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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하 Aug 24. 2020

자기 세뇌 : 전문가 계층의 자녀 교육

의지와 집중력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한 기술

자기 세뇌 연재의 마지막 편이다. 이번 편의 질문 목록은 아래와 같다.

1. 자기 세뇌를 추천하는가.

2. 자기 세뇌를 통한 목표 달성 후의 삶은 어떤가.

3.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자기 세뇌가 풀렸나.

4.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가.



1. 자기 세뇌를 추천하는가.


그렇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태어나 인생 고달픈 자들에게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단 한 칸이라도 올라타기 위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자기 세뇌를 권유한다. 자기 세뇌라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지만,  스스로가 접하는 정보와 환경, 관계를 통제하는 건 이미 중상류층들이 자녀교육에 사용하고 있고, 과거로부터도 계속돼 온 역사가 깊은 자녀교육법이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환경과 관계 속에서 정보의 입출을 통제하고, 학업을 방해하는 환경을 배제하고, 유사한 교육 수준과 배경을 갖춘 그룹 속에서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직업과 소득, 사회적 계층을 대물림한다.


자기 세뇌는 특히 기업 임원, 의사, 변호사, 교수  전문가 계층의 자녀교육 방식과 유사하다. 그들은 그들의 계층 기반이 생산수단이나 자산이 아니라 본인이 보유한 직업과 기술에 있으므로, 본인들과 유사한 소득과 지위를 보장하는 직업과 기술을 취득하도록 자녀들을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 또한 본인의 생활 기반이 부모의 직업적 전문성에 의존하고 있고, 본인이 유사 수준의 기술을 획득하못해 전문가 계층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 부모가 받았던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여유를 자녀 본인은 향유할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정보, 환경, 관계 통제를 통한 학업 성적 향상과 명문대 진학, 면허 취득을 위한 자기 착취는 부모와 자녀 모두가 받아들일  있는 선택이다.


그들은 부모와 유사 직업을 가진 부모의 친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태생적 환경 속에서 이제 막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유아기부터 부모와 학교, 또래집단 등으로부터 정보, 환경, 관계를 통제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내면화하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립 또는 명문이라고 불리는 곳에 다니면서 환경과 관계를 통제한다. 외부 정보는 그들의 리그에 유입되기 어렵다. 우리가 경험하는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자기들만의 환경과 관계 속에서 주거와 이웃, 학교와 친구들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화할 순 없겠으나,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해당 계층의 자녀들은 대개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었다. 의사인 부모 밑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경제적 메리트와 사회적 존경을 보고 자란 친구가 의사가 되고, 금융계 임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친구가 부모의 권유에 따라 법대에 진학해서 판검사 변호사가 되는 식이었다. 외국에서 일할 때는 금융권 전문가가 만 3살 밖에 안된 자녀를 영어유치원, 제2 외국어와 수학, 과학 과외를 보내고 명문 국제학교 입시를 준비시키는 걸 본 적도 있다. 만 3세였던 아이가 벌써 빡빡한 일정표에 맞춰 공부하고 있었다.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가장 큰 격차는 태어나면서부터 의식 수준에서 만들어진다. 어떤 목표를 성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이와 그런 걸 목표로 삼을 생각도 못하는 이와의 격차다. 힘들고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주변에는 비슷한 가난과 각자의 고달픔을 지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뿐이고, 계층 이동이나 사회적인 성공은 티브이에나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는 환경에서 자라난 이들과 중상류층의 교육 격차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벌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벌어진다.


부모가 세계의 전부인 유아기로부터 형성된 향상심과 자기 통제력을 토대로 인생을 설계해온 이들을 따라잡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흡수해온 능력들을 그런 환경의 뒷받침 없이 익혀내는 것도 힘들다. 스스로의 아비투스를 의식 수준에서 재조형해야 하는 일이니 초기 몇 년간은 자기 세뇌를 유지하기 위한 심력 소모와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몇 년을 참아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공부든 운동이든 이전에는 그렇게 하기 싫었고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각오와 의지가 필요했던 것들을 아무런 저항감 없이 습관처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향상심과 자기 통제력이 계층 이동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그러나 계층 이동의 확률만은 분명히 올려 줄 것이라고 믿는다. 향상심과 통제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나면, 설사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것에 실패할 지라도 다음번 그다음 번에는 보다 치열하게 목표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2. 자기 세뇌를 통해 목표를 달성한 후의 삶은 어떤가.  


크게 변했다. 거듭된 실패를 경험하고 스스로를 세뇌하면서까지 착취해서 목표를 달성한지도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그간 내가 가진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 과거에는 아르바이트비 입금을 기다리며 천 원어치 붕어빵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고, 호텔이나 백화점처럼 잘 산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곳에 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나처럼 가진 것 없어 초라한 자들이 가면 안 되는 곳 같았다. 가난했던 나는 스스로에게 허용되는 공간에 대한 구별까지도 내면화시켰었다.


현재는 생활수준도 달라졌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여겼던 동네, 나에게 소외감과 차별감을 주던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어느 정도 벗어나자 내가 스스로에게 씌웠던 자기 분수, 주제 파악이라는 족쇄도 약해졌다. 내가 20대에 느꼈던 소외감, 차별감, 동경, 질시, 선망, 좌절, 원망, 분노, 체념 등의 감정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약해졌다.


3.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자기 세뇌가 풀렸나.


아니, 풀리지 않았다. 보다 깊숙이 내면화되었다. 이제는 별다른 의지나 각오 없이도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글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자기 세뇌를 시작하고 유지하던 당시에는 익숙지 않은 옷에 스스로를 구겨 넣느라 독기와 의지, 지속적인 동기부여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세뇌가 완전히 내면에 안착한 건지 공부하는데 별다른 의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습관적으로 공부한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상황에 내몰려 쫓기면서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이해하고 납득할 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공부에서 재미를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다만, 자기 세뇌의 가장 힘든 부분이었던 자기 감시는 풀렸다. 실재 여부와 무관하게 마음속의 타인을 의식하면서 스스로를 항상 감시하고 채찍질을 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타인과의 비교로도 모자라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건 강박증적인 자기 평가와 자기 비하로 자존감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적 필요에 의해서 걸었던 자기 감시는 목표 달성 이후에도 적어도 2년 정도는 내 생각과 행동을 제약했고, 행동 하나하나를 자기 검열하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자기 세뇌가 보다 깊숙이 내면화되면서 감시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에는 자기 세뇌를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인내와 의지가 필요했고 그런 인내와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내면의 채찍을 휘둘렀으나, 자기 세뇌가 안착된 후에는 인내나 의지 없이도 자연스럽게 필요에 따라 공부하게 되면서, 둘을 자가 생성하기 위한 자기 감시도 내면의 채찍도 필요가 없어졌다. 추가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이 주는 자존감 회복 효과도 컸고, 절실했던 상황이 해소되자 타인들의 시선이 내 내면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힘을 잃은 것도 자기 감시가 풀리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4. 자기 세뇌에서 못 벗어난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가.


그렇다. 만족한다.  아직도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면 일어나 외국어 공부와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퇴근해서 잠들기 전까지는 독서와 글쓰기로 하루를 마감한다. 세뇌 이전에 시간 맞춰서 보던 스포츠와 예능 프로그램들은 아직도 안 본다. 세뇌 이전에는 꽤나 사교적인 타입으로 이런저런 동아리나 모임의 리더도 곧잘 했었는데, 이제는 소수의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 지인들도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싶을 정도로 인간관계에서 멀어졌다. 게임이나 당구 등 한때 미쳐있었던 취미생활도 하지 않는다. 취미 생활은 바디빌딩 하나만 하고, 타인과 장시간 어울려야 하는 골프 같은 운동은 하지 않는다.


확실히 과거보다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인간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 내 내면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내가 자기 세뇌를 위해 썼던 방법은 이전 글을 참조 바란다. 내 조언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과 내적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자기' 세뇌다.


이렇게 자기 세뇌에 대한 이야기를 네 편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다음 연재 주제는 아직 미정이다.    

       

공부나 외국어 관련 질문은 댓글로 남겨주기 바란다. 가능한 구체적으로 답변하도록 하겠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답변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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