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
경애하는
독자 여러분들께,
그간 격조했습니다.
장삼이사 정지하입니다.
이제 다시 한국을 오랜기간 떠나게 되어 인사드립니다.
2021년 2월에 한국에 돌아왔으니 만 2년 만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외국으로 떠납니다.
30대 이후로는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오래 생활했습니다.
외국에 있을때는 고향과 사람들이 그립다가도
돌아오면 생활이 어렵고 힘들고 푸념도 하고 그렇게 버티다가
적응이 되었다 싶을 즈음에 다시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고 돌아오는 방랑 생활을 하다보면
익숙해 질 법도 한데 헤어짐은 언제나 새롭고 아쉽습니다.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눈에 익은 장소와 계절과도 이별해야 합니다.
다시 여행길에 올라 오년은 지나야 한국에 돌아올 텐데
그때는 30대의 젊은 저도 아내도 어린 자녀들도 함께 오지 못할 겁니다.
다들 그 시절 그 시기 그 기억에 머문채 다시 외국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저희를 배웅할 겁니다.
한국에서 떠나는 지금은 이년 전에 한국에서 어떤 동료들과 일하게 될까 잔뜩 긴장해 있었던
저도 없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첫째도, 막 말을 시작했던 둘째도 없습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살아계셨던 어머니도 안계시네요.
모두 두고 갑니다.
아직 코로나가 한창인 때라 도착하자마자 14일간 격리하고
격리를 마치고 한달이 지나기도 전에 에이형 간염 판정을 받고
응급실에 입원한 후 이주간 다시 격리를 했습니다.
에이형 간염이 법정 전염병이라 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매일 경기도에서 강북으로 세시간씩 출퇴근을 하면서 몸은 점점 축났고,
일과 출퇴근 말고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재작년 추석때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뵜었습니다.
그때도 기침때문에 힘들어하셨었는데
한달 후 폐렴으로 입원하신 어머니는 다시 한달을 중환자실에서 투병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하루에 1분만 면회가 가능했습니다.
초등학생때 이후로는 엄마라고 친근하게 불러보지도 못했는데
황달로 퉁퉁부은 엄마의 얼굴과 손과 발을 보자마자
엄마엄마 하면서 아이처럼 울어버렸었습니다.
어머니는 기도삽관을 하고 수면제와 항생제, 진통제 처방을 받고 계셨어서
말은 물론이고 눈도 뜨지 못하셨습니다.
평생 고생 고생하다가 자식만 바라보고 사신 분이셨는데,
실은 아직도 엄마가 없다는게 실감이 안납니다.
감정이 격해지니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여하간 그렇게 21년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직후 저는 목디스크로 세달 정도 고생을 했습니다.
경막외 주사를 네번 맞고, 회사를 쉬다 다니다를 반복하다가 연초에 겨우 회복했습니다.
22년 초 저는 격무 부서로 배치됬고
첫째는 초등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들어갔습니다.
근교에 빚더미로 구한 새 집으로 이사도 했습니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서 밤 하늘을 보면서 퇴근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안해본 일이라서 재미는 있었지만, 몸이 힘들어 더는 버티기 어렵겠다 싶을 즈음에
이렇게 벌써 떠날 날이 왔습니다.
저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납니다.
모두들 항상 건강하시고 더 자주 행복하시길 빕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지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