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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하 Aug 29. 2020

굳이 영어 울렁증을 극복해야겠다면

영어 울렁증 원인과 증상, 경험담과 극복기

오늘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영어 울렁증의 증상

2. 영어 울렁증 한국인 종특설  

3. 영어 울렁증의 원인   

4. 영어 울렁증 경험담과 극복기

5. 결론




1. 영어 울렁증의 증상     


길 가다 마주친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면 머리가 하얘진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괜스레 주눅이 들고 일상적인 질문에도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으로만 맴돌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교수가 하는 질문을 분명 알아들었는데도 말이 계속 끊기고 결국 뭐라고 대답은 했는데 잘 한건 지도 모르겠고 왠지 부끄러워 어딘가 숨고 싶다. 원어민들을 앞에 놓고 영어로 발표를 하려니 시종 손이 달달 떨림은 물론이요 어떻게 끝나긴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비영어권 외국인 하고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영어권 외국인이 왓? 하는 한마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에 혀가 얼고 입이 붙는다.     


모두 내가 겪었던 영어 울렁증의 증상이다. 한국 지방 출신으로 수능 영어 공부만 하다가 인생이 꼬이려는지 모든 수업을 영어로 가르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영어울렁증은 일상이었고, 휴학과 복학과 퇴학과 재입학과 휴학과 복학을 거쳐 영어권 외국인들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발표하고 사회 보고 그들과 긴장감 없이 토론하고 대화하게 될 수준이 돼서 아 내가 영어울렁증을 극복했구나 싶게 된 건 근 십 년이 걸려 학교를 졸업하고도 몇 년이 흐른 이후의 일이었다.     


2. 영어 울렁증 한국인 종특설     


영어울렁증은 한국인만 있나? 아니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비영어권 외국인들은 영어울렁증이 있었고 그건 동북아뿐 아니라 유럽계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 출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영어울렁증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영어울렁증이 없어 보이는 비영어권 국가 출신들은 국제학교를 졸업했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거주했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스스로를 영어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시켜서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주 드물게 기질적으로 영어를 못해도 자신감 넘치고 긴장감 따위는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왜 중국어 울렁증, 일본어 울렁증, 스페인어 울렁증처럼 다른 언어에는 울렁증이 없나? 영어에 울렁증이 있는 비영어권 외국인들은 왜 나만 보면 그 어떤 울렁증의 낌새도 없이 김치! 불고기! 좋아요! 를 외치며 되지도 않는 한국말로 내 갈 길을 막는가? 영어만 특별해서? 고귀해서? 패권국 아메리카의 언어라서?(영국 말인데... 여왕폐하 맙소사...)      

여왕 폐하(출처 : me.me)


3. 영어 울렁증의 원인     


(사회적 요인) 아니,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영어는 나를 줄 세우고 구분 짓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시험을 치고 성적을 매겨서 잘하는 애 못하는 애를 나누고, 그걸로 앞날을 가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못하는 것보다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더 부끄럽게 생각하게 만든다. 못하는 걸 들킬까 봐 아는 단어도 입 밖으로 안 나오고, 세련되지 못한 발음이 들킬까 봐 뻔히 아는 문장도 맘껏 말하지 못한다. 영어 구사 능력을 무슨 중상류층 진입의 계급적 필수조건처럼 여겨서 미래를 위한답시고 갓난쟁이들을 조기 유학을 보내고, 화목한 가족이 고작 영어 때문에 생이별을 하고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잊어버릴 세월 동안 이산가족으로 살아도 영어만 잘한다면 아이의 미래가 보장될 거라고 생각해 감내한다. 그런 풍조 속에서 부모의 배경과 재력에 기대 영어 환경을 풍족하게 누린 아이들은 뭔가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평범하게 한국에서 초중고를 다닌 아이들은 본인이 아무리 공부를 잘했어도 자연스러운 발음과 맥락에 딱 맞는 단어를 구사해 내지 못하면 원어민스럽지 않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이러니 영어 울렁증이 안 생기겠나. 나의 수준과 계층이 고작 영어 한마디로 드러난 다는데 가슴이 울렁울렁 대지 않고 배기겠냐 이 말이다.     


그러니, 나를 줄 세우지 않는 언어, 나를 구분 짓지 않는 외국어에는 보통들 울렁증을 느끼지 않고 느끼더라도 그 정도가 영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개인적 요인) 다만, 개인의 기질이 미치는 영향도 분명 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 선생님의 질문에 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친구가 있었던가 하면, 나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해서 어버버 하다가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다다다 내뱉고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자리에 앉아 호흡을 몰아쉬는 아이도 있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들은 영어 울렁증도 그렇지 않은 친구들보다 약할 것 같다. 왜 꼭 그런 친구 있지 않나.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길가다 외국인이 보이면 네비가 뭐라 하든 말든 경로를 이탈해 영어로 말을 거는 친구들 말이다. 그런 친구들은 영어 울렁증의 강도도 약할 테고 그걸 아예 없애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원어민인 친구들 말고 조기 유학 간 친구들도 처음엔 낯선 언어에 적응하고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거쳤다. 아주 힘들었을 거다. 그 기간을 거치지 못하고 방황하고 낙오하는 친구들도 많다더라. 안타까운 일이다. 즉, 안 그래도 낯선 영어가 공부가 부족하고 말할 준비까지 안되어 있으면 영어울렁증으로 나타난다는 거다.


4. 영어 울렁증 경험담과 극복기     


내가 경험한 영어 울렁증에는 단계가 있었다.

1) 영어로 말하는 게 두렵다. 영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무섭다.

2) 영어로 말은 하는데 긴장감에 젖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뱉는다.

3) 비영어권 외국인들이랑은 잘 이야기하겠는데, 영어권 외국인들이랑 이야기하려면 괜히 주눅 들고 말이 잘 안 나온다.     


1) 영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은 단계     


(경험담)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나를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예 외국인이거나, 한국인이라도 원어민이었다. 나는 수능 영어 수준밖에 안됐는데, 그때는 대체 무슨 깡으로 그런 학과에 자진해서 입학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여간, 수업시간에 미리 준비해둔 자기소개를 덜덜 떨면서 마치고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 미국인 노교수님 사전 합의도 없이 불의의 질문을 던지시는 게 아닌가. 미국 예외주의자인가? 일단 못 알아 들었고, 안 그래도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느라 울렁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던 그 순간 나에게 던져진 질문에 그냥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 아임 소리..... 아.... 아이 돈 언더 스탠...’ 하고 답했을 때 그 노교수님의 양 눈썹을 가운데로 모은 고심에 잠긴 듯한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극복기) 이전 글인 영포자가 영어로 취업하기까지에서 밝혔듯이 영어로부터 도망쳤고, 학교에서 잘렸다. 온갖 방황 범벅 속을 뒹굴다가 운 좋게 재입학했다. 영어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그래도 하루 한두 시간씩은 영어를 공부했었기 때문인지 어떻게든 떠듬떠듬 영어로 말은 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영어로 어떻게든 말하고 쓰지 못하면 인생 망하겠다는 대오각성을 하고


1. 영어 질문에 답변하는 연습을 했다. 예상 질문에 대해 답변의 시작과 전개를 어떻게 할지를 쓰고 내가 쓴 게 맞는지 친구한테 물어서 고치고, 반복해서 음독하고 발음을 교정하면서 달달 외웠다.

2. 준비해두지 않은 질문이 나오거나 알아듣지 못하면 옆에 앉은 친구에게 뭐라고 하신 거야라고 물어서라도 어떻게든 답을 하려고 했다.

3.. 이미 나의 같잖은 자존심은 퇴학을 경험하고 산산이 부서진 다음이었기 때문에 나의 부자연스러운 영어 발음이나 부적절한 문법과 단어 사용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예 없어지진 않았지만 버리려고 노력했다.

4. 틀리던 말던 외국인 교수님이 내 영어를 못 이해하셔서 다시 물으시면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어떻게든 내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했다.

5. 그리고 한국인들끼리라도 모여서 영어로 대화하는 스터디를 일주일에 서너 개씩 했고,

6. 매일 아침 전화영어를 했다.


결론적으로 영어로 말해야 하는 그 두려운 상황에 스스로를 계속 반복적으로 노출시켰다. 학교 수업 외에도 스터디, 전화영어 등 시간이 허락하는 건 다 했다. 부끄러움을 어떻게든 버텨내며 느리건 틀리건 부자연스럽건 부적절하건 내 영어로 이야기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일단 상황에 익숙해지고 영어로 답변을 해내는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이니 자신감이 붙더라. 그렇게 2년쯤 지나자 영어로 말하는 상황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영어울렁증은 거의 사라졌다.      


2) 영어로 말은 하는데 긴장감에 내가 뭐라고 하는지 모를 말을 뱉는 단계     


(경험담) 휴학과 복학, 퇴학과 재입학을 거쳐 어찌어찌 영어로 꾸물꾸물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학교 수업은 발표와 토론 중심이었고, 그 발표란 게 수업 하나당 적으면 한 학기에 한 번씩 많으면 네 번씩도 해야 했고, 짧으면 30분, 길면 2시간짜리 발표도 있었다. 그냥 학생의 발표를 중간중간 멈추며 질문하고 토론하고 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발표와 토론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천성이 의심하고 따지길 좋아하다 보니 토론은 어떻게 꾸역꾸역 하겠는데 발표는 이거 원어민뿐만이 아니라 눈빛을 번뜩이는 교수님을 앞에 두고 하려니 이게 내가 지금 영어로 뭔갈 말하고 있는 거 같은데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교수님 표정이 왠지 진지한데 이거 내가 틀렸나 싶고 원어민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이거 정말 발표 망하는 거 아닌가 싶고 그러다가 스스로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도 모를 상태로 중얼중얼 대다가 발표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극복기) 발표 때 영어울렁증이 도지는 건 영어도 부족하지만 발표 경험 자체가 적어서 생기는 무대공포증과 비슷한 거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1. 영어로 발표하는 스터디를 일주일에 3개, 주중에 한 개 주말에 두 개씩 했다. 발표자가 펑크 나면 거의 무조건 내가 발표를 대신해서 최대한 빨리 경험치를 쌓으려고 노력했다.

2. 발표 내용을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 누구에게서 내가 모르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래서 발표가 있을 때마다 교과서 해당 부분을 반복적으로 읽고 PPT를 만들고 대본을 만들어서 혼자 리허설하고 친구들 앉혀놓고 리허설하고 교정받고 고치고를 반복하면서 발표 내용을 머릿속에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3. 대학생 때 조금 과장을 보태면 학교 안팎에서 정말 수백 번의 영어발표를 했기 때문인지 언젠가부터는 발표 전문가처럼 발표 주제가 정해지면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자신감을 뽐내며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 울렁증의 두 번째 단계를 극복하는 데 또 한 2년쯤 걸린 것 같다.      


1단계 2년에 2단 2년이면 대학교 졸업했어야 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생길 것 같다. 일단 1단계와 2단계는 반쯤 겹쳐있었고, 재입학 이후에도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고, 결국 재입학 이후 7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야 졸업할 수 있었다. 문과 주제에 의대 간 친구들보다 졸업이 늦었고, 일부 친구들은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의문은 퇴교자, 재입학자, 대학 장기체류자에게 실례라는 말씀.     


3) 외국인의 출신지에 따라 차별적으로 울렁대는 단계     


(경험담) 이제 재입학하고도 몇 년이 흘러, 수십 번의 영어 발표와 수백 시간의 영어토론으로 내공도 좀 쌓였고 자신감도 붙었다. 어 나 영어 쫌 하는 거 같은데? 어쭈 멋지단 말이야. 하면서 그동안 영어 때문에 움츠리고 있던 내 가엾은 자아가 다시금 기지개를 켜려 하는 그런 중차대한 시기였다. 그런데, 비영어권 출신 외국인이랑은 울렁댐 없이 이야기하겠는데, 영어권 외국인들이랑 이야기하려면 괜히 주눅이 드는 거다. 하루는 아프리카인 친구(심지어 영어권!)랑 교실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호주 친구가 와서 머라 머라 말을 거는데 응? 갑자기 내 말이 뚝뚝 끊긴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것인가 머리 검은 친구랑은 편하게 이야기하더니 머리 노란 친구에게는 기세에서 눌려 입도 제대로 못 놀린 건가 실망이구만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후 몇 년이 지나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동북아나 동남아 중남미를 상대로는 유창했던 내 영어가 북미 유럽을 만나면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복기) 하도 외국어 때문에 고생하고 치이며 살다 보니, 이제 문제에 부딪히면 원인을 핀 포인트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문제는 입학 당시부터 두려워했던 영어권 외국인들하고는 이후에도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당초에 성격상 먼저 다가가지도 못했던 바, 그 상황이 온존 하여 작금의 인종차별주의적 영어울렁증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1. 영미권 출신 친구들을 이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주기적으로 만나서 같이 놀면서 그들과 접하는 빈도를 올렸다. 술도 먹고 춤도 추고 그랬다.

2.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외노자로 살면서 원어민 또는 원어민에 준하는 이들과 동료로서 업무 상대로서 같이 일하고 놀고 그러니 인종차별주의적 영어울렁증은 사라졌다.          


5. 결론 : 노출 빈도 상향, 사전 준비 철저, 성공 경험 축적, 영어 울렁 극복


첫째, 경험상 가장 좋은 방법은 영어로 말하는 기회를 늘려서 스스로를 영어에 자주 노출시키라는 것이다. 전화영어, 회화학원, 스터디 등 뭐든 좋다. 다만 주의할 것은 영어로 말하기 전에 최대한 자신이 말할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써서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효과가 배가 된다는 것이다. 준비되어 있을수록 상황에 대한 울렁증은 작아진다. '어 저는 말이 영어가 아예 안 나와서 회화학원이든 뭐든 무리예요'라는 수준이면 떠듬떠듬이라도 말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초 영어회화집을 사서 반복적으로 듣고 음독하면서 외우고, 영미권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맥락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라.


둘째, 영어 말하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도 특정 상황, 분야에 대한 울렁증이 남게 될 텐데, 그런 상황적 울렁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지속적으로 그런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경험치를 쌓으라는 거다. 그 상황이 영어발표라면 학교 수업 외에도 스터디 등을 통해 발표할 기회를 늘려나가는 것이 좋다. 이 경우에도 그런 상황을 철저히 비하지 않아서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할 경우 오히려 영어울렁증이 심해질 수 있다. 그러니 준비가 쌓여 자신감으로 바뀔 때까지 반복 연습해서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고 또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발표든 토론이든 어떤 분야에 대한 울렁증은 분명 작아진다.      


셋째, 영어 말하기나 상황, 분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경지에서도 영미권 외국인들 앞에서는 왠지 영어가 잘 안 나올 수 있다. 답은 뻔하다. 영미권 외국인과의 접촉 빈도를 늘려서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압박에 익숙해지면 된다. 압박이 일상화되면 더 이상 압박이 아니게 된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오늘은 이쯤 하겠다.     

영어, 외국어, 공부 관련 질문은 댓글로 남겨달라. 최대한 구체적으로 답변하겠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답변도 구체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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