떠나오기 전, 내가 잠시 머물렀던 동네였다. 비록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그래서 더 확연하게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절체절명의 순간이던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 괜한 자책감이 올라왔다.

그래서... 만약 내가 프랑스가 아닌 그곳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뒤이어 체념이 찾아왔다.




기사를 보며 몇몇 천사들이 그의 고통을 보았고 살리려 했다는 걸 보면서,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한 편으론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 손길들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해낼 수 없었던 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 손길들 중 하나가, 그 개입들 중 하나가 성공했다면, 그래서 갓난아기 때의 나처럼 그 아이가 그 모든 아픔 속에서 건짐 받고 오래오래 자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아이도 나 만큼 자라서 말하지 않았을까..

천사가 내게 왔었노라고... 그리고 나를 살렸노라고... 그러니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그러나 그 가여운 아이는 결국 먼 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믿고 싶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흘린 이 눈물이 감상에 그치지 않고 성찰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믿고 싶다.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그렇게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부디 건짐 받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은인이 될 수 있기를, 천사가 될 수 있기를, 모든 소망이 끊어진 그 자리에서 우리의 양심이, 인류애가, 사랑이, 그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수 있기를...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세찬 비도 내 마음까지 적시진 못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