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이의 설렘
"나는 결혼하고 나서 사람 많이 좋아졌지!
참고 인내하는 삶을 살고 있어.
나의 삶은 아주 거룩해졌어. 예수의 길을 가고 있지.
"뭐? 재 X 없어."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캠핑 장작불 앞에서 남편과 연애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나랑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니 어떻냐는 질문을 했더니, 나온 대답이었다.
13년 전 내가 미혼일 때, 퇴근하고 수영장을 다녔다.
밤 9시 수업을 마치고, 10시 이후에 젊은 사람끼리 회식을 하기도 했다.
나까지 여자 둘 남자 셋이었다.
나보다 3살 많은 언니는 결혼할 남자 친구가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솔로였다.
남자 셋 중에 한 명이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이 지금까지 모르는 얘기가 있다. 매번 내 브런치 글을 읽는 남편이 이 글을 읽고 눈하나 깜짝 안 할 테지만.
한 번은 남편 없이 남자 둘, 여자 둘이서 회식을 했다.
남자 A는 연하였고, 남자 B는 남편의 친구였다.
그날따라 분위기가 좋아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언니가 내게 그랬다.
"J(지금의 남편)가 미선 씨한테 관심 있대. 미선 씨는 J 어때?"
나도 J에게 약간의 호감은 있었지만 뭐라고 명확히 대답은 안 했다.
그런데 그중 A가 갑자기 내게 들이댔다. 술자리 내내.
쟤는 갑자기 내게 왜 저럴까 생각했다.
"어머, J가 관심 있다고 했는데도, A가 저렇게 들이대다니 미선 씨한테 진짜 관심 많나 봐.
J 불쌍해서 어떡하니!!" 언니가 옆에서 더 부추겼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A가 수영장 주차장에서 차를 밖으로 빼놔야 한다며, 내게 기다려달라고 했다. 자기가 집에 데려다주겠다면서.
나는 너무 늦어져서 기다릴 수가 없다며 그냥 먼저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A는 제발 가지말라고 금방 나오겠다고 부탁하듯 말했다. 절대 먼저 가지 말라고. 꼭 같이 가자고 말이다.
난 그때 A의 눈빛을 봤다.
같이 집에 간다면 분명 뭔 일이 날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A가 주차장에 간 사이, 나는 어서 B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참고로 B는 나랑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았다.
B는 외모부터 그냥 옆집 아저씨 느낌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B가 믿음이 갔다. 안전하게 집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말이다. B는 이후 내게 가끔 톡을 보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에게 마음이 없었다.
그 회식날 이후 A는 내게 삐졌던 것 같다. 말을 붙여봐도 단답만 할 뿐이었으니까.
자연스레 남편이 된 J와 나는 가까워졌고 연애를 시작했다.
하루는 남편이 내게 그랬다.
"내 친구 B가 예전에 그러더라? 미선 씨가 자기한테 관심 있는 것 같다고."
"뭐? 그건 또 뭔 소리래. 수영 끝나고 같이 집에 걸어와서 그런가?"
그렇게 나는 세 남자 사이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했다.
다시 생각해도 J가 최고다.
캠핑 다음날 아침 철수를 할 때 비가 왔다. 서둘러 짐을 정리해야만 했다.
타프 아래에서 우의를 입고 짐을 나를 때는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타프도 모두 걷고 우의도 벗어젖히고 잠시 비를 맞아야만 할 때, 남편이 얼른 두 손을 내 얼굴 위에 갖다 댔다. 내가 비 맞을까봐 취한 행동이었다. 그 두 손으로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순간적인 남편의 행동에 나는 눈길조차 주치 않았지만, 마음은 심쿵했다.
매일 나를 들었다 놨다, 툭하면 나를 놀리는 남편이다.
내가 집안일이나 아이들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할 때 남편이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면서 내게 불만도 얘기하고 힘들다고 툴툴 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준다는 건 사는 내내 느낀다.
두 손으로 비 몇 방울이라도 덜 맞게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고맙다. 남편의 그 행동이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떠오른다.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남편에게 설렐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이번엔 내가 설렘을 전달할 차례다.
"남편! 설렘 받을 준비 하고 있어!"
근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