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단한 하루 끝에 서 있는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괜찮은 척 버텨내려고 안간힘을 쓰다
맥이 탁 풀려버린 어느 날.
나름의 일로 지쳤을 당신에게
부득이하게 만남을 요청한다.
중간에서 만나자, 그 한마디에
남은 힘을 끌어모아 밖으로 몸을 이끈다.
비이성적인 날들에 베여
피를 철철 흘리고 있지만 처치할 여유는 없다.
새삼스럽게 낯설어진 세상에서
배신감에 절어 쫓기듯 걷는다.
모든 곳이 나를 부정하는 느낌에
발을 덴 듯 빠르게 걸음을 재촉한다.
반대편에서 나를 만나러 오고 있다는
그 하나의 위안만으로
눈을 질끈 감고 직선으로 달려본다.
나를 미어지게 하는 상념들이 내 시야를 가려오고
지면의 진동이 내 몸을 흔들어 놓지만 멈추지 않는다.
숨이 가쁘게 차올라도 끝이 있다는 믿음에 내달린다.
그러다 일순간.
익숙한 실루엣이 내 앞에 멈춰 서면
가쁜 숨을 몰아내기도 전에 내 몸을 받아내게 한다.
얼굴을 묻은 채로 그간의 일을 뱉어내는 동안
당신은 나를 정성껏 쓰다듬는다.
정적이 찾아왔지만 내가 아는 세상이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그저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