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껴안고 멈추고 싶은 시간
그러나 아직도 죽음은 나에게 희망이다. 그 못할 노릇을 겪고 나서 한참 힘들 때, 특히 아침나절이 고통스러웠다. 하루를 살아낼 일이 아득하여 숨이 찼다. 그러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하루에 살아낸 만큼 내 아들과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p244)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후 아침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저자는 말했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잃은 그 심정을 감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저자의 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아침이 오면 잠자면서 잠시 잊었던 슬픔을 다시 깨우니 그 시간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입은 귓가에 걸리고 마음은 즐거우며 몸이 포근함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내 아이들을 깨우는 시간이다.
새벽 5시 전부터 7시까지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영어 소리 코칭하고, 감사일기도 쓰고 책도 읽는다.
시계가 7시를 넘어서는데도 속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며 남은 일을 처리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먼저 깨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떨 때는 아이가 먼저 일어나 내 방문을 열며 "굿모닝~~"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아이를 깨우는 게 훨씬 좋다.
침대에서 아이 꼭 안고 뒹굴거리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절대 그냥 패스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나'에서 '엄마'로 바뀌는 시간 시작이다.
7시 10분이 지나고 아이들이 자고 있는 침실문을 열고 들어간다.
분위기를 살피며 첫째 찬이 침대에 먼저 올라간다.
"찬이야, 일어나." 하면서 찬이 옆에 누워 꼭 안아준다. 볼 뽀뽀도 여러 번 한다.
갓난아기 때부터 느꼈지만 찬이는 내 품에 폭 안기는 맛이 없다.
워낙 말라서 딱딱한 뼈가 느껴지니 내 몸이 아프기도 하다.
이미 커버려 내 품속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아들을 안을 수 있는 시간이 꿀 같다.
둘째 윤이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윤이침대로 넘어간다. 오빠만 안아준다고 투정 부리며 울면, 골치 아프다.
"굿모닝~ 일어날 시간이야. 딸."
통통한 딸은 안기는 맛이 있다. 내 품속에 온몸으로 폭 안긴다. 딸은 아직 작은 몸집이라서 내가 다 품을 수 있다.
'시간아 천천히 가라, 내가 이렇게 계속 한 품에 안을 수 있게.' 속으로 외친다.
새벽부터 집중해서 일하고 나면, 아이 깨울 시간 즈음에는 지친다. 이대로 아이들 안고 다시 잠들고 싶다.
분명 한 시간 후에 나는 아이들을 엄청 재촉할 거다.
"학교 갈 시간 다 됐다. 빨리 밥 먹어. 유치원 버스 시간 다 됐어. 얼른 씻자."
점점 내 소리는 높아지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매일 똑같이 아이들과 씨름한다.
그걸 잘 알면서도 아이를 깨우는 그 시간에는 꼭 안고서 '조금만 더~' 라며 금세 일어나지를 못한다.
어떨 땐 오히려 아이들이 "엄마, 이제 거실로 나가자."라고 할 정도다.
일은 한 무더기 쌓여 있다. 오늘 할 일 다 못 끝내서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을 때도 많다.
결국 다 내가 저지른 결과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벌려놓고 본다. 어떻게든 수습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 시간이 즐겁다. 도전하고 작은 성취를 맛보면서 내가 살아있고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느낀다.
어떨 때는 내가 '엄마'라서 충분히 내 시간을 못 쓸 때가 많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할 때다. 알면서도 아이와 내 할 일 사이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게 일상 다반사다.
주말 오전 내내 집안일을 했다. 계속 정리 안 되는 주방 수납공간을 다 엎어버렸다. 모조리 다 꺼내서 버릴 것과 놔둘 것을 정리했다. 한 때 베이킹에 빠져서 베이킹 관련 재료와 도구가 가득했는데, 모두 수납장에서 치워 버렸다. 주방 대청소하는데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길래, 식사 준비를 했다.
밥 먹고 나니 오후 1시다. 할 일이 많다. 서둘러야 했다.
"얘들아, 이제 엄마 할 일 해야 하니까, 너네 끼리 잘 놀아."
자리에 앉아서 무엇부터 해야 하나 살펴보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데에도 시간이 약간 필요하다.
한 1~20분 후쯤 이제 겨우 집중하며 일에 몰입하려는데, 윤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나 똥 다 쌌어. 닦아줘."
흐름이 끊겼다. 늘 이런 식이다.
평소에 잘 놀던 아이들은 내가 뭐 좀 하려고 하면, 배가 아프거나, 배가 고프거나 둘이 싸워 한 명이 운다.
오늘은 짜증 내며 한 마디 했다.
"너는 어쩜 엄마가 뭐 좀 하려고 하는데, 방해를 하는 거야."
옆에서 듣던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애가 똥도 마음대로 못 싸나? 배가 아픈 걸 어떡해."
"아니 그니까, 왜 지금 똥을 싸냐고!"
말인지 방귀인지.
내 말을 듣고 남편과 찬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 아이들, 나를 방해하는 아이들.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일을 벌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새롭고 두려운 일도 할 수 있다는 힘이 나게 하는 원천은 아이들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결국 내가 행복하고 건강한 마음이라서, 일을 즐겁게 계속 해 나갈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꼭 껴안으며, 아이의 아침을 깨우는 그 순간이 그래서 나는 제일 좋다.
하루가 지나고 또 새로운 날에 아이를 깨울 수 있어서 좋다.
내 희망이고 사랑이다.
희망과 사랑을 품고 나는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