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상치 못한 즐거움_ 청춘회관
“셋이 오셨어요?”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 한 명이 우리를 쫓아 나오며 말을 걸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제목이든, 첫 문장이든 낚시성 문장을 자주 쓴다는 이유에서 신랑은 나를 종종 “브레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번 대사는 진짜다. 내 두 귀로 직접 들은, 대학생 때도 들어보지 못한, 그 헌팅 대사다. 여행 온 젊은이들로 가득한 <청춘회관>이라는 술집에서의 일이다.
녹록지 않은 제주도 한 달 살기지만 삶은 언제나 그렇듯 고난의 연속인 것만은 아니다. ‘내 돈 쓰며 늙어가는 한 달 살기’는 맞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패턴이 생기고, 여유를 찾아내고, 소소한 즐거움이 따라왔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4번의 주말이 있었고, 주별로 게스트가 놀러 왔다. 남편이 1주일 다녀가고, 사촌언니의 부모님(나의 고모, 고모부)가 며칠 지내다 가셨다. 그다음 손님은 나의 대학 친구 2명이었다.
친구들이 온 둘째 날 저녁. 시현이를 재우고, 언니에게 잠든 시현이를 맡긴 뒤 협재 해변으로 나갔다. 카페 분위기의 펍.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활기차고, 적당히 시끄러운 곳이었다. 나는 애플티, 가영이는 라떼, 민경이는 빅웨이브 맥주를 시켰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낮이던 밤이던 상관없이 꼭 누군가는 차를, 누구는 커피를, 누구는 맥주를 시켰던 것 같다. 카페인은 정신을 깨우게 하고, 알콜은 취하게 한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페인을 즐기는 그녀는 늘 분위기에 취한 듯 감정에 충실했고, 알콜을 즐기던 그녀는 늘 정확하고 이성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그저 ‘자유’라는 기쁨 하나만을 만끽했다.
한 시간만 앉아있다 나오려고 했지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12시가 넘도록 이야기했다. 새벽 1시가 안돼서 가게를 나오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남자가 쫓아 나와 차에 타려는 우리를 붙잡았다.
“저기.. 세 분이시면 같이 술 마실래요?”
“아 죄송해요 저희 다 결혼했어요.”
술을 좋아하는 이성적인 그녀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를 가리키며) 얘는 애도 있어요.”
친구들은 모두 싱글에 솔로인데도, 나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유부녀임을 자처했다. 아줌마에게는 절대 찾아올 수 없는 헌팅의 순간을 불씨조차 남기지 않고 꺼버린 것이다. 친구들아! 당연히 응하면 안 되는 제안은 맞지만 뜸 좀 들이면서, 다른 이유 (남자 친구가 있다거나, 피곤해서 싫다거나)로 거절할 수도 있었잖니?
“(가영이를 가리키며) 이분도요?”
남자는 역시 가영이가 마음에 들어 쫓아온 거였다. 이유가 어쨌든 예쁜 친구들이 제주도에 놀러 온 덕분에 신랑에게 자랑할 이야기가 하나 생겼다. 가영이를 보고 쫓아온 거라는 사실만 빼고 이야기해줘야겠다.
여보, 나 제주도에서 이렇게 잘 나갔단 말이야.