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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서울 한 바퀴, 한양도성

뚜벅이 서울여행

by TNP

한양도성은 한양의 내사산(內四山), 그러니까 백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됐다. 태조 5년(1396)에 축조한 한양도성은 1910년까지, 514년 동안 도성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랜 시간이다.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길은 그래서 우리네 유구한 역사를 온몸으로 마주하는 뜻 깊은 여정이다.


서울의 안산, 남산을 거닐다

전체 18.6km의 서울 한양도성(https://seoulcitywall.seoul.go.kr/index.do)은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등 모두 4개 구간으로 구성됐다. 땀 꽤나 흘리며 산정까지 올라야 하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산책하듯 도심을 따라 천천히 걷는 구간도 있다. 난도가 다양하니 여행자에겐 선택지가 그만큼 넓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단연 남산(목면산) 구간이다.

우리 땅에서 남산처럼 흔한 이름의 산이 또 있을까 싶다. 전국방방곡곡, 어느 동네에나 남산이라 부르는 산은 하나씩 꼭 있다. 남산은 그러니까 한라산이나 백두산 같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에 가깝다. 남쪽에 있는 산. 서울의 남산도 마찬가지다.

해발 270m에 불과한 이 야트막한 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조선이 개국하면서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태조 이성계는 백악산과 남산을 각각 주산과 안산으로 삼고 백악산의 산신인 진국백과 남산의 산신인 목멱대왕에게 국가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한양도성이 백악산과 남산을 중심으로 서쪽의 인왕산, 동쪽의 낙산을 아우르는 모양새를 갖춘 이유다.

목멱산은 조선시대 통용되던 남산의 또 다른 이름. 목멱대왕에게 제사 지내던 남산의 국사당은 일제가 조선신궁을 건립하면서 헐려 인왕산 자락으로 옮겼다. 조선 태조 때 창건해 조선 말 고종에 이르기까지, 매년 봄가을로 국가적 차원의 제사가 열리던, 그래서 조선의 역사라 불리던 국사당 터는 이제 남산N타워 앞에 표석으로만 남았다.

서울 한양도성 남산(목멱산) 구간은 백범광장과 장충체육관을 잇는 4.2km 코스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을 빠져나와 5분쯤 걸어가면 백범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탁 트인 광장 한가운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김구선생 동상을 지나 만나는 세련된 건물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수상한 멋진 외관 못지않게 남다른 의미를 품었는데, 바로 국사당을 남산에서 쫓아낸 일제의 조선신궁 터에 세웠다는 것.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일제가 조성한 조선신궁 터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들어선 건 분명 뜻깊은 일이다. 1970년 개관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2010년 리모델링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지나면 본격적인 남산(목멱산) 구간이 시작된다. 길은 꾸준히 오르막이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계단이 설치돼 크게 힘들진 않다. 걷는 동안 든든하게 곁을 지키는 성곽도 아름답다. 봉수대, 팔각정, 남산N타워로 이어지는 예쁜 길만큼 정상에서 본 서울 풍경도 일품이다. 남산 정상에서는 서울 시내는 물론 멀리 청와대와 백악산까지 한눈에 담긴다. 백범광장에서 남산 정상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내처 남산(목멱산) 구간을 종주할 생각이라면 정상에서 장충체육관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되고, 여기까지 온 걸로 충분하다면 케이블카를 이용해 내려오면 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백악산을 넘어 청와대까지

인왕산 범바위 구간

남산(목면산)구간과 낙산 구간이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무던한 구간이라면, 인왕산과 백악산 구간은 적잖이 땀 뺄 각오를 하고 도전해야 하는 코스다. 코스 대부분이 가파른 산길로 이어진데다, 거리도 부쩍 늘어나기 때문. 체력에 따라 체감하는 난도는 다르겠지만 서울 한양도성 홈페이지에 이 두 코스를 난도 ‘상’으로 분류한 만큼 만만하게 보고 발을 들였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인완상 성곽길
인왕산 선바위

인왕산과 백악산 구간은 각각 4km와 4.7km다. 산 좀 타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두 코스를 엮어 종주도 가능하겠지만, 산행 초보에겐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그럼 여기서 선택이 필요할 텐데, 어디가 좋을까. 서울의 안산인 남산을 걸었다면, 다음 코스는 자연스레 서울의 주산인 백악산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인왕산 구간이 걷는 맛이 덜하거나 풍경이 뒤처지기 때문이 아니다. 인왕산 구간은 앞서 언급한 남산에서 옮겨온 국사당과 무학대사가 기도처로 삼은 선바위 등 볼거리가 많을 뿐 아니라, 바위로 이뤄진 골산이다 보니 산 타는 재미도 백악산보다 한 수 위다. 풍경은 또 어떤가. 인왕산의 아름다움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강희언의 <인왕산도>에서 이미 검증됐으니, 더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굳이 백악산 코스를 권하는 건, 전적으로 여행자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이다.

백악산 코스의 들머리인 창의문

백악산 구간은 4소문 가운데 하나인 창의문에서 출발해 숙정문과 와룡공원을 지나 혜화문까지 이어진다. 백악산 구간은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 신분증 검사와 인원 제한 등 까다로운 입산 절차가 사라졌기 때문. 게다가 산행과 청와대 관람을 연계할 수 있어 도보 여행자에겐 이보다 매력적일 수 없다.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랄까.

백악산 성곽길

창의문에서 백악마루까지는 말 그대로 코가 무릎에 닿을 만큼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힘겹게 오른 계단 끝에 서면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북한산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지는데, 정말이지 들인 발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다.

1.21사태 소나무

백악산 구간과 청와대 관람을 연계하려면 탄흔이 선명하게 남은 ‘1.21사태 소나무’를 지나 만나는 청운대 쉼터에서 만세동방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된다. 망세동방 지나 만나는 대통문을 지나야 청와대 춘추관으로 갈 수 있는데, 이 길은 오후 5시 이후 폐쇄되니 참고할 것. 청와대 관람을 위해서는 ‘청와대, 국민의 품으로’ 홈페이지(https://www.opencheongwadae.kr/mps) 통한 사전 예약은 필수다.

대통령이 머물렀던 청와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밀스런 공간이다. 그 청와대가 74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다.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집무를 보던 본관, 대통령 가족이 머물던 관저 외에도 경무대가 있던 수궁 터, 보물로 지정된 미남불, 수령 150여 년의 한국산 반송 등 특별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을 위한 공간이다. 1991년에 전통 궁궐 양식으로 새로 지었다. 15만 여 개의 청기와를 올린 지붕이 인상적인데, 청와대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대통령 집무실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던 접견실은 2층에, ‘무궁화실’이라 부르는 영부인 집무실은 1층에 있다. 관저는 청와대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대통령 가족의 사적인 공간인 만큼 언론에 공개된 적도 거의 없다. 관저는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행사를 위한 별채 그리고 뜰과 사랑채로 구성됐다. 관저 출입문과 본관 동문을 잇는 숲길 산책로를 따라가면 오운정과 미남불(보물)을 만날 수 있다. 관저 내부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수궁 터는 조선시대 궁을 지키던 ‘수궁’이 있던 자리다. 일제가 수궁을 헐고 지은 총독 관저는 한때 ‘경무대’라 부르며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정부는 1993년 11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경무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수궁 터를 복원했다.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인 녹지원은 꼭 들러야 할 공간. 수령 150여 년의 한국산 반송을 중심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식재된 녹지원에서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수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다. 녹지원 옆 상춘재는 청와대를 방문하는 국빈에게 한국 전통 건축 양식을 소개하기 위해 지은 공간이다. 의전 행사나 비공식 회의장소로도 사용됐던 이곳은 본래 조선총독부 관사 별관인 매화실이 있던 곳으로 1982년 기존 건물을 헐고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다. 상춘재 건립에는 200년이 넘은 춘양목이 사용되었으며 내부는 거실과 온돌방 2개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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