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건 없어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너에게
아프면서 내가 변한 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mbti 'E'에서 'I'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최소 2번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내가 배우고 싶은 분야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외향적인 면이 많았다. 그런데 2021년 5월부터 본격적인 스테로이드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서 문페이스 moon face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페이스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중 하나로 지방축적으로 얼굴이 둥글게 되는 징후다.
내 수치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요단백(*), 즉 소변에 단백뇨가 너무 많이 검출되는 것이었다. 나도, 담당의도 단백뇨 현상 외에 신장병 환우들이 관리하는 사구체여과율과 같은 지표 중에서 그렇게 안 좋은 수치는 없어서 단백뇨 증상도 고지혈증 약만으로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할 줄 알았다. 응급실에서 24시간 소변검사를 했던 이유도 소변 중 단백뇨 양이 너무 많이 검출되서였다. 참고로 사구체여과율은 쉽게 말하면 신장기능률이다. 분당 90ml 이하부터는 투석 또는 신장 이식을 받을 단계로 가기 전에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요단백 현상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약물 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 소변에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현상이다. negative가 나오는 게 정상인데 아래와 같이 내 수치인 +4는 1,000mg/dl 이상의 단백뇨가 검출된 거니까 가장 심각한 단계이다. negative 외 수치가 나왔을 경우 소변검사에 대한 "뇨화학" 검사를 통해 하루추정 요단백양을 추가로 관찰하게 된다.
다행히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지 한 달 만인 2021년 6월부터 효과가 나타났다. 나만은 없길 바랐던 문페이스가 세게 오긴 했지만 가장 문제였던 요단백 증상도 잡히고 더 이상 소변에서 다량의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Neg ; Negative 가 정상치이다)
어쨌든 문페이스로 부은 얼굴은 보기 좋게 살이 오른 느낌은 아니고 조심스러운 단어 선택이긴 하지만 성형수술 부작용 온 사람같이 울퉁불퉁 살이 오른다. 달덩이 같은 얼굴이 원복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알 수 없었다. 조금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나는 스스로 온전하다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횟수를 최소화했다. 점차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독립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내게는 나름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무슨 일이 있으면 친한 친구들에게 통화 버튼을 먼저 누르던 나였다면, 이제는 평소엔 마시지 않는 술을 혼자 한 잔 하거나 차라리 잠을 청한 후 생각한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여전하지만 조언에 의존하기보다는 그 조언을 참고하게 되었다.
웃긴 건 mbti는 estj에서 infj 가 되었다는 것이다. 뭘 하든 계획 파라 굳건한 성향인 ‘캐피털 J' 말고는 다 반대로 바뀐 것이다. 내향적으로 바뀐 건 이해가 가지만 ‘현실적인 이성파에서 상상력 풍부한 감성파로 바뀔 건 뭐람' 싶었다. 그리고 오히려 내면의 변화를 생각하면 istj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사색의 시간도 함께 늘어서 나타난 변화는 아닌가 싶다.
아프면서 느낀 건 뭐가 됐든 스스로 온전한 상태일 때 내 주변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먼저 나 자신을 챙기고 지켜야 한다.
그동안 그걸 못했던 터라, 나 자신한테 미안해서도 많이 울었다.
올해 2023년 상반기에 회사에서 리더십 교육을 들었다. 요즘 인재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가 '회복탄력성'이라 한다. 회복탄력성 검사라는 것이 교육 교재에 실려있어 테스트해 봤다. 그 결과 함께 교육을 듣는 동료 사이에서 회복탄력성 점수순으로 2위였다.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내가 한 번 아팠던 것도 알고 그럼에도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나를 걱정하던 동료 언니는 내 점수를 보고선 '이제 너 걱정 안 할게, 응원만 할게' 라며 농담 삼아 말을 건넸다.
스스로 감사한 점은 내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절망이나 좌절과 같은 단적인 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움의 과정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성공의 정의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어쩌면 잘 되기 전 실패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만큼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5년 뒤가 될 수도 있고 30년 뒤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잘 풀릴 인생이니까.
얼마 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딸과 그 어머니가 함께 탔다. 아이는 "엄마 오늘 학교에서 좌우명 적었는데 난 '실패는 성공하기 위한 전 단계이다'라고 적었다?"라고 재잘댔다. 멍 때리고 올라가고 있는 나는 속으로 끄덕이면서도 어린 나이에 어떤 실패가 있었는지와 저걸 벌써 깨달은 그 아이의 10년 후가 궁금했었다.
아프면서 나타난 두 번째 변화는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너 아픈 거 광고하냐고 하시며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이 어려운 시기가 내게만 있는 건 아니란 것을 네이버 신장병 환우 모임 카페에서 알게 되었다. 급성 신장염으로 고생하던 한 사람은 이렇게 회복해가고 있다고 스스로 기록도 할 겸 영상을 남겨 회복하는 모습을 담았다.
구독자는 적지만 첫 영상은 조회수 약 8천 회를 기록해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었고 나 또한 비슷한 처지의 분들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꽤나 뿌듯했다.
그렇게 유튜브를 7개 정도 올리는 과정에서 나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또한 그 사이에 한 도시락 회사에 연락하여 저염도시락을 공급받아 팔아보고 싶다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신장병이나 당뇨 환우들은 항상 식단이 고민이기 때문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기획서를 만들어가서 미팅자리에서 피티를 했다. 그 시도는 결국엔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게 납품을 해주지 않아 무산됐지만 내 끈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결과가 뚜렷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 모든 시도가 상황을 긍정적으로 풀어가려는 방법이었다.
솔직히 암이었다면,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래도 내가 유튜브로 영상을 올리고 여전히 내가 잘 풀릴 거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싶지도 하지만 if 놀이는 그만하기로 한다.
무튼 나는 이렇게 단단해져 간다.
사진출처 : Unsplash의 Ankush Mi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