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Jun 25. 2022

우리는 저마다 결핍과 사랑 사이를 오간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밥그릇 위로 한껏 쏫아 오른 고봉밥이었다.


식탁 위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


누구랄 것도 없이, 나이와 먹는 양 같은 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참석한 모든 이 앞에 놓인 그 동일한 크기의 고봉밥은 외할머니의 애틋한 마음이었고, 그게 느껴져서 '배 불러서 못 먹겠다'는 말을 꿀떡 삼킬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이 어슴프레 남아있다.    


어릴 땐 그런 이유로 외할머니의 식탁에 앉기가 싫었다. 유난히 입이 짧고 반찬투정도 많았던 내가, 조금만 많이 먹어도 곧잘 체하곤 했던 내가, 못 먹겠다고 몸을 비비적 대면 외할머니는 영 속상해하셨다.


"어린 게 저래 안 먹어서 우야누..

많이 먹어야 쑥쑥 크는 데...

저래 깨작대서 우야꼬..."


그런 걱정 어린 말들 앞에 서면 불현듯 두려워지곤 했다.


도무지 못 먹겠는데, 그런데, 그래서 잘 못 크면 어쩌지? 내가 좀 유난히 유난인가...


실망시킨다는 느낌이 싫고, 유난스럽다는 느낌이 싫어서 다시 힘을 내 숟가락을 들어보아도 그 큰 고봉밥의 반은커녕 삼분의 일도 채 못 먹고 다시 내려놓기 일쑤였다.



결혼을 하겠다고 남편을 데리고 외가에 내려갔던 그날도 그랬다.


외할머니의 고봉밥 앞에 어떻게든 점수를 좀 잘 따 보려는 무던한 남편은 군소리 한 번 없이 열심히 한 그릇을 뚝딱 비웠더랬다.


그런 남편을 애잔하게 바라보시던 외할머니는 '조금 더 먹겠는가?'라고 물었고, 이미 위장 가득 밥이 가득한 남편이 '아닙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정중히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상에는 다시 가득 동그랗게 담긴 고봉밥이 도착했다.


"여보게, 많이 먹게. 많이 먹어."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며 숟가락을 다시 드는 남편을 앞에 두고, 외삼촌은 내게 눈을 찡긋하며 말씀하셨다. "너거 외할머니 알제?"


남편은 그렇게 두 번째 고봉밥을 비우며 외할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했다.



그랬다.

외할머니는 많이 먹이고 싶어 하셨다. 유난히 밥에 대해 더 그러셨다. 우리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가 와는 상관이 없이 많이 먹이고 싶어 하셨다.


먹이고 싶어도 먹일 수 없었던 가슴 아팠던 세월 때문인지 우리가 도무지 못 먹겠다 하여도, 할머니는 더 먹으라고, 한 그릇만, 한 숟갈만 더 먹으라고 애절해지곤 하셨다. 그런 애절함을 못내 거절할 때면 외할머니는 눈물이라도 쏟을 듯 서운한 기색이셨다.

'이 귀한 걸, 이 귀한 걸....'


어떤 날은 새벽같이 일어나 전기밥솥을 가만 두고 냄비밥을 후루룩 만들어내곤 하셨다. 그러나 정작 그 찰지고 고소한 냄비밥은 자식들 고봉밥 만들어 내기용이고, 자신의 몫은 하루 지나 말라진 전기밥솥에서 떠 내셨다. 그러고도, 아들들이 군소리 없이 그 고봉밥을 너끈히 비워내면 외할머니는 자신이 그 고봉밥을 다 먹기라도 한 냥, 소녀같이 씽긋 웃으시곤 했다. 그게 뭐라고, 말이다.


 





그땐 다 이해할 수 없었던 그 고봉밥이,

지난주에 불현듯 생각났다.


아들과의 작은 사건이 있었던 날이었다.


"엄마 우리 반 OO이는 운동 되게 잘한다?

프랑스어도 되게 잘해."


프랑스로 갑자기 뿌리가 옮겨진 뒤부터 힘겹게 적응 중이던 아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 대해 그렇게 부러운 투로 말을 하면 내 마음은 일렁이곤 했다.


아들이 말하는 그 친구는 적응을 위해 프랑스어 학원도 다니고 운동도 사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작년엔 아들보다 키가 작던 친구가 어느새 아들보다 더 커서 학급 사진을 찍을 때도 아들보다 뒷 줄에 섰더랬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도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당장이라도 뭔가를 도와줘야 하나?

사교육이라도 좀 시켜야 하나?'


그러나 정작 "너도 하고 싶니?" 하고 물으면 고개를 젓는 아들 앞에서 사실은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지금 우리 형편에 그렇게 사교육을 시키기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오빠만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지가 하고 싶지 않다는 데 뭘... '


그렇게 짠한 마음은 구겨 마음 한 구석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그런 밤이면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녹록지 않은 형편에 하고 싶다 말할 수조차 없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라 괜스레 콧등이 시큰거리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파리 시에서 방학 때마다 아이들 대상으로 무료 운동교실을 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이거야!



나는 아들을 푸시하기 시작했다.


방학 때만 가는 거야, 얼마나 좋은 기회니?

벌써 프랑스에 온 지 3년이나 됐어.

너도 무언가에 도전할 때가 되었단다.

아마 키도 더 많이 자랄 거야.

성취감과 자신감이 길러질 거야.

친구들이 운동 잘하는 거 보면 부럽지?

너 집에만 있으면 너무 심심해하잖아.

이제 너도 열 살인데 무엇이든 배울 때가 됐어

.

.

.

이 모든 게 다 너를 위해서야.



"이 모든 게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을 실제로 아들에게 했는지 아닌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으로 내가 믿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 좋자고 아들에게 이런 기회를 잡으라고 말하는 부모가 세상천지 어디 있겠는가.



엄마의 강한 요구에 아들은 싫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흐뭇했다. 드디어, 아이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한 기회를, 언제나 내게 부족하다 느껴졌던 그런 경험들을. 그것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몇 주가 지나고,

지난주에 일어났다.


아들은 가슴이 답답하다며 울었다. 아빠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곤 운동교실에 가는 것을 보류하자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듣자 이번엔 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이 좋은 걸... 왜? 아주 배가 불렀어... 엄마는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 했는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아들에 대한 야속함에 가슴이 들끓던 그때,


외할머니의 고봉밥이 생각났다.

그 귀하고 봉긋 솟은 고봉밥 앞에 앉아 도무지 먹을 수가 없어 곤욕을 치르던 작고 어린 내가 생각났다.



굶고 살아온 세월의 아픔이 깊어,

자식만큼은 풍성하게 먹이고 싶었던 외할머니의 결핍에서 비롯된 애틋한 사랑과

그러나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이 많은 양의 밥은 아니었던 내 욕구 사이의 간극.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깊어,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경험과 문화자본을 물려주고 싶었던 내 결핍에서 비롯된 애틋한 마음과

그러나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이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던 아들의 원함 사이의 간극.




어쩌면 우리는 늘 이걸 되풀이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라서.




"아들, 힘들면 안 해도 돼.

엄마는 널 위한다고 한 거였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어. 미안해.

마음에 준비가 되면 그때 하자."



아들 앞에 높이 쌓아 밀어두었던 고봉밥을 치워준다.


나에게 너무나 간절했던 그것이,

너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내 밥그릇에 가득 담겨있던 고봉밥을 추억한다.

그땐 다 이해할 수 었었던 외할머니의 마음을,

그러나 그도 외할머니의 아픔이 서린 사랑이었다는  헤아려보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힘들 때, 내가 여기 있을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