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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May 25. 2023

사랑할 용기

<여명(餘命) 10년>을 통해 비로소 상담을 종료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이 좋았다. 영화든, 노래든, 드라마든, 일상에서든 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해도 괜찮은 순간들을 애정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기꺼이 들으려 하는 내 사람들, 망설임 없는 믿음을 보이는 반려동물, 축축한 흙속에서 끝끝내 고개를 들어 보이고 마는 식물, 그리고 평생 함께할 나 자신 등등. 나는 이것들에 관심을 퍼붓고 생겨난 빈자리도 즐겁게 감내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심리상담을 시작했던 이유는 연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정의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내담자로서 내뱉은 첫 마다는 부끄럽게도, '상처받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였다. 돈을 그만큼이나 주는데 고작 말하는 게 사랑타령이라니. 보잘것없어 보여서 뻘쭘했고, 나에게 뭐라고 타박을 할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래도 떳떳하게 말했다. 그 무거운 사랑이 나를 좀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연인이 없는 상태에서의 상담은 순조로웠고, 10여 회차 정도 만에 상담을 종료하게 됐다. 결론적으로는, 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던 수많은 분석은 그저 달랐던 마음의 무게를 이해해보려는 자해였던 거다. 사랑 때문에 시작한 상담 덕분에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느라 갉아먹혔던 부분을 발견했고, 조심스레 흙을 털어내고 후후 바람을 불어주어 깨끗한 천으로 잘 덮어 줄 수 있었다. 이제야 알게 된 나의 기질과 성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사건들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스스로를 위해 적당히만 사랑하리라 결심했다. 솔로였던 나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빨리 호기롭게 상담을 종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믿었다. 나는 성장했고 변화했노라고.


근데 이제야 보니,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여명(餘命) 10년"을 극장에서 관람하고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렇다. 카즈토에게 삶의 이유를 깨우쳐 준 마츠리는 정작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수차례 연이어진 그의 고백을 어렵사리 거절해야 했다. 상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커져서 살고 싶은 희망이라도 생기면 제 자신이 너무 힘들 테니까. 평생의 사랑 앞에서 용기를 내지 못한 마츠리는 제 죽음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집에 와서도 마츠리가 내지 못한 용기가 머릿속에 맴돌았고, 겁이 나는 이유를 몰라서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스스로를 파헤쳤다. 다만 그 간의 노력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말 조심스럽게 덮어뒀던 천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그 속에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상담에서 끝끝내 꺼내보이지 않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는 나의 마지막 민낯과 사랑에 맞설 용기가 남아 있었다.


상담을 하는 동안 입고있던 상처들은 치유했으나, 사랑을 대하는 나의 근본적인 기질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용기까지는 다루지 못했다. 심지어 부끄러운 마음에 상담사에게 꺼내보이지도 못했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을 겨우 알았는데 곧이어 생채기를 내는 비효율적인 상황 따위는 만들고 싶지 않았던 무의식과 상담사에게까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이 한몫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이쯤이면, 그리고 비싼 돈 주고 성장한 나라면 사랑 따위에 더 이상 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아직까지고 타인의 시선과 자신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마츠리 덕분에 부정했던 내 모습을 알아차렸고, 진정으로 상담을 마무리지으려면 애석하게도 이런 나 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도는 조절할 수 있겠으나 여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는 나의 연약한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적당히만 사랑하겠다는 어른인 척하는 말로, 사랑보다 현실이 앞서는 척하며 나를 포장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비로소 후련했고, 내 모든 것을 해결하여 상담을 이제서야 마무리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성장의 포인트도 조금 다르게 맞춰보려고 한다. 어쩌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어도,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책임감 때문에 새로운 상처가 나도, 나를 보듬어줄 줄 아니까 앞으로는 비효율적이어도 괜찮다고. 여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는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아무것도 바뀐 것 없는 상황임에도, 역설적이지만, 나의 민낯을 마주한 지금에서야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하다. 나의 글로 인해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이 애써 부정하고 있던 스스로를 발견하는, 유의미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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