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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03. 2022

[詩] 살아갈 적에


살아갈 적에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차오르는

숨을 참을 수가 없다           


1.

집이 놓여 있는 곳으로 

나는 오르고 또 올라가야 한다 

봄에는 젖은 흙 냄새

여름에는 풀더미가 푹푹 익어가는 냄새

가을 겨울에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하나의 언덕을 넘으면 나타나는 또 하나의 언덕

고지에는 녹슨 대문이 아가리를 벌리고 서있다 

목구멍으로부터 작달만한 집주인과

매일 한 뼘정도 자라나는 꽃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는 오르고 또 올라가야 한다      

그 언젠가 와르락 

별이 쏟아진 것이 분명한 흰 돌 오르막길

길고양이의 뼈와 이따금 미풍에 살랑대는 쥐의 귀가

화석처럼 겹겹이 덧대어진 지층을 밟으며      

나는,          


2. 

애초에 이 동네는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뜩한 절벽과 억센 풀숲

간간히, 쇠똥처럼 뜬금없이 솟아오른 무덤들과 

버려진 회색 천조각들이 있던 곳이었다고

기둥에 얹은 합판의 모양새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노인이 말했다 

리어카에 개와 종이를 싣고서 

해처럼 달처럼 동네를 지고 다니던 무채색의 노년     

바람에 껌뻑이던 전구가 다 닳을 때까지 개는 짖어댔다

담이랄 것도 없는 판자집을 

담쟁이덩쿨이 야금야금 삼켜버리자 

개는 주위를 빙빙 맴돌다

홀로 긴 여행을 떠난 뒤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3.

절벽과 무덤 사이 어느 언저리춤의     

아니, 어쩌면 회색 천조각의 한가운데

방에 들어와 누운 나는 

생에 대해 골몰한다 

해가 떠도 해가 들지 않는

꿈결에서도 비릿한 폐수가 양옆으로 흐르는

세상의 네모난 한 구석에서      

벽지를 수놓은 곰팡이 무늬는 또 얼마나 화려한가

이따금 문앞의 꽃나무가 허리를 숙이면 

가로등 불빛이 유리문 틈을 비집고 쏟아진다

사선으로 기운 문고리의 그림자는 어떤 연인의 

옆 모습을 하고 있다 

고개숙인 그는 소년인가, 청년인가?     

찰나라고 하기에도 낯부끄러운 

아주 작은 찰나, 

찰나의 곰팡이 연인들          


4. 

십 이월의 언젠가 

김맹옥이 집앞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물에 젖은 채로 오르막길에 누워있었다 

진하게 젖은 라면 상자 틈새에서 번지지 않고

이름 석자를 빛내고 있던 

흐물흐물한 김맹옥을 엄마는 낚아챘다 

수면을 가르는 독수리처럼 물고기의 목덜미를 무는 매처럼     

김맹옥은 누구인가 

아무렇게나 폐병의 잔상을 흩뿌려놓고 사라진 

불쑥 나타난

비닐과 휴지와 물약이 든 봉지로서 존재하는

기침 소리 선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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