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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Mar 27. 2022

같이 낼래? 따로 낼래?


친구 부부와 요즘 뜬다는 퓨전 페루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뮌헨 토박이인 S는 글로벌 기업 임원답게 얼마 전까지는 직장생활을 영국의 체셔(Cheshire)에서 하며 뮌헨을 왔다 갔다 했었지만, 지금은 스웨덴의 고텐부르크(Gothenburg)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뮌헨을 한 번씩 다녀간다.


4년 전 베이징 출장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은 옆자리에 앉은 S를 처음 만났다. 집에 오자마자 '오늘 누가 내 옆자리에 앉은 줄 알아? '라며 잔뜩 들뜬 남편이 S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얼마나 대화가 잘 통하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단다. 헤어질 땐 연락처까지 주고받았고 조만간 식사하자 했단다. 


얼마 후 부부동반으로 처음 만났다. 슈바빙에 있는 그리스 레스토랑이었는데 이들 부부의 오래된 단골 식당이었다. 그날은 변덕스러운 뮌헨 날씨가 아닌 완벽한 여름 저녁이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즐겁게 먹고 마시고 떠들다 보니 진짜 그리스에 있는 듯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마치 축제 같았다.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첫 만남 이후 종종 만나서 맛집 탐방도 하고 서로의 집도 왕래하는 사이가 됐다. 친구 부부가 사는 슈바빙엔 맛집이 많다. 전혜린에 의해 너무나도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묘사된 슈바빙, 지금은 예술적인 면모는 찾아볼 수 없지만, 트렌디한 맛집이 많은 곳이다.  이번엔 퓨전 페루 레스토랑을 발견했다며 만나게 된 거다.




페루 음식이 이렇게 인기 있었던가? 메뉴판에 적힌 음식 이름만으로는 무슨 음식인지조차 알 수 없는데 다들 척척 잘 고른다.  몇 년 전에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난 페루 친구 집에서 먹은 음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몇 년 전 페루 친구네서 먹은 음식. 이런 음식은 메뉴판에 아예 없었다.


메뉴판에 있는 음식 설명을 보니 연어회와 튀긴 오징어가 들어간 세비체 스파이시 레드 크런치 칼라마리(Ceviche Red Spicy mit Crunchy Calamari)가 구미를 당겼다. 세비체(Ceviche)는 페루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생선회를 식초, 라임, 양파, 고추, 고수 등을 넣고 재워두었다가 먹는 일종의 생선회 샐러드인 셈이다.


처음 먹어보는 세비체지만 매콤 새콤한 게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양념이 비슷해서인지 태국 음식 같기도 해서 낯설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맛이었다.  


남편은 애피타이저로 연어 타타키(tataki)를, 메인 요리는 캘리포니아 롤을 먹었고 디저트는 안 먹었다. 친구 부부는 애피타이저로 내 것과는 다른 맛의 세비체와 연어 타타키를, 메인으로는 양다리 요리를, 디저트로 마차(matcha) 찹쌀떡과 초콜릿 수플레를 주문했다. 


난 세비체만으로도 이미 배불렀고 보통은 디저트를 안 먹는데, 마차 찹쌀떡은 먹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 파는 찹쌀 아이스의 1/4도 채 안 되는 작은 크기에 가격은 비싼 편이었지만 맛있었다. 


S가 고른 화이트 와인은 우리가 주문한 음식과도 잘 어울렸다. 총 2병을 주문했는데, 남편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우리 셋이서 마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친구는 레스토랑 선정을 잘하였고 덕분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종업원에게 계산서를 요청하려는데, S가 저녁값을 내겠다고 했다. 언젠가는 화장실 갔다 오는 척하며 음식값을 계산해버린 전적이 있는 친구다. 이런 건 한국에서나 있는 거 아녔던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가 보다. 그런데 이번엔 또 왜? 


'함께 아니면 따로(zusammen oder getrennt?)?'


이번에는 친구가 계산했지만, 독일에서는 계산서를 달라고 하면 종업원이 '함께 아니면 따로(zusammen oder getrennt?) 계산하겠냐'라고 묻는다. 이건 독일어 회화책에도 레스토랑 편에 나와 있다. 


'함께'라고 대답하면 계산서 한 장에 모든 음식 값이 적혀서 나온다.  한 사람이 다 낼 수도 있고 1/n으로 나눠서 지불할 수도 있다. 때로는 '반반'으로 나눠달라고 할 수도 있다. 누가 뭘 먹었는지와 상관없이 전체 요금에서 정확히 반으로 나눠서 2개의 영수증을 갖다 주기도 한다. 


'따로'라고 대답하면 각자 먹은 음식과 음료가 적혀서 각자에게 주어진다. 종업원이 누가 뭘 먹었는지 용케 잘 기억하고 있다. 남편과 둘이 밥을 먹을 때도 가끔 종업원이 물어볼 때가 있다. 대체로 대규모의 만남에선 각자 먹은 음식을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10명이 되었건 20명이 되었건 각각의 영수증을 발급해 주는 건 참 독특하지만,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산 문화는 그 나라의 음식문화와도 연관된 거 같다. 

음식을 나눠 먹는 동양 음식과 달리(일본 제외) 서양 음식은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기 때문에 '따로' 계산도 가능한 거 같다. 


막 싱가포르로 이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 인터넷 카페 동호회를 통해서 싱가포르에 사는 한국 사람들의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대부분이 미혼 남녀였었고, 짧게 싱가포르에 머물렀다 가는 사람들이 정보 교환도 하고 친목도 쌓기 위해 만나는 모임이었다. 이곳에서는 모임을 하면 회비를 걷었었는데, 비용이 꽤 비쌌다. 회비가 2차, 3차비용까지 포함이 되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술값이 꽤 비싼 것도 회비가 비싼 이유 중의 하나였다. 


모임이 잘 지속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유는 사정상 늦게까지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 회비가 비싸다는 데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회비를 걷는 총무는 회비를 내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결국 2차를 가지 않는 사람들이 모임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모임은 깨졌다. 


요즘이야 안 그렇겠지만 돈 없던 학창 시절엔 모임 와서 실컷 먹고는 회비 낼 때쯤엔 약속 있다며 사라지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외국에선 모임을 하면 1/n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또 재미난 현상이 나타난다. 무조건 비싼 음식을 시키거나 눈치 보면서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시킨다. 국적 불문하고 사람들의 심리가 그렇게 된다.


싱가포르에서 한국을 사랑하는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여러 음식을 시켜서 나눠 먹는 상황인데, 싱가포리안 총무가 똑 부러졌다. 음식값은 1/n로 부담을 하되 술을 마셨느냐 아니냐에 따라 회비를 감면해 줬다. 놀랍기도 했지만 술값이 비싼 싱가포르니까 이해가 됐다.  술을 마시는 내 입장에서 봐도 술 안 마시는 사람이 술값을 낸다는 건 좀 억울할 거 같았다. 


또 싱가포르는 세금과 팁이 있다. + 하나부터 +++ 3개까지 식당마다 다르다. 음식값에 따라 세금도 달라지는데, 자기 음식값만 내게 되면 마지막에 돈 걷는 사람이 세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독일의 '각자' 계산법은 참으로 합리적이고 편하다. 눈치 볼 것 없이 각자 먹고 싶은 거 먹고 음식이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음료나 술을 고를 수도 있다. 팁도 각자 알아서 주면 된다. 


돈 걷는 총무 입장에서도 머리가 안 아프다. 아이들 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주관해서 옥토버페스트를 간 적이 있다. 낮 모임이라 저녁보다는 한산했지만, 여전히 축제는 축제였다. 30~40명의 대인원이 참석했는데 종업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한 명 한 명 다 계산해 줬다. 


물론 여기서도 한턱내고 싶은 사람은 비싼 물값이나 와인 값을 자기가 내겠다는 사람도 등장한다. 어디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


그리고 지금까지 적은 내용은 어디까지만 큰 모임이다. 친구끼리 모이면 외국에서도 한턱내는 경우도 많다. 가끔은 초면에 대화가 즐거웠다며 자기의 성대한 파티에 초대하는 부자 친구를 만나는 행운을 만날 수도 있다. 

2차로 친구 집에서 와인을 마셨다.


20년 정도 싱가포르와 뮌헨에 살면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처음엔 낯설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졌다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친구가 저녁값을 계산했고 자기네 집에서 2차를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뮌헨은 한국처럼 2차 3차로 이동하는 게 쉽지 않다. 보통 한자리에서 늦게까지 머무는 편인데, 이날 모인 레스토랑은 작고 인기있는 맛집이라 얼른 자리를 비워줘야 해서 이런 계획을 세운 거 같았다.


'2차는 우리 집으로!!' 이건 내 전문인데 우리 집은 멀어서 외칠 수가 없다. 


이런 즉석 제안은 흔치 않은 일인데, 미리 계획을 세우고 나왔더라도 우리를 가깝고 편안한 친구 생각해 주는 게 더 기뻤다.



친구야! 오늘 고맙고 잘 먹었어.. 다음엔 우리가 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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