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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Sep 02. 2022

딸에게 쓰는 편지

사랑하는 딸,

언젠가 네가 엄마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


엄마, 다니엘 엄마는 거짓말쟁인가 . 아이들은 프랑스어를 금방 잘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아직도 프랑스어를  못해. 도대체 언제가 금방이야.”


딸아, 네 말을 듣고 엄마는 마음이 아팠단다.

금방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 딸이 어서 그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으면,

얼마나 프랑스어를 빨리 잘하고 싶었으면

그게 그렇게 속상하게 느껴졌을까.

네 마음이 헤아려져서 너를 꼭 안아주고 싶었어.


그래 사실은 엄마도 그렇단다.

언제쯤이면 프랑스어를 잘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너희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더 성숙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잘 못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지.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그럴 때면 나무 한 그루를 떠올려.

그 나무는 엄마가 예전에 회사를 다녔을 때, 회사 앞에 심겨 있었던 커다란 팽나무란다.

어찌나 꼿꼿하게 잘 자랐는지, 그 모양이 참으로 웅장하고 멋있어서 엄마가 참 좋아했더랬지.


그런데 이 팽나무는 3월이 지나고 4월이 지나고 다른 나무가 꽃을 피우고 다시 푸르른 잎을 피운 뒤에도 도무지 잎을 틔울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  


엄마는 팽나무가 잎을 틔워주길 기다리고 기다렸어.

오늘일까? 아니면 내일일까? 그렇게 기다리다 조금씩 지쳐가던 어느 날, 아마도 5월도 반이나 훌쩍 지난 어느 날이었을 거야.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을 너머를 바라보니 꼿꼿한 가지들 사이로 푸르른 잎사귀를 아름답게 드리우고 있었지.


"와아" 탄성이 절로 나왔단다.

그랬어. 정말로 아름다웠지.


언제 잎을 틔우려나,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타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참 아름다운 나무가 그 자리에 떡하니 서 있었지.



그때 엄마는 깨달았단다.

서두를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조급해할 까닭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다른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우고,

멋지게 자태를 뽐내던 그 순간에도,

팽나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단다.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지. 마침내 틔워낼 아름다운 잎사귀를 그 가지들 사이에 품고서 말이야.


사랑하는 딸아,

너도 팽나무 같단다.

너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팽나무.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놀랍게 아름다운 잎사귀를 드리울 거라는 걸 엄마는 믿고 있단다. 아니 이미 네 아름다운 잎사귀가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걸 말이야.


딸아, 그러니 우리 함께 걸어가 보자.

이 길의 끝에 마침내 드리울 네 아름다운 날들을 믿음으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어가 보자.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다는 거 잊지 말고.


사랑하는 우리 딸,

너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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