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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Mar 13. 2024

기다림의 분절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내어 보이는 일.

찌든 마음의 면 중 가장 밝은 면을 골라 당신에게 내보이는 것. 그 면이 나의 전부인 것처럼 밝은 톤을 유지하려 드는 것. 인간이 환심을 사려 드는 마음 중에서 가장 순수한 것. 이는 설렘의 조건들이다.


비평을 업으로 삼는 나에게 설렘이 잔뜩 묻어있는 감정은 낯설다. 기준이 모호해지고 진위여부 파악이 힘들어지며, 고려할 변수가 많아지니 분석은 자연스레 복잡해진다. 세간에서 통용되는 말의 보편적 의미와 당신-화자의 숨은 의도, 당신의 성향, 당신과 내가 처한 상황 등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날것의 우울한 본심과 가공된 밝은 마음 사이를 타협하느라 말을 고르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새 사람과의 설렘은 판례처럼 늘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으니 당신에게 전하는 최선은 결국 내 진실된 감정뿐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비추는 마음은 분초마다 모양새가 바뀌고, 그 변덕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도 꽤 버겁다. 그래도, 그렇다고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 그 감정을 어리숙하게 쥐고 있는 나의 모습이 어색하더라도, 희소성에 대한 갈망은 꺼지지 않는다.


부푼 마음을 응축하여 애써 덤덤하게 몇 자로 전달하고 나면, 그것들이 우리 사이을 부유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최선이었나?'와 같은 불안을 시작으로 세상의 모든 감정들을 차례로 직면한다. 상상에 따라 들떴다가 가라앉았다가 초조하다가 멍해지다가 고요히 검은 수면을 자랑하는 화면에 비친 나를 덤덤한 척 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의 진동의 폭은 점차 줄어든다. 안정화되는 듯 하지만 수렴하는 방향은 편향된다. 체념이라는 자기 방어기제가 발현된다. 밝은 마음 뒤에 숨겨뒀던 나의 찌든 마음이 빠르게 부정적인 경우의 수를 읊어나간다.


그러다 눈에 익을 만큼 그리던 당신이 밝게 나를 비추면, 그 많던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예측보다도 호기심이 선행된다. 약 올리듯 하나씩 올라오는, 내 단어에 대한 당신의 변환값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본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홀가분해진다.


핸드폰을 외면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새초롬하게 앉아 평정심을 되찾으려 노력해 본다. 유치해졌던 자신을 외면하며 괜한 곳에 집중한다. 그렇게 잠시간의 여유를 만끽하며 별 일 아닌 듯 굴며 이 상황에 대한 객관화를 한다. 그러나 설렘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그라들지도 않은 채로 에너지를 다시 비축시킨다. 얼마간의 텀이 내 답변에 도움이 될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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