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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Jul 13. 2024

그리움을 꺼내 놓는 행복

내 마음속 외딴방은 없기를.


종량제 봉투 20리터짜리 2개를 가득 채웠다.

버릴 책으로 두 개의 탑을 쌓았다.

조그만 내 방에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올 줄이야.

내가 작업실로 쓰는 방 한쪽 벽면은 책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주 보는 벽에 책상, 그 옆에 또 다른 책장이 있다.

아이들 책도 많은데 작년부터 계속 늘어가는 내 책까지 더해져, 책장이 더 이상의 책을 소화 못하고 뱉어내기 직전이었다. 책상 위에도 책이 다섯 권, 화장대에도 세 권, 심지어 바닥에도 책이 쌓여 제자리를 못 찾고 있었다. 분명 몇 달 전에 아이들 책 한가득 빼냈는데 또 이 모양이다.



나가자!!!

가족과 집 근처 스타필드 쇼핑몰에 갔다. 점심 먹고, 다이소에 들러 필요한 것도 샀다. 찬이가 선물 받은 1만 원권 다이소 상품권을 가족에게 쏜다고 했다. 나도 신이 나서 공책 2권을 샀다.

찬이 책상을 사야 해서, 브랜드 매장마다 들러서 꼼꼼히 비교해 봤다. 10만 원대부터 100만 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책상 하나 사는데 고려할 게 많았다. 앞으로 이사 여부, 책상 크기, 언제까지 책상을 쓰게 할 건지 등등 남편과 의논하고 찬이 의견도 물으며 이것저것 따져봤다.

에어컨이 빵빵한 쇼핑몰에는 온통 구경할 것 투성이었다.

내 정신을 쏘옥 빼놓기에 충분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대청소 하자."라고 말했다.

아이들 장난감과 책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거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 오늘 필요 없는 것 좀 다 버리자. 찬이, 윤이! 너희도 얼른 정리하고 버릴 건 여기 쓰레기봉투에 다 집어넣어!"

거실은 아이들과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서, 방을 뒤집어엎었다.

더 이상 보지 않는 책, 앞으로 쳐다보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자료 모음 파일 등 죄다 꺼내놨다. 책장 사이사이에도 뭐가 그렇게 많은지. 빼곡하다 못해 빡빡했다.

어느덧 책장 몇 칸은 차지하고 있는 내 책들. 앞으로도 더 늘어날 텐데,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이 조그만 방 하나 정리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다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아니 시계도 안 쳐다봤다.

집안 정리는 잡생각 버리고 내가 집중하기에 딱 좋았다.


"아! 배고파." 정리하다가 갑자기 허기를 느꼈다.

"엄마, 나도 배고파." 아이들도 배고프다고 난리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6시가 넘어갔다.

친정 엄마가 사다준 콩국으로 콩국수 끓여 먹고, 나머지 정리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언제나 내게 할 일은 쌓여있었으니까. 뭐든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독서노트를 펴고 어젯밤 졸려서 못 다 끝낸 필사를 마저 했다. 그리고 블로그에 서평을 적고 있었는데,

"띠링" 톡이 울렸다.

늘 핸드폰을 옆에 끼고 사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바쁘다고 폰이 어딨 는지도 몰랐다. 잠시 폰이 어딨나 궁금했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내 뒤에 폰이 있었구나!


"한 시간 딜레이 돼서 이제 홍콩 도착~~"

레이첼이 톡을 보냈다.


내 친구 레이첼은 5주간의 한국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오늘 남아공으로 떠났다.

비행기 타는 시간에 맞춰, 아까 밖에서 잠시 톡으로 인사도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레이첼이 보낸 톡을 보다가, 저장해 놓은 사진도 보게 되고 그러다 생각의 꼬리는 이제 과거가 되어버린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에 닿았다.

아...

마음 안에서 뭔가가 몽글몽글 올라온다.

'그거였네...'

나도 모르게, 혹은 의식적이었을까? 오늘 나는 생각과 마음의 어떤 문을 닫고 있었다.

하루종일 쇼핑하며 즐기고, 청소하며 집중했다. 독서노트 쓰는 것도 오늘따라 집중이 잘 되더라니.

오늘 나는 바쁘게, 일상을 꽤 노력하며 보냈다.



레이첼이 보낸 톡 하나에 더 이상 해야 할 일에 집중을 못하고, 이렇게 브런치에 들어와 자판을 두드린다.

지금 이 마음 기록하자고.

마음을 휘저으며 차오르는 그것, 글로 꺼내 놓으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그리움."


나에게 가장 약한 부분.

나를 약하게 만드는 그것.


몇 시간 잘 참았다 싶었다. 내 마음 견고히 다져가고 있었는데 그 조그만 틈을 비집고 나를 흔들어댄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마주해야 할 부분이며,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 감정이다.


그러다 드는 생각.

누군가를 충분히 그리워할 수 있음이 또 하나의 행복 아닌가.


어제까지 푹 빠져 보았던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서는 주인공이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까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를 주저했다. 과거 몇 년의 삶을 통째로 누락시키고 싶을 정도로 꺼내기 힘든 경험이었기에.


그리움이 무섭고 힘든 나는,

그래도 "슬프다, 그립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나는,

그리움에 눈물을 마음껏 흘릴 수 있는 나는,

최소한 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다행 아닌가.

내 마음속 외딴방에 잠가두어 안에서부터 곪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 '그리움'의 감정과 함께 동행할 나 자신을 응원해 본다.


"그리워하는 그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내 마음이 건강하다는 거야.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건,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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