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작가 Aug 01. 2024

내가 자존감이 높다고?

내 순결한 한 가지.


대부분의 우리나라 여자들은 '난 너무 뚱뚱해. 살 빼야 돼.'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에 대한 생각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내면이 단단하고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주위를 보면 하나같이 대부분 '나는 자존감이 낮아.'라고 말한다.


살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자존감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 마음에 흠집 정도가 생겨야 자존감 운운하니, 그렇게 따지면 자존감 높은 사람이 어디있겠냐마는.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 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그걸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너무 외롭겠다고.  (외딴방에서 발췌)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 각자 준비해 온 발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나는 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 내 마음에 두는 순결한 한 가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만들면서 스스로 생각해 봤다.

'내 순결한 한 가지는 뭘까? 이 책의 저자에게 순결한 한 가지는 글쓰기인 것 같은데, 나는 뭘까?

나도 글을 쓰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는데 나에게도 글쓰기일까?

아니면, 우리 아이들일까?'

여러 생각이 교차하던 중 답을 찾아냈다.


"존재함"


내 순결한 한 가지는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글을 쓰던 성장을 하던 모두 내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하다.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내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뭐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런 생각이었다.



<<칼의 노래>> 통필사를 하다가, 펜을 집어던졌다.

"여덟 살 난 남자아이와 다섯 살 난 여자 아이를 무릎을 으깨서 죽였다. 목격한 사실을 자백하라는 위관의 심문을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어린아이에게 고문이라니! 역적을 찾아낸답시고 어린아이에게까지 고문질이다.

나이도 딱 내 아들, 딸과 비슷하다. 김훈 작가의 글은 머릿속에서 너무 생생하게 그려지기에, 저 문장을 읽고 손으로 꾹꾹 눌러쓰다가 가슴이 복받쳐 올랐다.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더 이상 못 쓰겠네."

더 이상 글을 따라 쓸 수가 없어서 펜을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필사를 강제 종료해야만 했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또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에 닿았다.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게 불과 며칠 전 일이라서, '내 순결한 한 가지'에 대한 답을 더더욱 "나의 존재함'으로 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서 모임에서 내게 순결한 한 가지는 "존재함"이라고 말하자, 다른 멤버가 놀라며 자신은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하겠다고 했다. 아직 그 순결한 한 가지를 모르겠다고.

그 독서 모임의 리더도 내 대답을 듣고는 말했다.

"리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야."


순간, 멍...

'내가? 내가 자존감이 높다고?

아닌데...

내가 행동을 잘못했나? 나 자존감 높은 것처럼 행동했나? 그래서 그렇게 보이나?'

아니라고 부정할까 하다가 말았다.

생각해 보니, 도대체 자존감의 높고 낮음의 기준이 뭔지 애매했다.

절대적 기준에 대한 수치도 없고 모두 개인의 기준이고 느낌일 뿐이니까.


그 어느 누구도 자존감이 365일 높지 않고, 반대로 평생 자존감이 낮지도 않을 거다.

누구든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고, 중요한 건 자존감이 내려갔을 때 그것을 인지하고 빠르게 회복하는 게 아닐까.

나는 자존감이 툭 떨어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침대 속에 파묻혀 잠만 자려고 했다. 잠에서 깨면 힘든 현실이 눈앞에 보이는 게 두려웠다. 어렸을 때부터 쭉 그런 식으로 회피하려 했다.

지금은 이런 내 모습을 인지하고 조금은 더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쉼의 시간을 준 후, 글로서 나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무엇 때문인지 글로 털어낸다. 

사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 달리기이다. 달리는 순간에는 몸이 힘들어서 마음과 머리가 아플 여유가 없다. 달리고 난 후에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존재함을 말하다가 자존감까지 왔다.

존재의 '存'과  자존의 '尊' 한자는 다르지만, 결국 현재 여기 살아 있음을 소중하게 여기면, 힘들어도 버틸 수 있고, 나를 드높이는 힘이 생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내 순결한 한 가지는 존재함이다. 오늘도 살아있음을 감사히 여기는 것부터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