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Opener Aug 31. 2020

맴도는 것들을 정리할 용기

가슴의 기억을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는 법

머리는 잊어도 가슴이 기억한다는 진부한 표현을 문득 확인하게 될 때가 있다. 이유 없는 바람이 실어온 향기에 코끝이 찡해지고, 계획 없는 발걸음에 마주한 하필 그 장소가 눈물을  글썽이게 할 때 말이다. 이미 다 지나갔는데 그때의 나와 네가 그 향기에 그리고 그 장소에 남아 맴돈다.  


시간은 점점  머리의 기억을 앗아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망각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가슴의 기억은 여전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진다. 마치 내 통제를 벗어난 어떤 AI가 내 가슴의 기억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가슴에 맴돌아도 벗어날 방법이 없다.

성시경 '난 좋아' 뮤직비디오 갈무리 - "참 오래되었다"
주고 싶은 것 주지 못한 것 마음에 남아서 넌 떠나도 난 그곳에 고여 있었지
- 성시경 '난 좋아' 중에서 -

    

이 AI는 아마 내가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알고리즘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다하지 못한 것들 위주로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우연을 가장해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맴도는 것들에서 벗어나려면 해야 할 것들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내 마음은 지박령처럼 나를 떠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짝사랑이란 열병은 보통 고백이란 처방으로 낫게 된다. 이 극약 처방으로 거절된 마음은 여러 날을 울게 만들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한 끝이기에 오히려 개운하다. 이렇게 지나 보내면 지난 일들은 내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가슴의 기억이 되고, 원할 때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된다.


맴도는 것들을 정리할 용기를 좀 더 내보아야겠다. 미련이나 후회라는 망령이 내 주위를 맴돌게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아직은 내 가슴의 기억의 주인이 나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젠 그리운 말 "그만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