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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Jul 22. 2022

당신의 하루는 충분히 아름답다

여름이 한창인 요즘,

파리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며칠 전 아침, 여느 때처럼 어학원을 가려고 아침 일찍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어학원까지 가려면 지하철 6호선을 타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바로 에펠탑 근처에 있었다. 신나게 걸어서 도착한 지하철 개찰구 앞에는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세 사람이 서성이며 웅성이고 있었다.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파리 시내 한가운데에서 너무나 익숙하고도 편안한 한국어가 들려오니 나도 모르게 귀가 번쩍 뜨였다.


"아빠, 이리로 오라고. 여기에서 카드 찍었잖아."

"여보, 거기도 안 돼? 아휴 어떡하니..."

"아빠, 그러니까 그걸 밀어야 되는데

왜 그냥 가만히 있었어."


가만히 보니,

모처럼 딸이 부모님을 모시고 나선 여행길.

아침 일찍 파리 관광을 나서던 길에 지하철 역부터 문제가 생긴 듯했다.


파리 개찰구는 보통 표를 넣거나, 카드를 대고 난 뒤에 바를 밀어서 통과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엄마와 딸은 별문제 없이 통과해서 들어갔는데, 아버지만 들어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여행지가 낯설어 우물쭈물하다 타이밍을 놓친 건지, 아니면 그냥 기계의 이상인 건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아버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당황한 상태로 이쪽저쪽을 오가며 배회하고 있었고 엄마와 딸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속이 타던 중이었다.



사실 파리에서 이런 일은 비교적 흔한 일이었다.

워낙 오래된 기계를 그대로 쓰는 나라이기에 이런 일은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기계가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일단 한 번 카드를 개찰구에 대서 읽히고 나면 그 직후에 바로  다른 개찰구에 다시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돈은 지불되었으나 문은 안 열리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럼 현지인들은 젠틀하게 관리인을 찾아가서 문제가 생겼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거나, 긴 다리로 그냥 담을 넘듯 훌쩍 뛰어넘어 들어가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지난 3년간 이곳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생활의 요령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행객이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더군다나 프랑스어가 유창하지 않은 여행객들에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쩔쩔매며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몹시 어렵고 곤란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니 그건 여행객뿐 아니라 여기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동일한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에 놓이면 우리는 마침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상대를 탓하거나, 나를 탓하거나, 이런 상황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탓하곤 한다.



그날 그 가족 앞에 놓인 상황이 딱 그러했다.

딸은 아빠에게, 아빠는 딸에게, 엄마는 엄마대로.

얼굴에 가득해 보이던 짜증스러움과 점점 더 높아가던 언성.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나가는 개찰구 앞에서 여행의 시작부터 맞닥뜨린 이 상황에 대해 그들은 그렇게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한 나는,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출입구를 있는 힘껏 손으로 밀어주며 (자동문이고, 지하철 역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문이 개찰구와 붙어있다.)  그들에게 소리쳤다.


"카드 찍으셨으면 이쪽으로 들어오셔도 돼요"


그 작은 호의에 그들은 그제야 안심하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뱉고는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아빠를 향해 잔뜩 짜증스럽게 말하던 딸은 민망했던지 종종걸음으로 앞서 가고, 엄마와 아빠는 딸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휴, 그래도 딸이 참 기특하다. 부모님 모시고 이렇게 여행도 하고... 그래, 그게 안 쉽지... 부모님을 아이처럼 돌봐드리고 섬겨드린다는 게 안 쉽지...'


그 딸의 마음이 왠지 헤아려졌다.

그리고 '부디 이 여행이 저 가족에게 좋은 시간이 되길...' 잠깐 축복하고, 발걸음을 돌려 지하철을 타러 올라갔다. 그때 찰나 같은 그 순간, 생각지 못한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아... 부럽다... "


그리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반짝, 마음도 함께 일렁였다.

 

'나도 부모님 살아계시면...

저렇게 싸워도 좋으니까... 모시고 여행 가고 싶다...'



그랬다.


그들에겐 진땀 나고 힘겨운 전쟁 같은 그 사건이,

두렵고 어렵고 불편한 그 순간이, 나에겐 부러운 일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까지 온 그 착한 딸의 마음이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앞에 평상심을 잃고 일렁인다 할 지라도, 두고 봐라 내가 다시는 부모님 모시고 여행오나... 하고 돌아선다 할 지라도, 그래서 기어이 마음 아프게 할 말 한마디 정도 내뱉는다 할 지라도...


나는 그런 것들까지도 다 부러운 셈이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뿐 아니라 힘들고 아픈 것들까지 모두. 내 편에선, 어려운 순간들까지도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일이었다.


어려운 일이 있었다 할 지라도 그것을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고, 서로 조금 언성을 높였다 할 지라도 돌아서면 용서하고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결국 세월이 지난 뒤에는 결이 똑같은 추억으로 남겨질 것이 분명했다.


깔깔대며, 아빠 그때 기억나? 하고 묻고, 아 그때 정말 놀랬다. 하며 함께 추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결국은 더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든든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었다. 비록 힘든 순간이었다 할 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보니, 그랬다.

나의 오늘도 누군가에겐 그럴 것이었다.


아이들과 투닥이느라 지친 하루도, 쉬이 늘지 않는 프랑스어로 그래도 뿌리내려보려 안간힘을 쓰는 하루도, 큰맘 먹고 지원했던 대학에서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고 늦은 나이에 실패의 아픔을 깊이 경험했던 순간들도.


매일 다른 이유로

늘 전쟁 같은 하루가 펼쳐지고 있지만,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고도 늘 그 마음만큼 완벽한 하루를 살아내지 못하고 지치거나 자책하기 일쑤였지만,


그러나 그런 하루가,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초라하고, 조금은 힘겨웠던 그 하루가 누군가에겐 그토록 부러운 하루였을 것이다.


다만 나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



그날 아침,

우연히 깨달은 그 사실은

나에게 작은 구원이 되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지금의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아름다운 때 못지않게 어두운 순간들까지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오늘 하루가 기대에 못 미쳤다 해도 괜찮다.


기쁘게 해 드리려고 모시고 온 여행길에 참지 못하고 아빠를 향해 소리를 질렀어도 괜찮다.

늘 태산 같은 아빠이고 싶었는데, 낯선 여행지에서 어린아이 같은 실수를 자식 앞에 보였어도 괜찮다.

그 모든 모습을 또 다른 한국인에게 들켜버렸는가? 그랬다 할 지라도 모두 다 괜찮다.



그런 것들은 내 삶에 조금도 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런 이유로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함부로 절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

부디, 당신도 그러하길.

당신의 오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당신도 누군가에겐 부러울 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을 거닐고 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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